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나쁜 엄마’, 라미란과 이도현의 진짜 행복 찾기

JTBC 수목드라마 ‘나쁜 엄마’, 복수극과 휴먼 코미디의 대결 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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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나쁜 엄마' 공식 포스터. JTBC 제공

엄마만큼 콘텐츠의 단골소재가 있을까. JTBC 수목드라마 '나쁜 엄마'는 그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콘텐츠 속 엄마들은 저마다 세상과 대결하고, 이로써 당대의 세상이 갖고 있는 부조리를 끄집어낸다. '나쁜 엄마'는 어떤 세상과 마주하고 있는 걸까.

◆나쁜 세상과 싸우는 방식

성실한 남편과 돼지 농장을 일궈가며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영순(라미란). 하지만 마을을 개발하려는 이들과 맞서다 남편이 자살로 위장된 채 살해당하고, 영순은 아들 강호(이도현)를 힘있는 사람으로 만들겠다며 지독하게 몰아세우는 '나쁜 엄마'가 된다. 이처럼 JTBC 수목드라마 '나쁜 엄마'는 마치 70, 80년대 모든 집안의 자식 가진 부모들이라면 당연했던 '교육열'에 대한 서사로 시작한다. 가난하고 가진 것 없어도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던 교육에 대한 집착. 그렇게 좋은 대학에 가고 판·검사가 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로 통하던 당대의 풍경을 영순과 강호의 특별한 모자관계 안에 풀어 놓는다.

그래서 그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결국 강호는 검사가 되지만 엄마에 대한 지독한 원망을 품게 됐고, 약자들을 밟고 강자들에 빌붙어 살아가는 괴물 같은 속물이 된다. 땅을 빼앗기 위해 그의 아버지를 죽이고 자살로 위장했던 송우벽(최무성) 회장이나 당시 검사로서 진실을 은폐했던 오태수(정웅인) 의원의 뒤를 봐주는 속물 검사가 된 것. 강호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었는지 아닌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들과 가깝게 되어 송우벽에게는 양자를 삼아 달라 청하고, 오태수 의원의 딸과 결혼하려 했던 강호는 교통사고를 당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

7살 기억으로 돌아간 아들을 재활시키는 와중에 영순은 아들이 괴물이 됐다는 걸 알게 되고 절망한다. 여기에는 그 지독한 교육열이 탄생시킨 판·검사 같은 엘리트 권력자들이 그 힘을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위해 쓰기보다는 자신의 치부와 영달을 위해 쓰는 것으로 사회적 부조리를 만들어낸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이 담겨 있다.

하지만 영순은 아들이 괴물이 된 것이 아들의 잘못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이라며 참회한다. 돼지 농장을 해왔던 그는 이를 돼지에 비유한다. 돼지는 본래 깨끗한 동물이지만 사람들이 좁은 우리에 억지로 가둬 놓아 점점 더러워지고 난폭하게 변하게 된 것이라며. "다 내 잘못이야. 불쌍한 사람들 도와주라고 해놓고, 억울한 사람들 살려주라고 해놓고, 정작 내가 너를 이렇게 키운 거야. 돼지우리에 가둬 놓고 숨도 못 쉬게 하면서 맨날 공부, 공부, 공부! 돈 있고 힘 있는 사람 만들려다가 피도 눈물도 없는 괴물을 만들었다고, 내가."

'나쁜 엄마'는 그 안에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풀어내고 이를 사주한 이들을 응징하는 복수극의 서사가 깔려있지만, 동시에 영순이 엇나간 아들을 되돌려 진정한 삶과 행복으로 인도하는 가족극의 틀도 갖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또한 영순과 따뜻한 이웃들이 살고 있는 조우리라는 마을과 송우벽이나 오태수 같은 악당들이 살고 있는 속물적인 도시를 대응시켜 그 대비만으로도 어떤 삶이 더 나은가를 보여주는 '휴먼드라마'이자 사회극적인 요소도 갖고 있다. 특히 조우리 마을 사람들이 풀어가는 이야기들은 해학적인 대사가 더해진 정겨운 코미디의 색깔까지 들어있어 날선 복수극 서사와 대비를 이룬다. 즉 시청자들은 이 대비를 통해 자연스럽게 조우리 마을 사람들의 삶에 호감을 느끼게 된다. 나쁜 세상과 대결하는 이 드라마만의 방식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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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나쁜 엄마' 공식 포스터. JTBC 제공

◆문제의식 던진 엄마들의 계보

그런데 왜 하필 '엄마'일까. 그건 세상을 만들어가는 주역이면서, 때론 피해자이기도 한 엄마라는 존재가 가진 우리네 사회에서의 위치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우리네 콘텐츠에서 엄마는 늘 문제적 존재들이었다. 과거 '여로' 같은 신파극에서 엄마는 같은 여성이고 또 한 때는 그 자신도 누군가의 며느리였지만 자식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며느리를 핍박하는 존재로 그려진 바 있다. 이른바 고부갈등이 시대적 키워드가 됐던 그 시기에 이런 드라마들이 꺼내놓은 엄마들에 대한 양가 감정은 그들과 대결하기보다는 수동적으로 이를 수용하면서도 비판하는 '눈물'로 귀결되곤 했던 것. 가부장적 시대에 엄마들이 서있던 문제적 위치였다.

이런 흐름은 '국민엄마'라고까지 불렸던 김혜자가 자주 해왔던 엄마 역할이었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엄마들도 다른 모습으로 변화한다. 김수현 작가의 '엄마가 뿔났다' 같은 가족드라마에서 김혜자가 연기한 김한자는 가족들에게 '휴업선언'을 하는 엄마로 등장하고,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서는 비뚤어진 모성애가 만들어낸 괴물 같은 엄마로 변신한다. '나쁜 엄마'는 어찌 보면 '마더'의 엄마처럼 비뚤어진 모성애로 시작하지만,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과 싸워나가는 엄마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미나리'로 세계적인 배우 반열에 오른 윤여정은 이미 오래 전부터 김혜자와는 다른 엄마의 면면을 일찍이 연기로 풀어왔던 배우다. '에미'(1985) 같은 작품에서는 인신매매단에 납치되어 폐인이 된 딸을 위해 처절한 복수에 나서는 엄마 역할을 했고, '바람난 가족'(2003)에서는 여전히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엄마를 연기했다. '미나리'는 물론이고 '파친코'에 이르기까지 윤여정이 연기하는 엄마들은 사회적 고정관념의 틀에서 조금씩 벗어난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여성들이었다.

이처럼 때론 가부장적 시대의 보수적인 엄마들로 때론 이에 저항하는 급진적인 엄마들로 변주되곤 했지만 엄마라는 존재는 콘텐츠에서 늘 세상에 대한 문제 의식을 던지는 존재들로 그려지곤 했다. '나쁜 엄마' 또한 이 계보 위에 놓여 있다. 스스로를 나쁘다고 지칭하고 있지만, 실상 나쁜 건 엄마가 아니라 세상을 말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저 돼지의 비유로 엇나간 아들을 설명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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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나쁜 엄마' 공식 포스터. JTBC 제공

◆과연 진짜 행복은 어디에

드라마는 허구의 세계를 통해 우리가 살아온 삶을 한번쯤 반추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하곤 한다. 그 안에서 살다 보면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또 어딜 향해 가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안간힘을 쓰며 사는 게 우리의 모습이 아니던가. 그래서 드라마는 이를 잠시 벗어나 허구의 세계에 투영된 우리네 삶을 좀 더 객관화해 관조함으로써 우리 모습을 발견하게 해준다. 실제 삶에서는 실패로 인해 넘어지고 무너지는 어떤 결과들이 너무나 아픈 상처들을 남기게 하지만, 허구 속에서 시뮬레이션되는 상황을 통해 간접적으로 겪게 되는 실패는 보다 안전한 시행착오를 가능하게 한다.

아버지이자 남편의 죽음부터 엇나가기 시작한 강호와 영순의 삶은 결국 눈앞만 보고 달려가게 만들고 끝내 이들을 넘어지게 만든다. 검사가 되어 승승장구하는가 싶었지만 하루아침에 아들이 7살로 되돌아온 것. 하지만 드라마는 영순의 목소리를 빌어 바로 이 넘어지는 순간이 오히려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시작이라고 말한다.

"진짜 가여운 건 말야 돼지는 고개를 들 수가 없어서 항상 땅만 보며 살아야 한다는 거야. 오직 돼지가 하늘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 그건 바로 넘어지는 거지. 넘어져 봐야 지금껏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는 거야. 돼지도 우리 사람도." 7살이 된 아들로부터 드라마는 다시 시작한다. 새로운 세상과 진짜 행복을 향해 과거와는 다른 선택의 길을 걸어가는 영순과 강호를 보여주는 것. 어쩌면 시청자들은 그 여정을 따라가다 진짜 행복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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