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 능인동창회 회원들은 부처님의 가피(加被) 덕에 우리 사회 곳곳에서 당당하고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능인고는 1940년 대한불교조계종 경북 5본사(영천 은해사·대구 동화사·문경 김룡사·의성 고운사·경주 기림사) 주지스님들이 세운 오산불교학교를 모태로 한다. 졸업생들은 학교를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모교 교훈인 '밝게 알고 올바르게 행하자'를 가슴에 새기고 있다.
김원표 재경 능인동창회 사무총장(42회)은 "부처님의 정신을 이어받아 대부분의 능인고 동문들은 착하고 순하고 조용하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경북고 등 이른바 메이저 고등학교와 비교하는 세간의 인식에도 우리 능인고 동문들은 누구보다 끈끈하기도 하다. 남을 베풀고 포용해야 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은연 중에 남아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팔공산 자락의 은해사 경내에 있던 오산불교학교는 1945년 해방을 맞이해 불도(佛徒) 중심의 교육에서 일반 민중을 위한 교육으로 개편한다. 이를 위해 이듬해 대구 남구 남산동으로 교사를 이전, 교명도 능인으로 개명한다. 이후 교사는 1954년 남구 이천동, 1986년 수성구 지산동으로 두 번 더 이전했다.


82년의 유구한 역사가 흐르는 능인고는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정계에선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34회), 배광식 대구 북구청장(34회), 주낙영 경주시장(35회), 정상환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39회) 등이 있다. 법조계에선 김찬돈 대구고등법원장(34회), 홍기태 사법정책연구원장(36회), 진성철 대구고법 부장판사(38회), 곽병수 대구고법 판사(42회) 등이 있다.
또 재계에선 도재민 ㈜성철 회장(16회), 나춘호 예림당(티웨이항공 모회사) 회장(19회), 정창화 ㈜태성종합기술 대표(37회), 성대규 신한라이프 대표(41회), 김영달 ㈜아이디스 대표(43회)가 활약 중이다. 학계에선 이재진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42회)가 있고, 지난해 수능에서 자연계열 전국 수석을 차지해 연세대 의예과에 진학한 조진혁 군(78회)도 능인고를 졸업했다.
이처럼 김 사무총장과 재경 능인동창회원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고향 대구는 물론 대한민국의 번영에 모교가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다만 올 초 임무 수행 중 F-5E 전투기 추락 사고로 순직한 조종사 고(故) 심정민 소령(71회)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고 한다. 병역 명문가 출신의 심 소령은 민가 추락을 막기 위해 끝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다가 끝내 푸른하늘을 지키는 별이 됐다.
김 사무총장은 "심 소령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자 전국에서 시인들의 애도시 85편을 모아 추모시집 '그대 횃불처럼'이 발간됐다"며 "수성못에 심 소령 동상을 세우기 위해 학교와 관계당국이 협의 중인 것으로 아는데 우리 동창회에서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재경 능인동창회의 주요 행사로는 ▷송년회 및 정기총회 ▷재경능인동창회장배 골프대회 ▷능인가족 어울림대잔치(총동창회 주최) 등이 있지만, 각종 동호회 및 직업인 모임이 다른 동창회에 비해 유독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산우회(등산·회장 함천우) ▷능우회(골프·회장 오원정) ▷능언회(언론·회장 홍대선) ▷능금회(금융·회장 박지현) ▷능통회(IT통신·회장 문진일·금기현) 등이다.
지난 6월에는 재경 능인가족 영화관을 개최해 큰 호응을 얻었고, 조만간에는 서울 대학로 인근에서 동문과 가족들을 대상으로 맥주 시음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와 급감하는 졸업생으로 인해 재경 능인동창회 운영이 예전만 하지 못한 것은 큰 고민이다.


김 사무총장은 "과거엔 서울에서 동창회를 열면 자동으로 회원들이 모였다. 타지인 서울에서 믿을 건 동문들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과거 한 학급에 60명이 넘던 학생들이 지금은 20명이 겨우 넘는다고 하더라. 졸업생 자체가 적으니 동창회에 나올 사람도 자연스레 줄어든다"고 우려했다.
이에 최근 재경 능인동창회의 최대 목표는 '후배 찾기'다. 김 사무총장은 "후배가 없으면 동창회는 소멸된다. 그래서 수도권에 있는 동문 후배들을 찾아다니며 적극 소통하고자 한다"며 "몇 명이 됐든 후배들만 있으면 밥이나 술은 물론이고 생활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에서 유발승(有髮僧·머리 깎지 않은 스님)으로 불리는 주호영 의원은 재경 능인동창회 구심점 중 한 명이다. 지난해 전당대회 당시 동문들의 화력 지원에도 아쉽게 낙선의 고배를 마셨지만, 여전히 동문들의 자랑이라고 한다.
김 사무총장은 "경북고, 대구고, 계성고에선 정치인들이 많이 나온 데 비해 능인고는 그렇지 못한 게 사실이다. 판사 출신의 주호영 선배는 정치에서 자수성가한 셈"이라고 말했다.
재경 능인동창회원들이 모인 SNS 단체 대화방엔 '그 때 그 시절' 선생님들의 별명이 아직도 회자된다. 죠스(지구과학), 도배(공업·방송반), 꺼벙이(영어), 개구리(생물), 마리아(국어) 등의 이름이 나오면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특히 독일어를 가르친 무공스님은 모두의 기억이 생생히 남아있다. 시험 기준 점수에 미달하면 1점 당 1대씩 때리는 엄격한 선생님이었지만, 수학여행 때 학생들이 몰래 가져간 술을 곡차라고 눈감아 준 호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김 사무총장은 "동창회는 편안한 시골집 같은 느낌이다. 추억을 더듬으며 친구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며 "코로나19로 인해 최근 몇 년간 자주 모이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재경 능인동창회 운영을 재개해 동문들이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도록 노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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