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주년 6.25전쟁 기념일이 다가온다. 나의 아버지는 1949년 1월 19세 되던 해 육군에 자원입대했다. 그런데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 공산군이 남북군사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기습적으로 불법 남침을 자행했다. 그날 아버지는 첫 휴가를 나와 고향집에 있었다. 하지만 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즉시 부대로 복귀해 전쟁터로 향했다. 그리고 3년간 종횡무진으로 전쟁터를 누비며 숱하게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수많은 전투에서 용맹함을 떨쳤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육군 상사로 전역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라는 후유증에 시달리며 밤마다 비명을 지르고 식은땀도 흘리며 악몽에 시달렸다. 당시 아버지의 비명 소리에 가족들도 놀라 잠에서 깨곤 했었다. 그런데도 형편이 어려워 병원 치료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6·25전쟁 참전용사라는 사실을 늘 자랑스러워하셨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가 벌목장에서 일을 하다가 몸을 다치셨다. 하지만 병원 치료는 사치였다. 어머니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집안의 장녀로 태어나 부족함 없이 곱게 자랐다. 외할아버지는 면장을 지낸 고향 지역의 유지(有志)였다. 하지만 가난한 아버지에게 시집와 갖은 고생을 겪었다.
아버지는 평소 귀한 집에서 곱게 자란 어머니를 데리고 와서 너무 고생시켜서 미안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아버지는 자신의 아픔도 뒤로 한 채 산과 들을 누비며 약초를 캐고 달여 지극 정성으로 어머니를 돌봤다. 가난했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는 금술이 좋았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정성을 뒤로한 채 41세에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또 아버지는 고향 지역에 무장공비가 침투해 당시 지서에서 병역 의무를 대신하던 동네 후배가 대간첩작전 중에 큰 부상을 당해 작전지역 골짜기에서 고통을 이기지 못해 밤새 비명을 지른다는 소식을 접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이 매우 위험해 주위에서 만류했음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잠자다 말고 새벽에 현장으로 달려가 그 후배의 주검을 수습하기도 했다. 향토예비군 창설 이후에는 부중대장을 맡아 향토방위에 힘썼다.
시골 오지에서 생활하시던 아버지는 살아생전 6·25전장에서 생사고락을 같이 하다가 전사한 전우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서울현충원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특히 옹진반도 국사봉 전투에서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다가 쓰러진 당시 17살 어린 전우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숨을 헐떡이며 당신에게 살려달라고 바라보던 눈망울을 잊을 수가 없어 늘 살아남은 죄책감에 시달리며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곳에 모시고 가는 게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그 소원을 들어드리지 못해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 같아 천추의 한으로 남았다.
그런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홀연히 고향을 떠나셨다. 그런데 객지에서 생활하시던 아버지가 위암 병증이 크게 악화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실날 같은 희망을 갖고 아버지를 급히 서울의 한 종합병원으로 모셨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더 이상 치료 방법이 없다며 내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이튿날 나는 기차역으로 아버지를 배웅 갔었다. 하지만 극심한 통증 탓에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못난 자식 걱정에 쉬이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그런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에 심장이 멎고 터질 것만 같은 고통을 느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른 연세에 어머니가 계사는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
당신의 힘들고 고달픈 삶을 오로지 팔자로만 여기고 이 못난 자식을 위해 희생만 하다 떠나신 부모님께 가슴 깊이 감사드린다. 또 말과 글로는 형용할 수 없는 죄스러움을 느낀다. 아버지 어머니 이승에서의 모든 아픔과 고통은 다 잊으시고 천국에서는 늘 행복하세요. 오늘따라 당신이 너무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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