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연미 디자이너의 세계 명품 이야기] 혁신적인 아방가르드를 계승하는 ‘발렌시아가’

섬세하고 정교한 테일러링의 천재 디자이너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벨기에 국왕 보두앵 왕비 1세의 결혼식에 웨딩드레스를 제작
발렌시아가를 부활시킨 잇 아이템 모터사이클 시티백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스피드 트레이너’와 '트리플 S'

발렌시아가 패션
발렌시아가 패션

◆ 천재적인 꾸뛰르에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1895년 1월 21일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어촌 게타리아에서 태어난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는 어부 일을 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재봉사로 일했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바느질을 배웠고 옷에 관심이 많아 만들기를 좋아하였고 별도의 패션 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배운 뛰어난 바느질 솜씨로 12세 때 재단사의 견습생으로 일하며 패션계에 입문하기 시작했다.

1917년 귀족들이 자주 찾는 스페인의 휴양지 산세바스티안에 그의 첫 번째 패션하우스를 열고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도 매장을 오픈하며 왕실과 귀족들에게 그의 실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스페인 내전으로 더 이상 작업을 이어 갈 수 없어 꾸뛰르의 본 거지인 파리로 향했다.

발렌시아가 자화상
발렌시아가 자화상

◆ 패션의 도시 파리에서 오픈한 첫 꾸뛰르 하우스

1937년 8월 아베뉴 조르주 생크에 '발렌시아가' 꾸뛰르 하우스를 오픈하였고 17세기 화가 벨라스케스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첫 번째 컬렉션을 발표하여 큰 호응과 인기를 얻으며 파리에서의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시작으로 패션계에서 주목받는 디자이너가 되었다.

1947년 최초의 발렌시아가 향수 르 딕스(Le Dix)를 출시하였고 다음 해 두 번째 향수 라인을 출시하며 향수, 주얼리 등의 사업을 시작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디올의 뉴룩이 큰 인기를 얻고 있을 때 발렌시아가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라인의 튜닉 드레스, 코쿤 코트, 엠파이어 라인의 하이 웨스트 드레스 라인 등을 선보이며 여성을 위한 새로운 실루엣 개발에 기여하였고 그 공을 인정받아 1958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상했다.1960년 발렌시아가는 파비올라 데 모라 이 아라곤이 벨기에 국왕 보두앵 왕비 1세의 결혼식에 웨딩드레스를 제작해 주었다.

발렌시아가가 영감 받은 회화 작품과 의상들
발렌시아가가 영감 받은 회화 작품과 의상들

이후 시대의 흐름은 기성복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고급 맞춤복을 찾는 고객들이 점차 줄어들었고 세상의 변화에 타협점을 찾지 못한 발렌시아가는 새로운 디자인 개발에 흥미와 의욕을 잃어 1968년 마지막 컬렉션을 끝으로 은퇴 선언을 하고 고향인 스페인으로 돌아가 4년 뒤 1972년 3월 24일 세상을 떠났다. 이후 발렌시아가 하우스는 1986년까지 휴면 상태를 유지하며 예전의 명성을 잃게 되었다.

니콜라 게스키에르
니콜라 게스키에르

◆ 코마 상태의 발렌시아가를 부활시킨 니콜라 게스키에르

발렌시아가가 세상을 떠나고 쇠퇴하는 브랜드를 살리기 위해 후임 디자이너로 미셀 고마, 조세푸스 티미스터를 영입했지만 예전의 인기를 되찾기는 힘들었다. 그렇게 방황하던 발렌시아가를 1997년 프랑스 출신인 26세의 젊은 니콜라 게스키에르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하면서 새로운 생명력 불어넣기 시작했다.

첫 번째 컬렉션에서는 미래지향적이고 세련된 룩을 선보였고 예술성과 상업성 모두 지켰다는 극찬을 받았으며 게스키에르의 수많은 인기 아이템들 중 일명 '모터 백'이라고 불리는 모터사이클 시티백은 2000년대 초반 대중들에게 큰 인기 끌면서 발렌시아가의 매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후 발렌시아가는 케링 그룹에서 인수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시작하였고 15년의 역사로 많은 업적을 남긴 게스키에르는 2013년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어 발렌시아가를 떠났다.

모터사이클 시티백
모터사이클 시티백

게스키에르의 후임으로 뉴욕 패션계의 큰 사랑을 받은 대만계 미국인 알렉산더 왕을 영입하였으나 3년 만에 결별을 선언하였다.

◆ 혁신적인 아방가르드를 추구하는 뎀나 바잘리아

1981년 구, 소련의 작은 나라 조지아에서 태어난 뎀나 바질리아는 벨기에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를 수학하였고 메종 마르지엘라, 루이비통에서 경력을 쌓으며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2014년 스트릿 스타일의 하이패션 브랜드 '베트멍'을 런칭하며 젊은 패션 피플들에게 큰 인기를 얻으며 패션의 혁신을 가져온 디자이너이다.

뎀나 바질리아
뎀나 바질리아

2015년 발렌시아가는 알렉산더 왕의 후임으로 뎀나 바질리아에게 러브 콜을 보냈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했다. 2016년 가을 시즌 첫 컬렉션에서 과감한 테일러링과 아방가르드라인의 수트와 코트들을 스포티한 스트릿 룩으로 결합하여 새로운 발렌시아가의 이미지로 완전히 탈바꿈하였다.

뎀나가 선보인 작품들은 브랜드의 창립자 발렌시아가의 새로운 혁신의 정신과 닮아 있다는 점에서 큰 기대를 모았고 그 기대에 부응하듯 잇 아이템들이 줄을 이어 상승세를 타면서 가장 젊고 핫한 명품 브랜드로 떠오르며 연 매출 2조 원을 넘어가고 있다.

◆ 전 세계 메가 열풍을 가져온 발렌시아가 슈즈와 오뜨 꾸뛰르의 부활

뎀나의 가장 대표적인 잇 아이템은 2017년 봄/여름 시즌에 선보인 양말을 신은 듯 발목을 감싼 유니크한 디자인 슈즈 '스피드 트레이너'와 독창적인 면 분할의 디자인으로 발볼이 넓고 투박한 실루엣을 지닌 어글리 슈즈 '트리플 S' 등의 다양한 라인을 선보이며 트렌드 세터(유행 선도자)는 물론 MZ세대에게 큰 인기를 얻으며 앞으로의 발렌시아가의 행보를 보여주었다.

트리플 S
트리플 S

발렌시아가의 히트작 '트리플 S'의 인기는 대중뿐만 아니라 명품 브랜드에도 반영되어 구찌, 샤넬, 루이비통까지 앞 다투어 어글리 슈즈를 출시하며 전 세계적으로 어글리 슈즈 열풍을 가져왔다.

2021년 53년 만에 부활한 뎀나의 발렌시아가 오뜨 꾸뛰르 컬렉션은 절제되고 구조적인 테일러링과 사회적인 메시지가 담긴 스트리트 웨어의 결합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경계를 무너뜨린 컬렉션을 선보였다. 동유럽 스타일의 트레이닝 복과 데님소재 룩과 젠더리스 스타일로 경계를 허물며 자신만의 스타일로 컬렉션을 구축하였다.

감자 칩
감자 칩 '레이즈' 패러디

◆ 저렴하고 대중적인 상품을 리메이크하는 황당하고 파격적인 명품 브랜드

뎀나가 발렌시아가에 취임 이후 황당한 제품들을 선보였다. 이케아의 장바구니, 심플한 디자인의 종이 백, 감자 칩 과자봉지 등 가장 흔하고 저렴한 대중 브랜드의 제품들을 패러디하여 명품 브랜드에서 200-300만 원에 판매하며 대중들에게 원성을 샀다.

보통 저가의 브랜드에서는 명품 브랜드의 디자인을 카피하는 경우는 종종 있으나 명품 브랜드에서 저가의 제품을 패러디하는 사례는 이례적인 일로서 심지어 잘 팔리기까지 하며 상당수의 제품들이 매진되었다. 2020년 봄/여름 컬렉션에서는 아디다스와의 콜라보레이션을 선 보여 또 다시 인기를 확인했다.

유엔세계식량계획 x 발렌시아가 캡슐
유엔세계식량계획 x 발렌시아가 캡슐

◆ 사회적 이슈와 문제점을 패션으로 표현하는 디자이너

패션 디자이너가 되지 않았다면 인류학자가 되었을 거라 말하는 뎀나는 트빌리시 주립대학에서 4년간 국제 경제학을 공부한 이력을 가지고 있으며 패션을 통해 사회와 소통하며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있다.

조지아(구, 소련) 출신의 뎀나는 어린 시절 내전으로 난민 생활을 겪은 바 있다. 지난 22년 3월에 열린 가을/겨울 컬렉션 무대에서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하는 노란색과 파란색 컬러의 티셔츠를 객석 의자 위에 올리고 러시아 전쟁에 대하여 우크라이나의 지지를 표명하였다.

그리고 기후와 환경 변화에 따른 인류의 위기를 경고하는 컬렉션과 미성년자 모델을 착취하는 패션계를 비판하기 위해 18+(에이틴 플러스)라 적힌 스웨트 셔츠를 만들었다. 또 캡슐 컬렉션의 일환으로 유엔(UN)의 기아 퇴치를 위한 세계식량계획(WFP)과 함께 'Saving Lives Changing Lives' 문구의 구호 메시지를 전하는 컬렉션으로 판매 수익의 20%가 기부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쓰일 예정이다.

뎀나는 "당신이 입는 옷이 당신의 태도를 말합니다." 라며 발렌시아가를 입는다는 것은 이러한 사회적 문제와 이슈를 함께 해결하는 것에 동참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말하며 브랜드의 이미지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 아동 광고의 논란과 NCA 아동 복지 재단의 후원

패션을 통한 선한 영향력을 전달하며 쌓아 올린 발렌시아가의 이미지도 한순간의 실수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 듯 2022년 11월 테디 베어를 들고 있는 아동 광고 캠페인에서 소아성애적 화보촬영으로 역대 위기를 맞으며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후 3개월이 지나 발렌시아가는 케링과 함께 미국 기반의 아동 복지 재단 '내셔널 칠드런스 얼라이언스(NCA: National Children's Alliance)'와 후원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아동 학대로 트라우마에 시달린 어린이의 치료와 안전, 웰빙 증진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발렌시아가의 지원으로 아동 치료 분야의 전문가 2,000명을 양성할 계획이다.

사회적 변화와 이슈들을 컬렉션 무대의 작품으로 전달하는 발렌시아가의 뎀나 바질리아.... MZ 세대들에게 가장 핫한 브랜드로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발렌시아가의 선한 영향력이 앞으로도 지속 가능하길 바라며 이런 사례들이 본보기가 되어 명품 브랜드뿐만 아니라 패션기업에서도 동참하여 좋은 영향력을 선사해 주길 바란다.

박연미 디자이너 명장,디모먼트 디자이너
박연미 디자이너 명장,디모먼트 디자이너

박연미 디자이너 명장,디모먼트 디자이너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