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디올(Dior)'의 아이코닉 백 '레이디 디올 백'은 전 세계 유명 셀럽들과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 아이템으로 손꼽힌다.
1995년 디올 하우스에서 첫선을 보인 레이디 디올 백은 그 해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프랑스 방문 때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의 영부인이 디올에 요청해 다이애나에게 선물했으며 이 가방을 들고 다니던 모습이 언론에 노출되며 주목을 받았고, '레이디 디올(Lady Dior)'이란 이름으로 정식 출시되어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

초기의 이름은 프랑스어로 '사랑받는 사람'을 의미하는 '슈슈(Chouchou)'였다. 디올 메종의 시그니처 아이템인 '까나쥬 패턴' 퀼팅이 특징이며 까나쥬 패턴은 나폴레옹 3세의 의자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패턴으로 사각형의 실루엣에 둥근 손잡이로 디자인되었다.

◆ 꽃과 그림에 대한 열정을 패션으로 승화
크리스찬 디올은 1905년, 1월 21일 프랑스 서부에 있는 노르망디, 그랑빌에서 부유한 사업가의 아버지와 꽃과 예술을 좋아하는 어머니의 다섯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노르망디 해안 절벽에 위치한 레 롬브(Les Rhumbs)의 저택에서 살았으며 디올의 어머니는 가드닝의 매력에 빠져 넓은 정원을 가꾸는 것을 좋아하였는데 이런 어머니의 모습은 어린 디올에게 많은 영향과 영감을 주었다.
디올은 보통의 남자 아이들과는 달리 어머니와 함께 꽃을 가꾸며 그림과 의상에 관심이 많은 섬세한 소년이었다. 디올이 10살 되던 해 그의 가족은 레 롬브 빌라를 유지하면서 파리로 이사를 하였다.

디올은 건축과 예술을 좋아했지만 아버지의 뜻에 따라 외교관이 되기 위해 대학에서는 정치학을 전공하였다. 평소 살바도르 달리, 장 콕토와 같은 예술가들과 친했던 그는 1928년, 파리에서 친구인 자크 봉장과 함께 라 보에티 거리에서 아트 갤러리를 오픈하여 파블로 피카소, 막스 에른스트, 살바도르 달리, 후안 미로, 조르주 브라크 등의 작품 등을 전시하며 예술에 대한 많은 관심을 보였다.
1931년, 전 세계적인 공황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어머니와 형을 잃는 충격과 함께 아버지의 사업은 파산했고, 디올 역시 화랑의 문을 닫았다. 집안의 몰락으로 디올은 자신이 그린 크로키를 니나리치, 발렌시아가, 마기루프 및 꾸뛰르 하우스에 자신의 그림을 팔면서 생계를 유지했으며 그는 「르 피가로」 일간지와「쟈뎅 모데즈」잡지의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하였다.
1938년, 프리랜서의 삶을 정리하고 패션 디자이너 로베르 피게의 견습공으로 입사해 '데시나퇴르(의상의 일러스트나 스타일을 그려주는 사람)'로 일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디올은 군 복무를 하였고 1941년, 파리로 돌아와 패션 디자이너 뤼시앵 를롱 하우스에서 수습 디자이너로 일하며 실력을 키우며 자신의 이름을 파리 패션계에 알리기 시작하였다. 그때 함께 수습과정을 거친 디자이너가 지방시와 발망이었다.

◆ 럭셔리 제국의 기반이 된 디올 하우스 탄생과 '뉴 룩'
디올은 섬유업계 재력가 마르셀 부삭의 투자를 받아 1942년, 12월 6일 크리스챤 디올 꾸뛰르 하우스를 오픈하였다. 그 후 1947년 2월 12일, 몽테뉴가 30번지에 위치한 디올 하우스에서 첫 번째 오뜨 꾸뛰르 컬렉션과 함께 미스 디올(Miss Dior) 향수를 선 보였다.
어린 시절부터 꽃을 좋아한 디올은 첫 컬렉션의 테마를 화관을 뜻하는 '코롤(Corolle)'이라고 지었으며 조향사 폴 바쉐에게 사랑을 느낄 수 있는 '향'을 부탁하여 패션쇼 장은 미스 디올 향으로 가득하였으며 여자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 주었다.
디올의 컬렉션을 본 하퍼스 바자의 편집장 카멜 스노우가 "이것은 새로운 룩이다(It's such a New Look)"이라고 말하며 디올의 뉴룩이 탄생되었다. 1947년 3월 4일 크리스찬 디올 퍼퓸이 설립하였고 1947년 12월 17일 최초의 향수인 미스 디올이 출시되었다.

◆ 디올의 글로벌 시장 진출과 성공
1948년 뉴욕 5번가와 57번가에 매장을 오픈하면서 디올의 첫 글로벌 시장인 미국 진출을 시작하였다. 디올은 자신의 뉴룩을 계속 이어가려면 디올 브랜드의 전체적인 컬렉션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연출하는데 필요한 고급 기성복 라인과 액세서리 컬렉션을 함께 선보이기 시작했다.
뉴룩의 성공으로 디올은 직원 1700여 명을 거느리며 프랑스에 큰 공헌을 세웠다. 그 이후 섬유 산업과 패션 장인정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디올의 브랜드는 계속해서 성장하여 당대 최고의 스타들의 의상을 제작해 주었고 1950년부터 버티컬 라인, 오벌 라인, A라인, Y라인 등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가며 많은 여성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었다.
◆ 디올의 노르망디 에덴동산, 레 롬브(Les Rhumbs)
디올은 "향수는 여성스러움을 완성하는 것에 없어서는 안 되며 드레스만큼 향수도 탁월해야 한다고 했다." 디올은 어린 시절 노르망디의 에덴동산 레 롬브 저택의 수많은 나무들은 그에게 마르지 않는 영감의 원천이 되어 주었고 위안과 즐거움, 그리고 미래에 자신의 작품에 있어서 감각적 자산을 축척한 곳도 이 비밀의 정원에서 탄생한 것이다.
디올이 제일 좋아하는 꽃은 장미였다. 셀 수 없는 다양한 품종의 장미는 그랑빌 정원을 상징하는 꽃이기도 하며 장미의 향, 색깔, 꽃잎의 다양한 형태 등 장미를 가꾸는 것은 자신에게로 가는 추억 여행이었다.
1951년, 그는 그라스 중심에 있는 성 샤토 드 라콜 누아르를 매입하여 향수의 열정을 느낄 수 있는 대 정원에서 향수의 원료가 될 향기로운 꽃들과 다양한 나무들을 심으며 꿈을 그려나갔다. 파리의 번잡스러움과 유명세, 성공에서 잠시 떠나 자신의 시골집 정원에서 휴식을 취했다.
꽃에 대한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은 '플라워 우먼'에 대한 영감과 아이디어에서 나타났다. 코롤(Corolle, 꽃봉오리) 혹은 튤립 라인의 실루엣, 안감이나 옷 밑단에 꽃 모양의 수를 놓거나 자신의 양복에 달기도 하고, 미스 디올 향수병에서 풍겨 나는 장미와 가르데니아, 세이지, 오크모스의 향기, 빨간 개양귀비, 노란 수선화, 핑크빛 작약, 연보랏빛 진달래 등 이 모든 것들이 레 롬브의 정원에서 자라던 것들이었다.
이러한 꽃과 패션에 대한 열정으로 거대한 성공을 거둔 디올은 1957년, 10월 24일 이탈리아 몬테카티니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되어 그의 패션 역사 10년을 마감하며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 크리스찬 디올의 후임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데뷔
프랑스 오뜨 꾸뛰르 전체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담당하고 종업원 1700명에 달하는 디올 하우스의 문을 닫을 수 없었다. 젊고 열정적인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은 19세였던 1955년에 디올의 어시스턴트로 패션 하우스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디올은 창의적인 디자이너의 잠재력을 발견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보그에 따르면 디올은 1957년 생 로랑의 어머니를 만날 때가 되면 디올에서 자신의 뒤를 이을 사람으로 아들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1958년 1월 30일 이브 생 로랑은 디올 첫 번째 컬렉션을 선보였고, 컬렉션은 큰 성공을 거두어 패션쇼에 참석한 국제 언론 및 관객들에게서 기립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그의 성공도 잠시 1958년에서 1960년 사이에 생 로랑은 디올을 위해 6개 시즌의 컬렉션을 하였고, 1960년 9월 1일, 생 로랑은 군 복무를 위해 징집되었다.
그의 후임자로 마크 보앙(Marc Bohan)을 시작으로 지안프랑코 페레, 존 갈리아노, 라프 시몬스 등이 디올의 여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였다.
◆ 디올의 첫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2016년,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Maria Grazia Chiuri)가 임명되었다. 그녀의 대담하고 창의적인 시도를 통해 시대를 초월한 디올의 아이콘과 코드를 재창조하고 있다. 전 세계의 예술가 및 공예가들과의 많은 협업을 통해 지식과 문화 사이의 연결 고리를 지속적으로 엮어 매 시즌 새로운 예술 작품을 만들고 있다.
◆ 재해석된 레이디 디올(LADY DIOR)의 예술 작품(ART)
매년 레이디 디올 백은 모던함과 새로움의 교차점에서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전 세계의 예술가들에 의해 새롭게 재해석 디올 레이디 아트(Dior Lady Art) 프로젝트는 화가, 조각가, 디자이너들이 각자의 예술적 스타일에 맞춰 자유롭게 재해석하고 이를 디올 하우스의 탁월한 테크닉과 장인정신으로 창의적인 비전을 융합한 유니크한 예술 작품으로 구현하는 프로젝트이다.
◆ 한국에서 최초로 열린 디올 패션쇼
디올이 이화여자대학교와 여성 리더 양성을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하며 디올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에서 패션쇼를 개최하였다. 지난 4월 30일 이화여자대학교 진행된 이번 패션쇼는 학창 시절 추억의 아이템인 교복을 재해석하여 펑크라는 요소를 접목하고 유니크한 디테일로 새로운 유니폼의 의미를 부여했다.

박연미 디자이너 명장,디모먼트 디자이너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