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에서도 설 명절 특수는 옛말이 됐다. 성수용품 쇼핑객들은 간식으로 찌짐하나 사먹기도 부담될 정도로 가격이 올랐으나 상인들도 수익이 급감했다며 한꺼번에 울상이다.
저성장 장기화와 코로나 역품으로 경제가 뒷걸음 치고 있는 바닥 경제 상황이 설 차례상을 준비 중인 전통시장에 그대로 나타났다. 1천원짜리 간식이던 찌짐 한장이 어느새 50% 이상 올랐으며 김밥 한줄도 4-5천원에 달했다.
설 명절을 앞둔 17일 중구의 대형 재래시장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물건을 사는 손님들도, 파는 상인들도 낯빛은 밝지 않아 보였다. 예년의 활기찬 명절 분위기는 온데 간데 없다.
"단골손님들도 가게를 찾았다가 안 사고 그냥 갑니다. 그렇다고 가게 시작할 때부터 해왔던 고정 메뉴인 빈대떡을 뺄 수도 없고 난감하죠."
대구 중구 대신동 서문시장에서 30년간 빈대떡을 팔았다는 A(78) 씨는 지난해에 빈대떡 가격을 한 장당 1천원에서 1천500원으로 올렸다. A 씨는 지난 10년간 한 번도 가격을 올린 적이 없지만 올해 한 차례 추가 인상도 고려 중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한 해 동안 가파르게 상승한 원재료 가격에 소상공인들의 부담이 날로 커지고 있다. 최근 붕어빵, 국화빵 등 길거리 음식이 점차 사라지는 데 더해 서민들이 즐겨 찾는 전통시장 먹거리 가격 또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일반 음식점에서 판매하는 빈대떡은 더 이상 서민 음식이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다. 취재진이 중구 일대 빈대떡 가게 10곳을 조사한 결과 한 그릇(2인분 기준)에 평균 1만~1만5천 원으로 파악됐다. 소비자는 대표적 서민 음식마저 마음 놓고 즐기지 못하게 되면서 소비 심리가 위축되는 분위기다.
◆식용유, 밀가루 등 원자재 값 전반 상승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의 '2022년 12월 생활필수품 가격조사' 결과에 따르면 1년 전과 비교했을 때 39개 주요 생필품 품목의 작년 한 해 평균 가격 상승률은 12%로 집계됐다. 2021년 평균 가격 상승률이 5.4%였던 것에 비해 2배 이상 상승한 것이다.
특히 식용유, 밀가루 가격 상승 폭이 가장 컸다. 이들 품목 가격 상승률은 각각 31.7%, 31.3%로, 모두 30% 이상 올랐다. 마요네즈(23.2%), 된장(22.5%), 참기름(21.2%), 참치 통조림(19.4%), 쌈장(18.5%), 어묵(16.6%), 고추장(16.6%) 등이 뒤를 이었다.
올해 가격이 많이 오른 생필품 가운데 상위 5개 제품도 모두 식용유와 밀가루였다. 브랜드별로는 총 82개 제품 가운데 오뚜기 '콩100% 식용유' 1.8ℓ 인상률이 가장 높았다. 해당 제품은 지난 2021년 말 기준 7천68원에서 작년 말 9천774원으로 1년 새 38.1% 올랐다.
다음으로는 대한제분의 '곰표 밀가루 중력분(다목적용)' 1㎏이 재작년 말 1천546원에서 작년 말 2천82원으로 34.7% 오르며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이어 사조해표의 '식용유 콩기름'(28.8%), CJ제일제당 '백설 밀가루 중력분 다목적용'(28.2%), CJ제일제당 '백설 콩100%로 국내에서 만든 콩기름'(28.0%)이 뒤를 이었다.
물가 상승세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5년 전인 2017년보다 밀가루는 1kg 1천280원에서 1천880원으로 46.9% 올랐고, 설탕은 1천630원에서 1천980원으로 21.5% 상승했다. 식용유와 LPG 가스 가격도 각각 33.2%, 27.4% 올랐다.
원재료 가격 인상의 배경에는 다양한 국제적 요인이 있다. 원·달러 환율 문제와 지난해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국제 곡물 가격 상승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더불어 재작년부터 기상 악재로 인한 세계적 농산물 가격 상승,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물류 차질 등도 영향을 미쳤다.
◆상인들은 코로나19, 물가 상승 '이중고'
전통시장 상인들은 밀가루, 기름 값뿐 아니라 일회용기, 인건비, 가겟세 등도 부담에 한몫했다고 입을 모았다. 코로나19 이후부터 이어지는 경기 악화에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장사를 접는 소상공인도 늘고 있다.
빈대떡 가게가 모여 있는 대구 중구 남성로 염매시장에서는 지난해 가게 10곳 중 2곳이 영업을 중단했다. 염매시장 관계자는 "작년 봄쯤부터 하나둘 가격을 인상하기 시작해서 지금은 모든 가게가 다 올린 상태다. 기본 식재료인 식용유, 밀가루, 설탕 가격이 다 올라 별다른 대응책을 마련할 수도 없다"고 전했다.
대구의 한 재래시장 상인 B(60) 씨도 "장사를 접어야 하나 고민이다. 반찬가게부터 국밥집까지 인근 가게 중에 가격을 안 올린 데가 단 한 곳도 없다"면서 "경기가 안 좋아 손님들도 소비를 줄였다. 밀가루 대신 녹두나 쌀, 콩 등 비율을 늘려 섞고 있지만 임시방편일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 한 해 물가 상승률은 5.1%로 1998년 외환위기 때 7.5%를 기록한 후 2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먹거리 물가뿐만 아니라 금리와 각종 공공요금 줄인상이 예고된 것도 서민들의 부담을 더하고 있다. 당장 지난 1일부터 전기요금이 9.5% 올랐다. 외식 물가는 7.7% 상승해 1992년 이후 오름폭이 가장 컸다. '고물가 시대'가 굳어질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조광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모든 물가가 동시에 오르면서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힘들어지고 소비가 위축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말 그대로 월급봉투 빼고 모든 게 다 오르는 상황"이라며 "경기가 어려우면 붕어빵, 빈대떡 같이 서민 소비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부분에서 가장 먼저 체감하게 된다. 특히 대구의 경우 이전부터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세계적으로 여러 요인이 간섭된 상황이고 전 세계가 물가 상승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에 특수한 상황보다는 자연스러운 상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정부나 지자체는 단기적인 지원보다는 물가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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