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합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법보종찰 해인사(海印寺)와 해인사 팔만대장경이다. 그 해인사 인근에 대장경을 주제로 한 테마파크가 조성돼 있어 겨울철 해인사와 함께 둘러보면 색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몽골 침입기인 1251년 완성된 고려 재조대장경으로, 해인사에 보관된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다. 부처님의 힘으로 몽골을 물리치려는 고려 백성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합천군은 고려 고종 23년부터 38년까지 16년간에 걸쳐 완성한 고려 재조대장경의 우수성과 역사성을 알리고 새롭게 다가올 천년을 준비하고자 '2011 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을 개최하면서 가야면에 대장경테마파크를 조성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진 고려 초조대장경을 바탕으로 송나라와 거란의 대장경을 비교·교정하며 완성한 가장 완벽한 불교경전이다. 7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8만1천258장의 경전 속에 단 한자의 빠짐도 틀림도 없는 5천200만여 자를 기록한 목판본으로 현존하는 목판대장경 중 가장 오래됐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세계가 인정한 기록유산이지만 정작 많은 사람들에게는 '해인사에 보관된 어려운 경전'으로만 남아 있다. 수많은 목판이 왜 만들어졌고, 어떻게 지켜졌으며,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쉽게 다가가기 어려웠다. 합천군이 대장경테마파크를 조성한 이유는 바로 그 지점이다. 세계기록유산의 가치를 전시관 안에만 가두지 않고 누구나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는 문화로 풀어내자는 문제의식이었다. 기록을 설명하는 공간이 아니라 기록을 느끼고 체험하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선택이었다. 그 결과 탄생한 합천 대장경테마파크는 지금, 팔만대장경을 가장 현대적인 방식으로 만날 수 있는 기록문화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목판 한 장, 손으로 이해하다
대장경테마파크 전시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팔만대장경 목판의 구조와 제작 과정을 풀어낸 체험형 전시공간이다. 관람객은 목판 모형을 직접 만져보고, 글자가 새겨진 방향과 배열을 눈으로 확인하며 기록이 만들어진 방식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목판 제작 체험 공간에서는 나무판에 문자가 새겨지는 과정을 단계별로 살펴볼 수 있다. 글자가 새겨진 목판을 문질러 인출해보는 체험을 통해, 한 장의 경판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성과 시간이 필요했는 지를 몸으로 느끼게 된다. 아이들은 종이에 드러나는 글자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부모들은 고려 장인들의 기술과 집념을 생각해본다.
이어지는 공간에서는 목판을 오랜 세월 보존하기 위한 건조와 보관 방식이 소개된다. 단순한 설명 대신 영상과 모형, 체험 요소를 활용해 왜 바닷물에 담갔는지, 어떤 환경에서 목판이 보존됐는지를 이해하도록 구성했다. 기록을 지켜내기 위한 과학적 지혜가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팔만대장경, 화면 속 여정 따라가
가장 많은 관람객이 머무는 공간은 팔만대장경을 해인사까지 옮기는 과정을 구현한 실감형 미디어아트 전시다. 대형 스크린에 펼쳐진 장면은 관람객의 움직임에 반응하며 이어지고, 화면 속 인물과 행렬은 실제 이운 과정을 따라 천천히 이동한다.
관람객은 단순히 영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화면 앞을 걸으며 기록을 지켜낸 사람들의 여정에 동참하게 된다. 아이들은 움직이는 장면을 따라 걷고, 가족은 자연스럽게 한 공간에서 함께 체험을 공유한다. 기록이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사람의 손과 발로 지켜진 역사라는 점이 선명해지는 순간이다.
◆보고, 만들고, 배워보는 체험
체험관에서는 연령대별로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어린이를 위한 기록문화 체험에서는 간단한 인쇄 체험과 함께 자신만의 '작은 경판' 그림을 만들어보는 활동이 진행된다.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는 기록과 인쇄의 원리를 이해하는 심화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5D영상관에서는 팔만대장경의 제작 배경과 역사적 의미를 입체 영상으로 풀어낸다. 화면과 좌석의 움직임, 음향 효과가 결합돼 기록문화 이야기가 더욱 생생하게 전달된다. 짧은 시간 안에 대장경의 핵심 내용을 이해할 수 있어 관람 동선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기록과 예술, 오늘의 언어로 만나
대장경테마파크에서는 기록문화가 예술로 확장된다. 지역 예술인과 협업한 기획전시에서는 서예 작품과 회화, 서각 작품을 통해 기록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해석한다. 목판에 새겨진 문자와 현대 작가의 표현이 한 공간에서 만나며, 기록이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의 문화임을 보여준다.
관람객은 전시를 둘러보며 기록의 의미를 각자의 방식으로 다시 읽게 된다. 아이에게는 그림과 형태로, 어른에게는 사유의 대상으로 기록이 남는다.
◆기록 남고, 경험 이어져
합천군은 대장경테마파크를 단순한 관람시설이 아닌 체험형 기록문화 거점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노후 시설을 정비하고 실감형 콘텐츠를 확충해 기록의 깊이와 현대적 감각을 함께 담아낼 예정이다. 가야산과 해인사, 인근 관광자원과 연계한 체류형 관광 흐름도 이어갈 방침이다.
합천군 관계자는 "대장경테마파크는 세계기록유산의 가치와 합천의 문화자원을 함께 체험할수 있는 공간"이라며 "앞으로도 방문객 눈높이에 맞춘 체험·교육 콘텐츠를 꾸준히 개발해 더욱 풍성한 문화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천년을 견뎌온 기록은 이렇게 오늘의 경험으로 살아난다. 대장경테마파크는 팔만대장경을 박제된 유산이 아닌, 지금 이곳에서 직접 만지고 느낄 수 있는 문화로 바꾸고 있다.
경남신문 이종구 기자 jg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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