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만배 육성으로 "곽상도가 돈 달래" 말했지만…증거 인정 안 된 이유는?

다른 사람과 대화 전하는 '전문진술' 원칙적으로 증거 배제
곽 전의원 아들, 법정에서 "돈 요구 안했다" 진술

'대장동 일당'에게서 아들 퇴직금 등의 명목으로 거액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곽상도 전 국회의원이 8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명 '정영학 녹취록'에는 곽상도 전 의원이 아들을 통해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에게 돈을 요구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담겼으나 이는 뇌물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인정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전달된 '전문(轉聞)진술'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법리에 따라서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이준철 부장판사)는 전날 선고한 곽 전 의원의 판결문에서 검찰이 제출한 증거에 효력(증거능력)이 있는지 판단하고 근거를 설명하는 데 약 40쪽을 할애했다.

회계사 정영학씨의 녹음파일인 일명 '정영학 녹취록'은 곽 전 의원 재판에도 증거로 제출됐다.

2020년 4월 4일 녹음된 파일에서 김씨는 정씨에게 "병채 아버지(곽상도)는 돈 달라 하지, 병채 통해서. 며칠 전에도 2천만원"이라고 말한다.

이어 "그래서 '뭘? 아버지가 뭐 달라냐?' 그러니까 '아버지한테 주기로 했던 돈 어떻게 하실건지' 그래서 '야 인마, 한꺼번에 주면 어떻게 해? 그러면 양 전무보다 많으니까 한 서너 차례 잘라서 너를 통해서 줘야지 그렇게 주면 되냐'"라고 말한다.

김씨가 곽병채씨와 나눈 대화를 정씨에게 전한 것으로, 이 대화 내용이 사실이라면 곽 전 의원은 아들을 통해 김씨에게 수상한 돈을 요구한 것이 된다.

재판부는 이 녹음파일에 대해 '김씨가 곽 전 의원에게 돈을 주기로 약속했다'거나 '곽 전 의원이 아들을 통해 돈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로 쓰일 순 없다고 판단했다.

김씨가 정씨에게 전달한 곽병채씨와의 대화 내용이 형사소송법상 원칙적으로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 전문진술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피고인 김만배의 (녹음 파일 속) 진술은 피고인이 아닌 자인 곽병채의 진술을 내용으로 하는 진술로 전문진술"이라며 "그런데 곽병채는 공판에 출석해 증언했으므로 전문진술을 증거로 인정할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바꿔 말해 곽병채씨 본인이 직접 법정에 나와 증언한 만큼 그의 말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 김만배씨의 말을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 취지다.

김씨는 재판에서 "정씨와 대화하면서 이같은 취지의 말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곽병채와 그런 (곽 전 의원이 돈을 요구한다는) 대화를 한 일은 없다"는 취지로 진술한 바 있으며, 곽병채씨도 아버지를 대신해 돈을 요구한 일이 없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재판부는 전날 곽병채씨가 화천대유에서 퇴직금, 성과급 조로 받은 50억원이 이례적으로 큰 액수라면서도 그가 경제적으로 독립해 곽 전 의원이 돈을 직접 받았다고 평가할 수 없고 대가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뇌물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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