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떠난 지 두 달 지난 지금 방 안에는 나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소. 책상 위에는 몇 년 전부터 취미로 매일 베껴쓰던 금강경이 있지만 당신이 가고 나서는 붓펜이 잡아지지 않는구려. 정말 세상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소. 의사 선생님 말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에 우울함이 올 수 있고 짧으면 한두 달, 길면 1년 넘게 간다는데 지금 상황으로는 1년은 넘길 것 같소.
당신과 함께 살기로 한 건 서로 나이 마흔이 넘어 의지할 데 없이 외로운 사람끼리 서로 마음을 맞추며 의지하며 살아보자는 뜻이 컸었지. 당신은 나름 똑똑한 구석도 있었지만 성격이 급해 가끔 나랑 투닥거리기도 했지만 그게 또 사는 과정이라 생각하면서 함께 마음을 맞춰가며 살지 않았소.
그러고보니 없는 살림이었지만 당신과 함께 가끔 바람쐬러 여기저기 돌아다녔던 게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던 듯하오. 20년 전이었던가? 강원도 정동진역에 갔을 때, 바다를 보면서 우리는 정말 행복했었지. 그 때 정동진역에 있던 시비(詩碑) 옆에서 찍었던 사진 보면서 그 때를 계속 추억한다오. 서로 마음을 맞추면서 살아가던 그 때가 너무 그리우니까 계속 사진을 보게 되는구려.
당신을 삼킨 폐암이 이렇게까지 빨리 당신을 저 먼 곳으로 데려갈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소. 허리가 아파서 그저 예전에 받았던 허리 수술의 후유증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암세포가 폐를 넘어 허리 쪽 척추 부분까지 전이된 상황…. 그게 지난해 8월이었지.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정도가 됐다는 말을 들으니 한 대 얻어맞은 듯 하더이다. 서로 의지하면서 한평생 살아갈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당신이 떠나갈거라고는 예상을 못 한 거였소.
그렇게 당신의 투병 생활이 시작됐지. 어느순간 화장실을 갈 때 휠체어를 쓰지 않으면 안되다가, 시간이 더 지나서는 아예 침대에서 내려올 수 없는 상황까지 왔고, 당신은 그 때부터 혼자 남을 나를 걱정하기 시작한 듯 하더이다. 치료받을 때 멀리서 당신과 눈이 마주쳤는데, 당신의 눈빛이 '저 양반, 혼자 남으면 어쩌나'하고 말하는 것 같았소.
원래대로라면 항암치료 후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는 게 수순이라고들 하는데 당신은 없는 살림에 병원비까지 나가면 내가 힘들까봐 병원으로 안 간다 하더니 세상 떠나기 얼마 전부터 갑자기 식음을 전폐했었소. 간병인이 물을 빨대로 주면 물 조차도 안 마시겠다며 빨대를 깨물어버렸다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소. 죽을 때까지 내 걱정하다가 간 불쌍한 사람….
곡기를 끊고 일주일이 지났을까, 진통제로 버티던 당신은 끝내 숨을 쉬지 않았소. 당신이 떠나고 난 뒤 당신이 나를 위해 약간의 돈을 모아놨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그 돈만 있었다면 당신을 더 오래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소. 당신이 홀로 남겨질 내가 곤궁하게 살까봐 안타까운 마음에 모아뒀다는 걸 알지만, 이걸 쓰려니 당신의 목숨을 끌어쓰는 것 같아서 도저히 손을 못 대겠더이다.
그래서 당신 죽어서도 좋은 데 가라고 좋은 곳에 기부했소. "당신 쓰라고 남긴 돈인데 왜 기부했느냐"라고 한소리 할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지만, 괜찮소. 산 입에 거미줄 치겠소?
난 오히려 내 아픔을 털어놓을 사람, 같이 병원에 가 줄 수 있는 사람, 일상을 함께 할 사람이 사라져 너무 가슴이 아프오. 서로 의지하며 살았는데 이젠 진짜 혼자가 됐구려. 떠나간 당신, 사랑하고 너무 그립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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