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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 밖으로 내어 보일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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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아니 에르노/ 신유진 옮김/ 1984Books/ 2022)

치부일 수밖에 없는 내밀함을 내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용기를 가졌을까? '뭐 어때, 나 진심으로 살았어. 내 인생이잖아!'라는 듯 아니 에르노의 벽력같은 단호함이 시원하게 가슴을 뚫어 내린다. 날것 그대로의 치부가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것은 치부가 아니라 그 여자의 역사가 되었다. 밖으로 내어 보일 용기, 그것을 아니 에르노는 해냈다. 노벨문학상은 그런 아니 에르노의 손을 잡았다. 세월은 문학적 판도를 바꿀 만한 메시지를 품고 있는 그런 소설이다.

소설 속 그녀는 1940년 프랑스 릴본에서 태어났다. 노동자 계급의 부모를 둔 그녀는 단지 집과 가깝다는 이유로 부르주아 계층의 아이들이 다니는 사립학교를 가게 된다. 이곳에서 그녀가 태어난 세계와 존재하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조차 다른 부르주아 세계와의 격차에 혼란스러워 한다. 그녀는 자신과의 타협을 통한 나름의 방식으로 두 세계에 균형을 이루게 된다. 자신이 속한 계급에서 우상향 이동한다.

4살 때의 사진으로 전쟁이 막 끝난 45년 이후의 사회상과 함께 아니 에르노의 소설은 길을 잡아 나간다. 때론 일기 같기도 하고 때론 역사적 시점의 사건들을 툭툭 건조하게 나열하기도 한다. 한 사람의 역사가 세상의 역사와 충돌할 때 일어나는 복잡한 서사이니 한 호흡으로 따라가기에는 쉽지 않은 인내가 필요하다. 사진의 설명과 함께 장면은 바뀐다. 이렇게 작가는 66년의 세월을 긴 호흡으로 이 작품에 담았다.

2000년쯤, "2월에 수영복이 나왔다. 물건들의 시간은 우리를 빨아들였고 우리는 끊임없이 두 달을 앞서 살아야했다."(263쪽) 생활 편의성이 이젠 늙지도 않게 만든다는 그녀는 58세에 연하의 유부남과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그녀 앞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기억이 노화로 인해 점차 흐려지는 것을 느낀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이 올까 봐 두려워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바로 지금, 글로서 자신의 부재를 형태로 만들어 놓아야 하며, 20년째 자신의 분신이자 동시에 앞으로 점점 더 긴 시간을 보내게 될, 아직 미완성인 수천 개의 메모상태에 불과한 이 책을 시작해야만 한다"(317쪽)며 '세월'을 집필하게 된 동기를 풀어 놓는다. 그녀가 살다 간 행적을 이루는 기간이 아니라 그녀를 관통한 그 시간을 '우리'라는 묶음 속에 독자와 작가를 은유, 소설적 비유가 배재된 객관적 글쓰기로 세월 속에 함께 존재시킨다.

그녀의 실체는 세상에서 사라지겠지만 그녀의 존재는 세월 속에서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

백무연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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