"3월인데 대구에 눈이 오네?" 하며 걸었던 등굣길의 작은 눈발이 할아버지의 마지막 인사였을까. 푸른 잎이 돋아나고 봄바람이 코끝을 훔칠 그 봄날 나는 할아버지를 잃었다.
나는 외가의 첫 손녀로서 사랑과 애정을 듬뿍 받고 자랐고, 그 덕에 내 유년 시절 정서는 포근함으로 가득 찼다. 덕분에 나는 그때 받은 사랑을 또 다른 이에게 베풀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랐다. 물질적 풍요는 어떻게든 채울 수 있지만 정서적 풍요는 애쓴다고 채워지는 게 아니기에 나는 이것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모가 아기를 낳던 날, 할아버지는 "딸이 아이를 낳았는데 꽃바구니 하나만 해주세요." 하시며 닫힌 꽃집의 문을 두드려 꽃바구니를 사셨다. 그렇게 할아버지 손을 꼭 잡고 도착한 병원에서 나는 온전히 나를 향하던 애정이 사촌 동생에게 갈까 봐 대성통곡하고 말았다.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할아버지는 나에게 이전과 같은 사랑을 주셨다.
다들 "커서 뭐 되려고 그러니?" 하며 지탄할 때 "우리 지야(애칭)는 똑똑해서 뭐든 할 수 있다"고 아파서 병원에 누워계시던 와중에도 나를 북돋아 주시던 할아버지. 자신에게 의문이 들고 의구심이 생길 때 할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을 되뇐다.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주신 그 말씀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된다.
밥을 잘 먹지 않던 내가 유일하게 잘 먹던 낙지 젓갈은 할아버지 댁에 갈 때마다 상에 올라왔는데. 후에 들은 얘기로는 내가 잘 먹는 걸 보신 할아버지께서 매번 장에서 사 오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어느 상에서도 낙지 젓갈을 보지 못했고, 한 동안 낙지 젓갈을 입에 대지도 못했다. 아직도 낙지 젓갈의 짠맛에 혀가 아린 건지 눈물의 짠맛에 쓰린 건지 모르겠다.
왜 마지막은 기약 없이 찾아오고 남은 사람에게는 후회만 남을까. 댁에 가서 말도 잘 하지 않았고 휴대전화만 하던 나도 할아버지와 마지막이라는 걸 은연중에 알았는지 할아버지 어깨를 주물러 드렸다. 어깨를 주무를 때마다 앙상한 어깨뼈가 내 손끝 마디에 부딪히는데 70년의 노고가 그대로 다 느껴졌다. 엄마와 이모 그리고 삼촌을 먹이고 입히고 배우게 하기 위해 평생을 일한 가장의 나이테이자 증표를 나는 그때 알 수 있었다.
유품 정리할 때 약봉지 하나를 몰래 내 방 서랍 깊숙이 숨겨두고 힘들고 무너질 때, 할아버지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 몰래 꺼내 본다. 한손보다 작은 그 조그마한 약봉지 하나가 내게 큰 위안이 됐고, 내 고민에 답을 준다.
부모님이 경황이 없어 나를 집에 두고 장례식장에 가서 할아버지 입관을 못 본 나는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해 하고 싶은 말이 넘친다. (나는 장례 이틀째에 갔다)
할아버지 잘 지내고 계세요? 이제 여름인데 하늘나라는 태양이랑 더 가까워서 더 덥지 않을까 걱정이에요. 저는 벌써 간호학과 3학년이 됐고, 장학금도 받아요. 제가 간호사가 되면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실 텐데... 증조할머니와 작은할아버지랑 그간 못한 얘기 하느라 바쁘신지 요새는 꿈에도 안 찾아오시네요.
너무 보고 싶으니 제가 이번 주말 산소에 찾아뵈러 갈게요. 우리 다음 생에도 할아버지와 손녀로 만나요. 못 알아보고 지나쳐도 제가 다시 뒤돌아서 찾으러 갈게요. 그때까지 건강하게 안녕히 계세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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