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진부한 플롯, 상투적 액션…영화 ‘65’

영화 '65'의 한 장면.
영화 '65'의 한 장면.

SF에서 가장 놀라운 반전을 준 영화는 '혹성탈출'(1968)이었다.

지구로 귀환 도중 원숭이 행성에 불시착한 주인공이 해변에서 목도한 거대한 구조물. 바로 쓰러진 자유의 여신상이었다. 이제까지 외계 행성으로 알고 있었던 그곳이 멸망한 지구였던 것이다. 주인공은 "드디어 일을 벌였군. 이 미치광이들. 지구를 날려버렸어."라며 오열한다. 디스토피아 미래관을 그린 경악할만한 반전이었다.

영화 '65'(감독 스콧 백, 브리이언 우즈)를 보면서 이런 반전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지구로 귀환하려던 우주선이 6천500만 년 전 지구에 불시착하고, 공룡과 사투를 벌이는 그런 서바이벌 영화라 짐작했다.

이 영화는 소리를 내면 알 수 없는 괴생명체의 공격을 받는다는 신선한 소재의 스릴러 '콰이어트 플레이스' 1편과 2편의 각본가인 스콧 백과 브라이언 우즈가 연출을 맡은 영화다. 거기에 공포영화의 대가 샘 레이미가 제작을 맡았고, 아담 드라이버가 출연하니 외견상 '뭔가' 하나는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예상이 깨졌다.

'65'는 병든 딸을 위해 위험한 비행에 나선 조종사 밀스(아담 드라이버)가 주인공이다. 순조로운 비행 도중 유성과 충돌이 일어나고, 우주선은 부서진 채 6천500만 년 전의 지구에 불시착한다. 이때 지구는 인류가 생기기 전인 공룡이 지배하던 백악기 말기. 밀스는 유일한 생존자인 어린 코아(아리아 그린블랫)와 함께 탈출선이 있는 산꼭대기로 향한다.

영화 '65'의 한 장면.
영화 '65'의 한 장면.

공룡시대를 배경으로 한 탈출 생존기는 맞지만 밀스는 지구인이 아니다. 이때 이미 광선총을 쏘는 선진 문명 소마리스 행성인이다. '인류가 출현하기 이전. 저 먼 우주에선 다른 문명들이 천체를 탐사했다'는 자막으로 영화가 시작되고, 포스터에도 '우주에서 온 방문자'라고 기재하고 있다.

이렇다면 훨씬 더 드라마틱한 설정일 수 있다. 외계 문명이 6천500만 년 전 지구에서 공룡과 사투를 벌인다면 '프레데터' 보다 더 스펙터클한 액션이 가능한 것이 아닌가. 과거와 미래, 원시와 문명이 충돌하는 생존게임이다. 공룡들과 싸우는 광선총이라니. 이것은 도저히 지겨워질 수 없는 설정이다.

그러나 영화는 진부한 플롯에 목을 맨다. 딸을 잃은 아버지와 홀로 남은 소녀라는 유사 부녀의 서바이벌, 낯선 그들이 위험 속에서 서로의 소중함을 깨달아간다는 서사에 기대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밀스는 공룡과의 대결보다 코아를 보호하려는 캐릭터로 부각된다. 훌륭한 무기와 뛰어난 선행 문명인이 동굴에 갇혀 안타까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전락한다.

"너만은 꼭 집으로 살려 보내겠다." 이런 스토리는 어디서 많이 본 듯, 뻔한 결말이 예상되는 소모적인 것이다. 아무리 공룡이 달려들어도 긴장감을 줄 수 없다. 서프라이즈 식 저예산 공포영화도 아닌 9천100만달러(한화 약 1천200억원) SF영화가 이런 안일한 시도에 승부를 걸다니 무모하기 짝이 없다.

백악기 지구라면 화산활동이 제일 활발하던 시기였다. 1960년대 나온 스톱모션 공룡영화에서도 화산이 폭발하는 장면이 특징적으로 나온다. 백악기(Cretaceous)라는 단어 또한 거대한 석회암석을 가리킨다. 그러나 영화는 이런 환경을 버리고, 습곡과 숲을 택했다. 고증 여부를 떠나 공룡과 백악기 지구라는 흥미진진한 패를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다.

자연스럽게 액션 또한 환경적 특성을 살리지 못한다. 공룡들이 여럿 등장하지만, 각각의 특성은 무시되고 밀스 일행이 위기를 벗어나는 고난의 일부일 뿐이다. 수많은 공룡영화가 보여주는 상투적 묘사만 반복된다.

영화 '65'의 한 장면.
영화 '65'의 한 장면.

그렇다면 또 의문이 든다. 왜 밀스를 외계문명인으로 설정했을까. 밀스는 행동과 성격이 현재 지구인과 판박이다. 시간대를 건너뛰고 지구로 온다는 것이 너무나 판타지여서 그랬을까. 아니면 '혹성탈출'의 설정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결과적으로 그 어떤 메리트도 살리지 못한 결정이었다.

유성과 우주선 충돌, 공룡의 등장, 유성이 지구를 덮치는 장면 등에서 전해지는 사운드와 특수효과는 볼 만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스러기일 뿐이다. 글을 쓰던 각본가가 현장에 나와 길 너머를 바라 본 죄가 크다. 93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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