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는 보호받을 때뿐만 아니라, 무언갈 보호할 때도 안정을 느낀다. 어떤 것을 보호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이의 자기효능감을 높여주고, 보호 대상을 관찰하고 돌보는 과정에서 공감 능력도 길러진다. 보호하는 대상이 또래와 공유된다면, 아이의 교우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런 의미에서 학교 내 동물기르기는 요즘 아이들에게 훌륭한 처방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학생들의 심리·정서 회복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학교 내 동물 기르기가 효과적인 대책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23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서동용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각 시도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유·초·중·고·특수학교 1천947곳이 어류, 닭, 토끼 등 17만2천760마리의 동물을 기르고 있다. 전국 시도교육청을 통해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동물 현황을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결과가 갖는 의미가 크다.
학교 내에서 동물을 기르는 이유는 학생들의 생명존중의식 및 사회성 향상, 학교생활에 대한 만족도 증대, 인성 함양 등으로 나타났다.
대구에서도 유치원 16곳, 초등학교 18곳, 중학교 1곳, 고등학교 6곳, 특수학교 1곳, 마이스터고 2곳 등 모두 44곳에서 학교 내 동물을 기르기가 이뤄지고 있다.
대구 내 유치원 1곳과 학교 2곳을 방문해 학생들이 동물들과 어떻게 교감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숲속예은유치원, 다람쥐랑 토끼랑 같이 놀아요
달성군 다사읍에 있는 숲속예은유치원에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넓은 천연 잔디 운동장이 있다. 운동장 안쪽에 있는 놀이터 옆에는 아이들이 '동물친구들 사는 집'으로 부르는 공간이 있다.
이곳은 유아들이 동물을 기르며 정서적으로 안정을 느끼고 생명존중의 가치를 깨닫게 하려는 목적으로 2006년 개원 때부터 조성됐다. 예산은 자체적으로 유치원수목관리비에 편성해 운영하고 있다.
'동물친구들 사는 집'엔 다람쥐 3마리, 토끼 2마리, 백봉 오골계 2마리가 지내고 있으며 근처 연못엔 여러 마리의 열대어와 비단잉어도 살고 있다.
숲속예은유치원은 동물들 먹이 주기, 동물 관찰하며 그림 그리기 등 유아들이 동물과 교감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을 진행해왔다.
특히 백봉 오골계의 경우 올해 알에서 부화해 병아리를 거쳐 성체로 자랐는데, 유아들은 매일 유치원에 올 때마다 현관 앞에 설치된 부화기를 보며 그 과정을 세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유아들은 아침에 유치원에 왔을 때, 바깥놀이를 할 때, 집으로 돌아갈 때, 친구와 다투는 등 기분이 안 좋을 때 등 틈틈이 동물과 교감하며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다.
예쁜새싹반 공나윤(5) 원생은 "실수로 변기에 컵을 떨어트려 엄마한테 혼이 난 적이 있다. 속상한 기분으로 유치원에 왔었는데 '귀요미'(토끼)를 보니까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고 했다.
이나경 예쁜새싹반 담임교사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어린이집 등에 다니지 못한 유아들은 사회성이 부족한 경우가 더러 있었다"며 "그래서 올해 3, 4월엔 자신의 반에 선뜻 들어가지 못하는 유아들도 있었는데, 그런 유아들은 반에 들어가기 전에 심리적 안정을 찾도록 동물들과 대화하게 하고 먹이를 주게 했더니 효과가 좋았다"고 했다.


◆조야초, 음메에~흑염소와 함께 하는 학교 생활
대구 조야초교는 함지산의 남쪽 자락 아래 금호강을 앞에 둔 맑은 공기와 푸른 들이 어우러진 조야동에 자리 잡고 있다.
자연친화적인 주변 환경에 맞춰 학교의 특색을 살리고, 학생들에게 정서적인 행복감을 주기 위해 조야초는 2013년 행복학교(현재 미래학교)로 지정됐을 때부터 사육장을 조성해서 지금까지 염소와 닭을 기르고 있다.
염소는 암수 한 마리씩 해서 현재 2대째이며, 닭은 어른 닭 8마리와 9마리의 병아리가 살고 있다.

조야초 학생들은 염소는 '얌이'라 부르고 닭은 '꼬꼬'라 부르며 학교 뒤에 있는 사육장에 수시로 찾아가 막냇동생처럼 들여다보며 예뻐하고 있다. 꼬꼬가 병아리를 낳았을 때는 학생들이 수고한 꼬꼬를 위한 현수막도 걸었다.
또한, 조야초에 상주하며 시설 관리를 도맡아 하는 대구시교육청 소속 교육공무직 주무관이 있어, 주무관이 학생들에게 동물을 대하는 태도나 먹이를 주는 법 등을 가르치고 있다.
특히 동물을 좋아한다는 조야초 2학년 장관수 학생은 "얌이와 꼬꼬와 보기 위해 아침에 일찍 학교에 나오게 된다. 수족구에 걸려서 5일 결석했을 땐 정말 슬펐다"며 "동물원에 가지 않아도 학교에 오면 얌이와 꼬꼬를 볼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앞으로도 더 다양한 특징과 모습들을 관찰해보고 싶다"고 했다.
문근영 1학년 담임교사는 "학교에 대한 친밀감을 길러주기 위해 1학년 학생들을 사육장에 많이 데려갔다"며 "학교 내에서 동물을 기르는 것은 정서적 안정감, 생명존중의식함양뿐 아니라 학생들이 학교에 정을 붙여 학교 생활에 성실히 임하게 하는 장점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조암초, 꼬꼬댁~ 아파트숲에서 들을 수 있는 닭 울음소리
달서구 월성1동에 있는 조암초교는 학생의 99%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그만큼 학교 주변이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어 학생들이 평소에 가축과 작물을 접할 기회가 적다.
이에 조암초는 학생들을 위한 자연친화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개교 이듬해인 2009년 사육장을 설치했다. 이렇게 마련된 '조암동물농장'엔 현재 토끼 4마리, 닭 13마리가 자라고 있다. 조암초에도 시설 관리를 위해 시교육청 소속 주무관이 상주하고 있다.
도심지 아파트에서만 생활하는 아이들에겐 토끼와 닭들이 자라는 모습을 가까이서 관찰할 기회가 흔치 않다. 그래서 조암초가 아닌 다른 학교에서 조암동물농장을 찾아 오는 학생들도 종종 있었다.


특히 조암초에선 도시농업과 조암동물농장을 연계한 실천 중심 환경생태교육 활동이 눈길을 끈다.
학생들은 한 학년마다 고추, 방울토마토, 감자, 고구마, 땅콩 등 작물을 정해 학교 텃밭에서 직접 기르고 수확하는 '그린섬(Green Thumb)' 프로젝트(1인 1식물 기르기)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때 텃밭에서 발생하는 작물의 잔여물을 토끼와 닭의 먹이로 활용하면서 자원 순환에 대한 공부도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
조암초 6학년 박지환 학생은 "계속 도시에서 살아와서 동물을 보려면 동물원까지 가야 했는데 사육장을 통해 동물들이 무엇을 먹고,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눈으로 보고 배울 수 있어 좋다"며 "특히 3학년이 됐을 때 반에 모르는 친구들이 많아 새학기 초엔 걱정이 많았는데 동물들을 보러 사육장에 함께 가는 것을 계기로 친구들과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고 했다.
임상미 5학년 담임 교사는 "5학년 1학기 실과 과목에 동물 기르기 단원이 있는데 실제로 학교 사육장에서 교육과정과 연계한 활동들을 하면서 사육장이 학습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또한, 동물을 기르고 식물을 재배하는 과정을 함께 하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과 성취감 등을 느낄 수 있어 정서적으로도 좋은 효과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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