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들의 경주, 그곳에 가고 싶다] <2회>경주왕릉에 소풍가자

도심 장악한 '신라 왕릉' 천 년 동안 주인 행세한 셈

노서동 고분군. 경주 왕릉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
노서동 고분군. 경주 왕릉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

누군가는 '타지마할'을 보러 인도로 가고 또 누군가는 '피라미드'를 찾아 이집트에 간다. 그러나 나는 비행기를 타는 대신 경주에 간다. 경주에는 타지마할 같이 국가재정을 낭비한 왕비의 무덤이나 피라미드같이 불가사의한 건축 비밀을 담은 왕릉은 없다.

대신 키 낮은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왕릉이 기다리고 있다. 경주IC를 통해 시내로 들어오자마자 만나는 '오릉'은 신라 천년의 시조 박혁거세를 비롯, 남해 차차웅과 유리이사금, 파사이사금 등 4명의 왕과 알영 왕비를 비롯한 신라의 개국 주역들의 안식처다.

능역에 들어서면 소나무 숲 사이로 봉긋이 솟아있는 봉분이 보인다. 그러면 마치 할아버지를 만나러 온 손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몸 속 깊숙이 가라앉아있던 신라인의 DNA가 왕릉을 보는 순간 더욱 고양되는 것 같다.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완벽한 대칭을 이룬 걸작이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알려진 타지마할과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대통령 영부인의 '버킷리스트'에 올랐던 모양이다. 중국 시안의 진시황릉은 병마용을 비롯 엄청난 규모의 사후지하세계까지 갖고 있다.

'동방의 피라미드'라고 불리는 서하(西夏)왕릉도 세계적이다. 서울근교에 산재한 40기의 '조선 왕릉'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조선왕실문화의 가치를 인정받은 바 있다.

이런 세계적인 왕릉들보다 경주의 신라 왕릉이 더 아름답고 더 소중하다는 것을 예전엔 미처 깨닫지 못했다. 황남대총과 천마총 등이 있는 대릉원, 노동리·노서리 고분군,황남동 고분군, 서악동 고분군 등은 경주 도심을 독차지하듯 장악하고 있다. 고분이 주인행세를 하는 셈이다. 도심 어디에서나 왕릉을 볼 수 있고 왕릉사이로 산책을 하거나 '조깅'을 한다.

황리단길 '루프탑'에 가지 않더라도 월성초등학교 앞 노서리 고분에 가면 왕릉뷰를 반찬삼아 조식을 먹거나 이탈리아의 마르가리따 왕비가 가장 좋아한 피자인 '마르가리따' 피자와 '에그인헬 샥슈카'를 먹을 수 있다.타지마할과 피라미드에선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경주 왕릉이 줄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다.

대릉원의 사진포인트
대릉원의 사진포인트

◆경주를 경주답게 하는 왕릉.

왕릉은 죽은 왕을 추모하는 공간이자 산 자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공간이다. 왕은 어느 시대에나 신(神)과 동일시되기도 했고 때로는 독재자로 군림하기도 했다. 죽은 후에도 왕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엄청난 규모로 왕릉이 조성됐다. 왕의 능역은 누구나 접근할 수 없는 신성한 공간이었다.

고려시대이후 풍수지리에 따라 왕릉이 조성됐지만 신라 왕릉은 왕궁 월성 주변에 집중적으로 조성되었다. 그 이후에는 자생풍수에 따라 왕궁과 멀지 않은 경주 주변의 나지막한 산에 조성됐다.

경주의 신라시대 왕릉급 고분은 1,850기에 이른다. 도심은 물론 서악동에도 무열왕릉이 있고 '삼릉'은 남산 자락에 있다. 선덕여왕릉과 진평왕릉, 흥덕왕릉, 원성왕릉 등 수많은 왕릉은 외곽에 산재한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이처럼 많은 왕릉을 갖고 있는 도시는 없다. 왕릉이 만들어내는 '고분도시' 경주의 풍경은 오롯이 경주에서만 즐길 수 있다.

경주 왕릉은 다른 왕릉과 달리 닫힌 공간이 아니다. 누구나 언제든지 볼 수 있고 즐길 수 있다. 대릉원과 오릉, 그리고 태종무열왕릉을 제외하고는 왕릉을 구분하는 담장도 없다. 예로부터 왕의 무덤인 왕릉은 상서로운 기운이 넘치는 곳이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쉽게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고 참배하기도 어려웠다. 왕릉 주변 백성들도 먼 발치에서 참배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삼릉 주변을 '배동'(拜洞) 혹은 '배리'(拜里)라는 지명으로 부르게 된 것은 왕릉을 지나면서 참배했기 때문이다.

'경주를 경주답게' 하는 것은 신라천년의 수도 '왕경'의 궁궐터가 아니다. 불교문화의 정수로 불리는 불국사와 석굴암 혹은 사라진 황룡사 9층 목탑도 아니다. 세계사에서 유일무이한 '천년제국' 신라의 수도라는 역사가 경주를 특별하게 한 것도 아니다.

경주 시내 도심을 장악하고 외곽에까지 포진해있는 수많은 왕릉과 고분군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타지마할과 피라미드 그리고 조선 왕릉의 규모와 건축미까지도 능가한다. 왕릉이 중심을 차지한 경주 전역이 유네스코의 '역사유적지구'로 등재된 것은 그 때문 일게다.

뉴욕 한 복판에 센트럴파크가 있고 런던에는 하이드 파크가 있다면, 경주 도심은 노동·노서리 고분과 황남동 고분 그리고 대릉원이 차지하고 있다.

천년의 세월을 머금은 듯한 구불구불 빼뚤삐뚤한 경주 왕릉의 소나무
천년의 세월을 머금은 듯한 구불구불 빼뚤삐뚤한 경주 왕릉의 소나무

◆경주왕릉의 소나무

경주 소나무는 왜 왕릉을 감싸고 있을까? 경주 소나무는 또아리를 틀 듯이 하늘을 향해 용이 비상하듯 비틀려있을까?

경주의 어느 왕릉을 가더라도 주변을 소나무들이 에워싸고 있다. 키가 크지 않으면서 삐뚤어진 듯, 덜 자란 듯 하면서도 천년의 세월을 견뎌낸 경주소나무다. 울진의 금강송이나 춘양목같이 쭉쭉 뻗은 소나무는 예로부터 궁궐이나 대갓집 서까래로 쓰였다지만 경주 왕릉 소나무는 휘어지고 삐뚤빼뚤해서 목재로서는 쓰일 수가 없다.

그러나 제각각 휘어진채 빚어내는 키 작은 경주의 소나무 숲은 소나무사진으로 잘 알려진 배병우 작가가 가장 사랑하는 소재였다.

경주 왕릉 중에서도 경주 소나무의 특징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곳은 낭산 선덕여왕릉과 안강의 흥덕왕릉이 손에 꼽힌다.

경주 소나무가 천년 세월의 흔적을 온 몸으로 담아내면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게 된 것(?)은 이 지역의 토양이 소나무가 자라기에 열악하기 때문이라는 설(說)과 더불어 궁궐의 목재로 쓰일만한 소나무는 다 베어지고 못난 소나무만 살아남았기 때문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즉 금강송처럼 곧은 소나무는 벌목되었고 휘어진 소나무만 살아남아 '경주소나무'로 고착됐다는 것이다. 대릉원과 오릉은 물론이고 삼릉, 흥덕왕릉의 소나무는 모두 하늘로 쭉쭉 뻗는 대신 삐뚤거리는 곡선미를 가진 경주소나무의 전형이다. 왕릉을 지키는 소나무들이 휘어지고 키 작은 소나무가 아니었다면 천년의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다 베어져버렸을 것이다.

오릉의 키 큰 소나무. 경주 왕릉에서 이처럼 키 큰 소나무를 보기는 쉽지 않다.
오릉의 키 큰 소나무. 경주 왕릉에서 이처럼 키 큰 소나무를 보기는 쉽지 않다.

서기 495년 오릉에 행차한 소지왕(21대)은 곧은 소나무는 없고 굽은 소나무만 가득한 능역을 보고 물었다.

"어찌하여 (박혁거세의)능역에 곧은 소나무는 없고 굽은 소나무만 가득한 것인가?" 그러자 능역을 관리하던 신하는

"황공하오나 곧은 소나무는 궁궐을 짓느라 베었고 굽은 소나무만이 능상을 지키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소지왕은 "굽은 소나무가 대를 이어 씨를 내리니 굽은 소나무가 나올 수밖에 ..."라며 혀를 찼다.

경주의 소나무는 천년세월을 버텨 온 왕릉과 조화를 이루면서 세월의 애환을 애잔하게 담고 있다.

한 카페에서 바라본 경주 왕릉
한 카페에서 바라본 경주 왕릉

◆'왕릉뷰'도 경쟁력이다

진시황의 지하세계처럼 대릉원과 노서리 고분사이 땅 밑에 '신라의 지하세계'가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상상해봤다. 천년 제국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황남대총과 천마총, 금관총, 서봉총 등 '파헤쳐 본' 왕릉보다 여전히 발굴되지 않은 왕릉이 더 많기 때문이기도 했다.

왕릉의 상서롭고 신비한 기운은 '발굴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고고학계의 손으로 신라 금관을 처음으로 발굴한 '천마총'은 1973년에야 발굴이 이뤄졌다. 7월 26일 고분의 현실문(門)이 개방됐다. 찬란한 금관을 쓴 채 누워있는 왕이 보였고 잠이 든 듯한 모습의 유골은 양호했다. 곁에선 오색찬란한 천마도가 출토됐다.

그러나 문이 열린 그 순간, 갑자기 적란운(積亂雲)이 몰려오면서 천둥번개가 요란하게 쳤고 장대비가 쏟아졌다. 사방에 회오리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발굴요원들이 혼비백산해서 흩어졌다. 발굴책임을 맡은 고고학자는"삭신이 오그라드는 기괴한 공포가 엄습했다"고 기록했다.

숙소 창문을 통해서 바라본 왕릉
숙소 창문을 통해서 바라본 왕릉

경주 왕릉여행의 묘미는 왕릉을 즐기는 것이리라.

왕릉을 바라보면서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세상에 둘도 없는 수제맥주를 마시며 역사를 반추하거나 그냥 멍 때리는 건 어떨까? 핫플레이스 '황리단길'도 좋지만 오롯이 방해없이 왕릉뷰를 즐길 수 있는 곳은 길 건너편 노동·노서리 고분주변 카페와 레스토랑 그리고 게스트하우스다.

고분과 길을 마주한 채 자리한 '청춘호스텔'에 묵으면 아침에 일어나면서 창으로 왕릉뷰를 만끽하면서 쏟아지는 햇살과 더불어 조식을 먹을 수도 있다. 그 옆으로 수제맥주집 'ㅎㅎㅎ'와 카페 '데네브'가 있다. 하루 종일 불국사와 석굴암 혹은 첨성대와 월궁 등지를 돌아다녔다면 저녁에는 오롯이 왕릉뷰를 즐기는 왕릉뷰여행이 좋겠다.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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