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영 비대위를 상대로 한 이준석 전 대표의 가처분에 대해 나도 기각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정당 내부의 일이라는 점, 법원이 결정하기 어려운 정치적 문제인 점, 국민의힘이 상임전국위와 전국위를 거치며 일응 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노력한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100% 기각을 확신한다"는 국민의힘 내부 전망과는 상관없는 주관적 판단이었다. 법원의 인용 결정이 내 생각과 다르지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결론은 아니었다. 법원의 판결은 언제나 양 당사자 중 하나의 편을 들 수밖에 없고, 어떤 결론이든 그 나름의 논리를 구성할 수 있는 법이다. 가처분 인용 결정 역시 이 전 대표 측 주장과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인 사실을 알 수 있다.
내가 놀란 것은 오히려 국민의힘의 반응이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하는, 한마디로 인용을 대비한 플랜 비(B)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기각을 확신한다"는 말은 정치적 수사라 치자. 내부에서는 은밀하게 인용에 대비한 검토가 당연히 있었어야 한다. 판·검사 출신 등 법조인이 즐비한 게 국민의힘 아닌가. 더구나 정부와 함께 대한민국의 운명을 책임진 집권 여당이다. 국민이 집권당을 향해 그 정도 치밀함과 철저함을 요구하는 게 지나친 것은 아닐 터이다. 좌파 성향, 특정 연구회 소속 등 판사를 비난해 보아야 헛된 사설에 불과하다.
국민의힘의 다음 행보 역시 미덥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사법적 판단에 맡기지 말고 정치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을 외면한 건 지나간 일이다. 법원 판결을 비난할 수는 있어도 무시할 수는 없다. 가처분 결정문을 꼼꼼히 읽었다면 권성동 원내대표와 성일종 정책위 의장이 정치적 '책임'을 지고 '즉시' 사퇴하는 게 일차적 수순이었다. 두 사람의 사퇴로 당연직 최고위원마저 없어지면서 국민의힘은 '최고위원회 기능 상실'이라는 말 그대로의 '비상 상황'을 맞게 되었을 것이다. 기존 당헌에 따라 새로운 비대위를 구성하고 신임 원내대표가 수습에 나설 경우 어떤 판사도 시비할 수 없는 절차와 내용을 갖출 수 있었을 것이다. 늦었지만 정치적 해법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권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 직무대행을 자임하고, 소급적 당헌 개정에 나서면서 이 전 대표의 2차, 3차 가처분 신청 빌미를 제공한 것과 다름없다. 이 전 대표의 저열한 논리나 행보는 물론 동의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성 상납 의혹과 증거인멸 교사 행위를 정치적 공방으로 만들기 위해 이른바 윤핵관과 윤석열 대통령까지 야비한 언어로 연일 공격하고 있다. 경찰 수사 결과가 나와도 정치적 탄압이라 주장할 프레임을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이다.
어찌 되었든 같이 죽자는 식의 이판사판 공세를 펼치는 이 전 대표와 법원에 운명을 맡긴 여당 모두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전 대표에 대한 윤리위 2차 징계 검토 역시 하책이다. 예상과 달리 이 전 대표는 당원권 6개월 정지 처분에 대한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 심리가 열렸을 경우 성 상납 의혹과 증거인멸 교사 여부가 쟁점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소송을 제기하지 못했다고 보는 게 정확한 분석이다. 재차 징계를 할 경우 이 전 대표의 가처분 신청 제기는 불문가지다. 성 상납 의혹이나 증거인멸 대신 이 전 대표 발언의 적절성 등이 쟁점이 된다면 국민의힘은 또 다른 사법 리스크를 자초하게 될 것이다.
그가 어제 대구에서 기자회견을 연 것도 결과와는 관계없이 끝없는 사법적 리스크로 국민의힘을 옭아맬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이재명 사법적 리스크' 이전에 여당의 사법적 리스크를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된 셈이다. 정당은 어떤 사안이든 우선 정치적으로 유연한 해법을 모색하는 정치적 역량이 탁월해야 한다. 사법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면 치밀하게 법률적 공격과 방어에 유능함을 보여야 한다. 이준석 사태를 통해 국민의힘은 정치적 역량도 미흡하고, 구성원들이 정치적 책임을 지는 모습도 부족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숱한 법률가들을 보유한 당이 법률적 문제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집권 여당의 사법적 리스크는 커져만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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