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김수근 씨의 6·25 전쟁 당시 전우 이상기 씨

"3년 내내 함께 전장 누빈 전우였는데…생사조차 몰라 안타깝기만 합니다"

김수근 씨가 항상 가지고 다닌다는 군 복무 시절 전우들의 사진. 앞줄 왼쪽 두 번째가 김 씨, 뒷줄 왼쪽 두 번째가 이상기 씨. 김수근 씨 제공.
김수근 씨가 항상 가지고 다닌다는 군 복무 시절 전우들의 사진. 앞줄 왼쪽 두 번째가 김 씨, 뒷줄 왼쪽 두 번째가 이상기 씨. 김수근 씨 제공.

올해 내 나이 만으로 여든여덟 살, 나에겐 정말 그리운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내 나이쯤 되고 보니 살아서 만날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하늘이 도우면 그 흔적이라도 만나볼 수 있을까 싶어 이렇게 매일신문에 사연을 써 봅니다. 글 쓰는 솜씨는 없지만 그래도 글을 쓰게 만든, 제가 그리워하는 사람은 6·25 전쟁 때 함께 참전했던 전우 '이상기'입니다.

저는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인 16살 때 6·25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북한군의 박격포와 기관총 사격 소리가 팔공산 너머 들려오고 팔달교 인근에 북한군이 쏜 포탄이 떨어지던, 정말로 적이 가까이 있음을 몸으로 실감할 수 있던 시절이었죠. 그 때 저는 군대에 들어가 전쟁에 참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 대구에서는 기독교인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한십자군 의용대'라는 조직이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대한기독교구국단'을 이끌던 한경직 목사와 '대한예수교장로회 청년면려회전국연합회' 회장인 대구 성광교회 김병섭 장로 등이 국방부와 논의해 결성한 의용군이었지요. 저 또한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의용대에 들어가 군사훈련을 받았습니다.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던 8월 초 부산으로 가서 육군 통신학교에서 다시 기본 군사교육을 받은 뒤에야 전선에 배치됐습니다. 전쟁터에 갔을 때 그 부대에서 만난 친구가 바로 이상기였습니다. 저와 나이도 비슷했고, 통신부대에서 만나 경비부대에 가서 함께 북한군 무장공비를 소탕하는 작전에도 함께 참여했습니다. 그렇게 전쟁 3년 내내 함께 붙어다니던 친구였습니다.

충청도 출신이었던 이상기 군의 첫 인상은 풍채도 좀 있던, 통통했던 체격이었습니다. 인상도, 성격도 물론 좋았습니다. 친해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부대에서 제 또래가 그 친구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전쟁 중에 의지할 데라고는 결국 전우 아니겠습니까. 나이가 들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많은 전우들 중 이상기 군이 계속 떠오르는 건 아마도 그 많은 전우들 중에서 나와 나이도 비슷했고, 말도 잘 통했고, 3년 내내 나와 함께 전장을 누비면서 쌓은 정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와 이 군은 함께 경북 청도군부터 소백산, 태백산, 지리산 등 여러 곳에 암약해 있던 무장공비들을 소탕했습니다. 전쟁 중에 친구를 잃을 수도 있었고 제가 세상에 없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3년간을 함께 다니며 둘 다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두 사람에게 모두 천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쟁이 끝난 뒤인 1955년 1월, 저와 이상기 군은 제대를 했습니다. 헤어질 때는 서로 주소도 주고받으며 서로 연락하고 지내자며 다짐하고 헤어졌습니다. '충북 제천군 제천읍 남천동'이라는 이 군의 주소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하지만 전쟁 후 연락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지금껏 살아왔고 나이가 드니 친구였던 그에 대한 그리움만 쌓여갑니다.

전쟁이 멈춘지도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전쟁터에서 함께 생사고락을 나눈 전우인데 이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어찌 제대로 연락조차 못 해 봤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살아있다면 부디 다시 만나 지난 날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상기 군, 자네 살아는 있는가? 살아있다면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가? 우리 70년 넘게 못 만난 동안 난 이렇게 변해있다네. 자네의 변한 모습도 보고 싶구만. 만나서 이때껏 살아온 이야기 나누며 긴 밤 지새고 싶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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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매일신문이 함께 나눕니다. '그립습니다'에 유명을 달리하신 가족, 친구, 직장 동료, 그 밖의 친한 사람들과 있었던 추억들과 그리움, 슬픔을 함께 나누실 분들은 아래를 참고해 전하시면 됩니다.

▷분량 : 200자 원고지 8매, 고인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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