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전 세계적으로 OTT가 대세다. OTT란 'over the top'(여기서 탑은 셋탑박스를 의미)의 준말로, 간단하게 말하자면 '공중파가 아닌 거의 대부분의 영상 유통방식'이라 할 수 있다. 요즘 TV를 켜면 나오는 여러 케이블이나 위성 방송 서비스부터 유튜브,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애플TV, 국내의 웨이브, 티빙, 쿠팡플레이, 왓챠와 같은 플랫폼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 바로 이 OTT인 것이다.
OTT가 주가 되는 시대가 되자 드라마 제작 환경도 자연스럽게 조금씩 바뀌어간다. 과거에는 '소프 오페라' 즉, 중장년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 수 있는 드라마 제작이 대세였다면 이제는 각 성별, 세대별 맞춤형 드라마가 수십억의 예산을 기본으로 깔고 제작된다. 시청자가 스스로 찾아와서 소액을 결제하고 자기가 보고 싶은 시간과 공간에서 보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특정 성별, 특정 세대에게만 어필해도 충분히 제작비 회수가 가능해진 탓이다.
배우 시장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예전에는 소위 '스타 시스템'이라 불리는 특급 배우 위주의 캐스팅이 국내에서도 주를 이루었다. 송중기나 김수현을 캐스팅 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투자 유치, 시청률과 직결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런 스타 시스템은 (여전히 소프 오페라가 인기이듯) 여전히 잘 통하는 공식이기는 하다. 그러나 주목할 변화도 생겨났다. OTT 플랫폼이 가지고 있는 세계 유통이라는 구조는 배우의 유명세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풍조를 낳은 것이다. 세네갈, 루마니아, 우루과이 사람들은 어차피 한국 배우들을 잘 모른다. 그러므로 연기력만 있으면 누구나 좋은 역할에 캐스팅되지 않을 이유가 없어졌다. 오영수, 김신록과 같은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았던 배우가 각각 '오징어게임'과 '지옥'으로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은 것은 이의 좋은 사례이자 촉매제일 것이다.
작가 시장의 변화도 감지된다. 예전에는 모든 PD가 70점을 주는 작품이 계약이 되고 제작이 되었다. 그런데 요즘은 모든 PD가 10점을 줘도 한 PD가 90점을 주는 대본을 주목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한 마디로 '미친 작가'에게 배팅을 하는 추세가 생긴 것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한국드라마가 세계라는 엄청난 '규모의 경제'를 얻었기 때문에, 그만큼 남는 것이 적은 소위 '괴랄하고 신박한' 작품도 제작비를 건질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소수의 취향이라 해도 전 세계에서 모이면 넉넉히 한 시장이 된다는 말.
정치도 이런 플랫폼 혁명이 한 번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역구 의석은 좀 줄이고 성별·세대별·업종별 의원 같은 것을 신설해서 뽑아보면 좋겠다는 거다. 예컨대 전국 60만 군인이 의석을 몇 석 가질 수 있다면 거기에 뽑힌 의원은 자기 연임을 위해서라도 지난 수십 년째 최저임금도 못 받고 있는 병사들의 처지를 조금은 개선해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런 시민의 소박한 상상력이 대놓고 위성정당을 만들어버리는 의원님들의 호탕한 상상력을 어찌 이길 수 있겠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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