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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역대 최고치 뚫은 주가, 경제 상황은 여전히 안갯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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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주식 양도세 부과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현행대로 '종목당 50억원'으로 유지한다고 밝히면서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갈아 치웠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7월 말 기준액을 종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강화하는 세제 개편안을 내놨는데, 윤석열 정부 시절 기준 완화 후 기대했던 주식시장 활성화도 없고 부자 감세 논란만 커졌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코스피 5,000 시대' 천명이 무색할 정도로 주식시장이 충격을 받고 투자자 반발도 거세지자 정부가 한발 물러섰다. 미국 대형 기술주까지 급등하자 코스피도 탄력을 받아 사상 처음 3,400을 넘어섰다. 10거래일 연속 상승에다 4거래일 연속 최고점을 갈아 치우며 증시에 훈풍(薰風)이 불지만 사실 경제 상황은 걱정스럽다.

3천500억달러(486조원)의 대미 투자 구체화 방안을 두고 한·미가 정면충돌하면서 결렬(決裂) 고비까지 맞는 듯했던 관세 협상이 당장 최대 변수다. 대화의 불씨는 살렸다지만 협상 추이는 매우 우려스럽다. 투자 이행 방안에 대해 미국은 일본처럼 '투자 백지수표'를 요구한다. 3천500억달러 대부분을 지분투자(equity) 방식으로 3년 안에 미국 특수목적법인(SPC)에 '입금'하라는 식인데,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협박이나 다름없다. 미국이 요구하는 지분투자나 대출은 정부와 금융기관이 달러로 미국에 보내야 한다는 말인데,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20%에 해당하는 막대한 액수를 넘길 여력도 없고, 가능하다고 해도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극단적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1일 "국익에 반하는 결정은 절대 하지 않는다. 합리성과 공정성을 벗어난 어떤 협상도 하지 않는다"고 강조한 것도 차라리 25% 상호 관세를 맞고 반도체·바이오 등 최혜국 대우도 포기하자는 강경 목소리를 의식해서다. 한국인 구금 사태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나라나 해외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하는 것을 겁먹게 하거나 의욕을 꺾고 싶지 않다"는 글을 올린 것을 두고, 대미 투자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오지만 일본을 굴복(屈服)시킨 미국이 한국에만 유리한 조건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

정부가 최근 미국에 무제한 통화스와프 체결을 제안한 것도 투자 금액 및 비율과 시기를 다소 조정하더라도 미국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통화스와프는 자국 화폐를 상대국에 맡긴 뒤 정해 둔 환율로 상대국 통화를 빌려 오는 방식이다. 지난달 말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천163억달러 수준이지만 막대한 달러가 빠져나가면 외환시장이 대혼란에 빠질 수 있다.

주식시장 호황은 반길 일이지만 경제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정부가 최고세율 35%로 책정한 '배당소득 분리관세' 논란도 불씨다. 정치권은 20%대로 낮추자는 입장인데, 향후 정부 결정에 따라 증시의 향방도 바뀔 전망이다. 세제 개편이 늦춰졌다고 그저 환영할 일도 아니다. 재정적자가 심각한데도 국채 발행을 통한 확장 재정을 천명한 마당에 그나마 세수(稅收) 확보를 위한 장치들을 하나둘 포기하고 있어서다. 우려가 현실이 되면 들끓는 주식시장 열기도 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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