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일본은 왜 반성하지 않는가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태평양 전쟁 이야기를 하면 일본 학생 대다수는 '일본이 미국과 전쟁을 했다고요? 언제요? 누가 이겼나요?'라고 묻습니다."

16년 전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구로다 가츠히로 씨에게 필자가 "일본은 왜 반성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이다. 역사에 관심 있는 소수를 제외한 다수 일본 청소년들은 일본이 미국과 전쟁을 치렀다는 사실조차 모른다고 했다.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있다. 공원을 방문한 일본 학생들은 "한국인이 왜 여기에 와서 죽었나?"고 묻는다.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 자체를 모르거나, 알더라도 그 체제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모르는 것이다.

일본 가고시마현 치란(知覽) 마을에는 '가미카제'(神風) 특공평화회관이 있다. 태평양 전쟁 말기 가미카제 특공대의 비행 훈련장에서 가까운 곳이다. 평화회관 앞뜰에는 일본어, 영어, 한국어로 '세계 평화를 위하여'라고 씌어 있는 삼각 푯말이 서 있다.(2014년 방문 당시는 그랬다.) 가미카제 특공대가 '세계 평화를 위해 싸웠다'는 것이다. 대다수 일본인들은 그 전쟁을 '제2차 세계대전' 또는 '태평양 전쟁'으로 칭하지 않고 '대동아(大東亞) 전쟁'이라고 부른다. 그 명칭 속에는 '서양의 지배에서 벗어난 아시아 신질서를 위한 전쟁'이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그렇게 믿는 것이다.

가고시마현 치란에는 가미카제 대원들이 외박 때 단골로 찾던 도미야식당(富屋食堂)이 있다. 식당 건물은 현재 '가미카제 자료관'이 되어 있는데, 가미카제 대원들의 유품,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자료관 안에는 애잔한 음악이 흐른다. 일본인들은 심금을 울리는 그 음악을 궁금해하고, 한국인은 그 음악에 충격을 받는다. 아리랑,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우리 '아리랑'이다. 조선인 가미카제 탁경현(일본명 미쓰야마 후미히로)이 출격 전 마지막으로 식당을 방문해 불렀던 노래다. 탁경현의 사연을 들은 여주인이 음반을 구해 틀기 시작했다. 이곳을 방문한 일본 학생들은 아리랑을 들으며, 미군 함대를 향해 최후 돌격하는 가미카제 특공대의 영상을 보며, 한국인과 일본인이 힘을 합쳐 미국에 맞서 싸웠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자란 일본인들은 "나쁜 놈, 진정하게 용서를 빌어라!"는 한국의 비판에 당황한다. 한편 역사를 몰라서 당황하고, 한편 함께 싸운 동지가 어째서 갑자기 우리를 몰아세우는가, 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거기에 한국 정치인들이 '자기 정치'를 위해 쏟아내는 반일 감정은 일본 극우들의 '혐한(嫌韓) 공세'에 훌륭한 빌미가 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일왕' 지칭, 조국 전 장관의 '죽창가'가 그런 예다.

해방 77년이다. 일본에 대한 비난 일색으로는 일본의 진정한 반성(말이 아닌 태도 변화)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비판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면, 침략 전쟁이 타국은 물론이고 결과적으로 일본 자국민에게 얼마나 큰 슬픔과 상처를 안겼는지를 알리고 공감을 끌어내는 길로 가야 한다.

'(상략) 아우여 죽지 말고 돌아와 주오/ 막내로 태어나신 그대이기에/ 부모님의 정 또한 깊었었다오/ 부모님께서 칼을 쥐여주시며/ 사람을 죽이라고 일렀겠는가/ 사람을 죽이고서 죽으라고 하고/ 스물네 해 동안을 키웠겠는가/ 사카이 그 거리의 오랜 과자 집/ 가업을 이어나갈 그대이므로/ 그대여 죽어서는 아니 된다오.(하략)'-(아우여~/ 손순옥 지음/ 들녘 펴냄)에서 인용-

일본 여류 시인 요사노 아키코가 러-일 전쟁이 한창이던 1904년 9월 발표한 시다. 이런 반전시(反戰詩)들은 일본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런 시들을 알리는 일, 조선과 만주 등 식민지 땅으로 이주해 갔던 일본인들이 얼마나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는지를 알리는 것이 시종일관 반성을 요구하는 것보다 일본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더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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