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백년학교] 대구중…남구 유일 100년 학교로서 새로운 100년을 디자인하다

〈12편〉 대구중, 일본군 80연대와 철조망 하나 두고서 '일본인 학교'로 개교
고바야시 마사루의 '일본인 중학교' 소설 배경 되기도, 해방 후 한국인 학교로 재정비
명문 대구중 야구부, '나이스캐치반' 등 학생 선수들 기초·기본학력 보장도 충실
도심 공동화로 열악한 상황 속 후배들 돕고자… 대구중장학회 설립

대구중 야구부 단체사진. 대구중 야구부가 특별한 이유는 야구부 소속 학생들의 기초·기본학력 보장에도 최선을 다한다는 점에 있다. 대구시교육청 제공
대구중 야구부 단체사진. 대구중 야구부가 특별한 이유는 야구부 소속 학생들의 기초·기본학력 보장에도 최선을 다한다는 점에 있다. 대구시교육청 제공
대구중학교 현재 전경. 대구시교육청 제공
대구중학교 현재 전경. 대구시교육청 제공

오래된 학교도 영원히 한 곳에 있을 순 없다. 특히 학령인구 감소와 더불어 도심 공동화로 인한 인구 유출까지 겹친 대구 남구의 학교들은 한 자리를 꾸준히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성중(현 덕원중), 대성공고(현 영남공고), 능인중·고 등 많은 학교들이 남구에서 수성구로 옮겨갔다. 지난해에도 남구 대명3동에 있었던 심인중·고가 달성군 다사읍으로 이전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남구 유일 100년 학교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구중학교를 소개한다.

1920년대 대구중 본관 전경. 대구시교육청 제공
1920년대 대구중 본관 전경. 대구시교육청 제공

◆ 고바야시 마사루의 소설 배경이 된 '일본인 중학교'

대구중학교는 조선에 살고 있는 일본인의 자녀가 다니는 '일본인 학교'로 5년제 10학급의 설립 인가를 받아 1921년 6월 개교했다.

남구 이천동에 있는 대구중학교는 당시 일본군 80연대 주둔지와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군사교련이나 야외 연습을 할 때 80연대의 지도와 지원을 받는 등 연대의 강한 영향력 아래 놓여있을 수밖에 없었다.

고바야시 마사루의 단편 소설
고바야시 마사루의 단편 소설 '일본인 학교(1957)'의 첫 부분. 박승주 대구하루 대표 제공
1958년 당시 고바야시 마사루의 모습. 박승주 대구하루 대표 제공
1958년 당시 고바야시 마사루의 모습. 박승주 대구하루 대표 제공

1927년 진주에서 태어나 1944년 일본으로 귀환하기까지 대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고바야시 마사루의 단편소설 '일본인 중학교(1957)'의 무대가 바로 대구중학교다.

소설의 주인공인 우메하라 겐타는 동경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첫 부임한 젊은 신임 영어교사다. 우메하라 겐타의 모델은 '우메하라 게이이치', 즉 최규하 전 대통령이 1941년 한 학기 동안 대구중에서 교편을 잡았던 시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최규하 전 대통령은 뛰어난 영어 및 일본어 실력을 인정 받았다. 조선총독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경고등사범학교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일본인 학교였던 대구중에 부임할 수 있었다.

국내에 번역본은 없지만, 원서를 제본해 소장하고 있는 박승주 대구'하루'(はる, 봄) 대표로부터 들은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신임 영어 교사인 우메하라는 세련된 외모와 온화한 인품을 지녀 학생들 사이에선 선망의 대상이 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학생들 사이에서 그가 조선인이라는 소문이 퍼지며 180도 돌변한 학생들이 노골적으로 우메하라를 조롱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를 계기로 우메하라는 일본인 중학교를 사직하고 만주로 떠나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일본인 학교'로 시작된 대구중학교는 이처럼 아픈 역사의 배경이 되기도 했으나 1945년 광복 후 한국인 학교로 재정비를 거쳐 현재는 남구 유일의 100년 학교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3만1천64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현재는 350여명의 학생들이 꿈을 키워가고 있다.

대구중 야구부 단체 사진. 대구시교육청 제공
대구중 야구부 단체 사진. 대구시교육청 제공
대구중 야구부 나이스 캐치반 운영 모습. 대구시교육청 제공
대구중 야구부 나이스 캐치반 운영 모습. 대구시교육청 제공

◆ 공부하는 야구 선수들… 대구중의 조금 특별한 야구부

지난해 IB후보학교 지정, 수학교육 유공학교 표창 등 대구중의 많고 많은 자랑거리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70년 역사를 자랑하는 '야구부'다. 1954년 창단된 대구중 야구부는 각종 전국대회를 석권하며 수많은 우수 선수를 배출한 야구 명문으로 발전해 왔다.

1965년 제12회 전국중학교 야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1974년 제17회 문화체육장관부 전국중학교 야구대회, 1981년 제11회 대통령기 전국중학교 야구대회, 1999년 제29회 대통령기 전국중학교 야구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2018년 제47회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2000년대에 들어서도 지속적인 성장으로 여러 전국대회에서 눈부신 활약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러한 실적 외에도 대구중 야구부가 특별한 이유는 야구부 소속 학생들의 기초·기본학력 보장에도 최선을 다한다는 점에 있다.

지난해 2월 대구중으로 발령이 나 야구부 지도를 맡게 된 안재우 대구중 교사는 '야구부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너무 많이 잔다', '수업 분위기를 흐린다', '숙제를 하지 않는다' , '선생님 지도를 잘 따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 야구부 학생 중 최저학력 미달 학생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안 교사는 학업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 위해 우선, 야구부 학부모 회의를 통해 우수 선수들의 수업 태도와 성적의 상관관계를 예로 들었다. 수업 태도와 교과 학습의 중요성에 대한 교육을 30분간 실시했다. 학습의 중요성을 깨달은 학부모들의 동의 하에 교과 선생님들과 연계해 수업 시간 태도 불량 학생들의 명단을 받았다. 3회 이상 지적을 받았을 때부터 일정 기간 야구부 훈련을 참관만 할 수 있게 했다.

여기에 기초 학습 지도를 위해 야구부 전원을 대상으로 '나이스캐치반'을 운영했다.

학교 운동부들은 대회로 인한 수업 결손, 최저학력 미달 선수들에게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운영하는 이스쿨 학습과정을 이수하도록 돼 있지만, 인터넷 강의로 이뤄지기 때문에 학생들의 의지가 없으면 학습 효과가 크지 않았다.

이를 해결하고자 나이스캐치반을 운영해 토요일 오후 2시간씩 2, 3학년을 대상으로 기초·기본 학습지도를 실시했다. 수업 과목은 최저 학력 기준 과목인 5개 교과로, 수업 시간 내에 강의를 듣고 모르는 부분에 대해 지도를 하고, 직접 지도가 어려운 부분은 그 교과 시간을 통해 학생들이 질문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지난해 한 학기 동안의 성과는 뚜렷했다. 우선, 최저학력 미달자가 3학년 기준 10명에서 3명, 미달교과목이 합산 17과목에서 3과목으로 줄었다.

수업 태도 개선으로 야구 경기 성적 또한 좋아졌다. 지난해 3월 소년 체육대회 예선에서 5개 팀 중 3위의 성적에 그쳤던 것이, 5월 대통령기 야구선수권대회에서 대구 대표로 선발됐다. 6월엔 전체 100개 팀 이상이 참가한 전국 중학 야구선수권대회에서 각 리그 결승에 해당하는 24강까지 진출하게 됐다.

안재우 교사는 "토요일에 수업을 진행해 나 역시 힘들었지만 학생들의 기초·기본 학습지도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며 "1학기를 마친 후 개선 결과를 보고 교사로서의 보람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도 학생들이 '공부하는 운동선수'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재)대구중학교장학회(이사장 예종해)가 최근 제76회 졸업식에서 장학생으로 선발된 3학년 졸업생 4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매일신문DB
(재)대구중학교장학회(이사장 예종해)가 최근 제76회 졸업식에서 장학생으로 선발된 3학년 졸업생 4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매일신문DB

◆ 도심 공동화로 학생 점점 주는 가운데 대구중학교장학회 설립

일본인 학교에서 한국인 학교로, 1946년부터 새롭게 출발한 대구중은 75년의 세월 동안 많은 동량지재를 키워왔으나 대구중 동창회는 해체된 상태다.

그 결과 졸업식 때 학생 대표가 동창회장 표창장을 받더라도 상품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그 사정들은 일일이 말하기 어려울 정도다.

다행히 뜻있는 동문들이 함께 모였다. 재단설립에 필요한 자금 3억원을 확보하기 위해 동기회원들이 십시일반 모금을 진행했다. 2016년 2월 재단(대구중장학회) 설립 작업을 시작해 이듬해 대구시교육청으로부터 설립 인가를 받아 그해 2월 제72회 졸업식에 300만원의 장학금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매년 졸업식에 500만원 정도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재)대구중장학회는 대구중의 발전과 인재양성을 위해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특히 도심 공동화로 인해 열악한 학교 상황 속에서도 학생들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예종해 (재)대구중장학회 이사장. 독자 제공
예종해 (재)대구중장학회 이사장. 독자 제공

예종해(10회) (재)대구중장학회 이사장은 "우리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한 학년에만 300명이 있었는데, 도심 공동화로 남구 인구가 계속 감소하며 우리 학교 전교생 수도 300여 명으로 줄었다"며 "인구 감소라는 큰 흐름을 인위적으로 막을 순 없더라도 할 수 있는 범위에서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장학회를 꾸렸으며, 앞으로도 열악한 상황에서 공부하고 있는 후배들을 돕겠다"고 했다.

손영자 대구중 교장. 대구시교육청 제공
손영자 대구중 교장. 대구시교육청 제공

손영자 대구중 교장은 "지나온 100년의 과거를 알고 현재를 익히며 미래를 디자인하겠다"며 "기초·기본 학력 지도 내실화, IB 프로그램 운영, 인성교육 등 역점 추진 과제를 갖고 바른 인성과 실력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