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장미경 씨의 시어머니 고 홍원순 씨

"아이들 다 자라 집 떠나고 부부만 남으니 어머님,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자녀들이 어릴 때 시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사진 맨 왼쪽이 장미경 씨. 오른쪽 두 번째가 시어머니 고 홍원순 씨. 가족 제공.
자녀들이 어릴 때 시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사진 맨 왼쪽이 장미경 씨. 오른쪽 두 번째가 시어머니 고 홍원순 씨. 가족 제공.

나의 시어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는 당신이 60대 중반이니 노년기로 막 들어섰을 무렵이었던 것 같다. 그 때 시어머니는 자식들 다 짝지어 떠나보내고 여유로운 노년을 보내고 계셨다. 시어머니는 말년에 기관지천식과 골다공증으로 치료를 오래 받으셨는데 시아버님과 자식들이 자가용으로 모셔다드리고 며칠 씩 입원할 일이 있으면 아버님께서 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밤을 세워 간호하기도 하셨다.

부모 속 썩이는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연금 수혜자인 아버님과 두 분이서 돈도 시간도 부족함 없이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는 모습을 보며 '우리 시어머니는 참 복이 많으신 분이다. 나는 언제 저런 대접을 받아보나?' 이런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만날 때마다 가끔씩 해주시는 어머님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눈으로 인생을 돌아보게 되고 '부모의 삶이란 것이 위대한 예술보다도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시어머니께서는 군위 한밤(대율리) 홍씨 가문의 맏딸로 태어나셨다. 당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많이 듣지 못해 아는 바가 없지만, 한글도 자유롭게 읽고 쓰시고 바느질이나 음식 솜씨도 야무지게 잘 하시는 걸 보면 엄한 집안의 가풍을 따라 순종적인 가정교육을 받으신 것으로 여겨진다.

어머니의 인생은 결혼과 함께 대반전을 맞이했다고 할 수 있다. 어머니께서는 우리 나이로 20세 되던 해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동갑내기 신랑과 결혼하셨다. 결혼할 당시 시가의 모습을 대충 그리자면 시할아버지, 시할머니, 시아버지, 시어머니 이렇게 네 분의 어른을 모셔야했고 아들만 7형제를 두신 어머님의 시어머니 덕택에 아직 걸음마를 배우는 막내 시동생 포함해서 6명의 시동생의 끼니와 의복 손질, 농사일까지 모두 갓 시집온 새댁의 몫이었다.

얼마나 어머님의 처지가 안타까웠으면 동네 사람들이 모이면 '아무개댁 새색시가 저 집 살림을 다 살아내겠나?' 하며 걱정스러운 눈으로 수군거렸다고 한다. 이때를 기억하며 어머님은 "내 젊을 때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잠시도 엉덩이 붙일 시간 없이 일하고 밤에는 길쌈해서 식구들 옷 짓고…. 잠 한번 실컷 자보는 게 소원이었지."라고 기억하시며 몸서리를 치셨다.

아버님은 결혼 후 곧 공군에 입대하셨고 그 후 미국에 있는 군부대 근무 포함 10년을 군에 계셨으니 신랑 없는 시집에서 얼마나 엄한 세월을 보냈을지 요즘 사람들은 감히 짐작하기도 힘들 것이다.

어머님의 1녀4남 중 셋째아들인 내 남편은 어릴 때 한 번 크게 앓아 목숨을 잃을 뻔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시누이 위로 아들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 아들을 홍역으로 잃은 적이 있는 시어머니는 열이 펄펄 끓는 셋째아들을 들쳐업고 인근에 있는 큰 동네 의원을 찾아가 사정사정하여 치료를 받고 천신만고 끝에 살려놓으셨다고 한다. 밤새 열이 나 축 늘어진 아들을 업고 새벽 어스름을 뚫고 바쁜 걸음을 옮기며 빈 포대기만 안고 집에 돌아올까 두려워 얼마나 우셨다는 어머니 이야기를 들으며 자식 둔 부모 마음이 다 이런건가하여 가슴이 아릿하였다.

우리 아이들이 다 자라 진학 때문에 집을 떠나가고 부부만 남으니 그때 어머님의 모습이 자꾸 눈에 선하다. 손자들 잘 자라기만을 지극 정성으로 기도하시던 시어머니가 오늘따라 너무너무 그리워진다. 어머님,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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