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현실 은유 서바이벌 ‘피의 게임2’

웨이브 오리지널 예능 ‘피의 게임2’, 서바이벌에 담은 양극화 현실
상대적 박탈감 보여준 요즘 예능, 더 잔인해졌다

'피의 게임2' 공식 포스터. 웨이브 제공

웨이브 오리지널 예능 '피의 게임2'는 제목부터가 자극적이다. 서바이벌 예능인데, 굳이 '피' 운운하는 것이 그 강도가 예사롭지 않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시즌1도 그랬지만 시즌2는 더 강해졌다. 그래서 논란이 적지 않지만 여기 담긴 현실 은유는 흥미로운 면이 있다.

◆이번엔 정글과 저택이다

발리의 외딴 정글 한 가운데 11명의 남녀들이 눈이 가려진 채 의자에 묶여 앉아있다. 마치 누군가에게 납치된 듯한 살풍경한 느낌을 주며 시작하는 웨이브 오리지널 서바이벌 예능 '피의 게임2'. "피의 게임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라는 소리와 함께 손에 묶인 줄이 풀린 이들은, 문제를 풀어 나온 비밀번호를 찾아낸 후 이를 발을 묶어 놓은 자물쇠에 입력해 푸는 첫 번째 게임을 시작한다.

자물쇠를 풀어야 줄을 풀 수 있고 그래야 10명까지만 생존할 수 있는 저택까지의 선착순 미션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보자마자 너무나 쉽게 문제를 풀고 자물쇠를 풀어 저택으로 유유자적 가는 브레인도 있지만, 도무지 문제를 풀기가 어렵게 되자 억지로 줄을 풀려는 이도 있다. 또 남이 푼 자물쇠 번호를 커닝해 문제를 해결하는 이들도 있다. 똑같은 미션이지만 이를 풀어가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은 출연자들이 어떤 특장점을 갖고 있는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렇게 정글을 벗어나 도착한 저택은 느낌이 기묘하다. 어찌 보면 폐가가 된 리조트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수영장까지 갖춘 럭셔리한 시설이 눈에 띤다. 저택에 도착한 이들은 바로 그 날부터 탈락자가 생기는 게임에 돌입한다.

문제를 풀어내는 두뇌게임부터 누군가를 탈락시키기 위해 서로 연합하거나 배신을 하는 식의 치열한 정치가 오가는 '피의 게임2'. 이 흐름은 시즌1의 시작과도 그리 다르진 않다. 이른바 '피의 저택'에 들어가 다짜고짜 탈락자 투표를 통해 한 인물을 탈락시키는 것으로 시작했던 시즌1이 아니던가. 하지만 시즌1은 그 탈락자가 곧바로 귀가하는 게 아니라, 그 저택의 지하공간으로 옮겨져 지상으로 올라갈 기회를 노리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지금껏 해왔던 '게임 서바이벌'과는 다른 묘미를 선사했다. 그건 다름 아닌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오마주한 지상과 지하라는 공간의 병치다.

이로써 지상에서 탈락한 자들이 지하로 내려와 연합하고, 특정일에 지하와 지상의 대결이 펼쳐져 승패에 따라 공간을 바꾸기도 하는 색다른 서사가 펼쳐졌다. 지상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보여준다면, 지하는 피자박스 접기로 돈을 벌어야 컵라면이라도 하나 먹을 수 있는 생존 상황을 보여준다. 게임 서바이벌이지만 지상, 지하의 차별을 통해 양극화된 현실을 은유하는 지점이 '피의 게임'이 가진 색다른 재미요소였다.

'피의 게임2'는 시즌1의 지상과 지하라는 공간 대신, 정글과 저택이라는 공간을 나눠 놓았다. 즉 처음에는 11명이 저택에서 게임을 벌이는 것처럼 시작하지만, 2회에 저택 바깥에서 생존해가는 이른바 '정글팀'이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고, 이들이 저택 사람들을 납치해 자기편으로 만드는 식으로 저택을 빼앗을 기회를 노리는 모습을 드러낸다. 수영장까지 딸린 저택과 달리 정글은 벌레들이 득실대고, 먹기 위해서는 불을 피워야하는 생존상황이다. 마치 '정글의 법칙'을 보는 것만 같은 장면이 연출된다. 하지만 '피의 게임2'의 정글과 저택의 차별적인 공간 구성은 '정글의 법칙' 같은 낭만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건 마치 문명인들과 원주민들의 대결구도 같은 서사가 담겨 있어서다. 문명인들이 럭셔리하게 살아가는 삶은 원주민들의 삶과 연결되어 있고, 그래서 저 문명을 맛 본 원주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피의 게임2' 스틸컷. 웨이브 제공

◆차별적 공간에 극단화된 감정

정글팀 사람들로 참여한 홍진호, 덱스, 박지민, 신현지는 그 곳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저택에 숨어 들어와 그 안에서 사는 이들을 관찰하고 물건을 훔쳐 오는 과정에서 저들의 편안한 일상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여러 서바이벌에 참여해 늘 냉정을 잃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홍진호 역시 알 수 없는 분노의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처럼 차별적 공간이 만들어내는 '상대적 박탈감'은 이들 사이에 격한 감정을 이끌어낸다. '피의 게임2'는 그래서 제목에 담겨 있는 것처럼 하나의 '게임'이지만, 이렇게 끌어올려진 감정들이 더해짐으로써 서바이벌을 더욱 치열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의 격돌은 이른바 '습격의 날' 폭발한다. 저택에 숨겨진 상징물인 피라미드상 세 개를 두고, 정글팀은 이를 부수려 하고 저택팀은 이를 사수하려 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에 이은 감정 싸움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 미션이 진행되는 1시간 동안은 '무력을 사용해도 된다'는 룰이 있었고, 마지막 남은 피라미드상을 거구와 완력으로 사수하던 하승진과 맞붙어 놀라운 순발력으로 이를 깨버린 덱스의 대결이 바로 그것이었다. 결국 덱스가 이긴 게임이었지만 하승진은 감정을 참지 못하고 "뱀XX네 이거?" 하며 덱스를 무력으로 공격했다. 이제 주먹이 오갈 정도로 감정이 격해진 일촉즉발의 상황, 이를 보던 여성 출연자들은 너무나 무서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다행히 극단적인 상황으로까지 가진 않았지만, "매너 좀 지킵시다"라는 덱스의 날선 말에 하승진은 씩씩대는 모습을 숨기지 못했다.

편집되지 않고 오히려 예고 영상으로까지 나와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자극한 이 장면은 예상대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하승진이 이것이 하나의 게임이라는 걸 잊고 감정을 드러낸 것이 잘못됐다는 이야기부터, 이런 극단적인 상황을 편집 없이 보여준 제작진에 대한 질타도 이어졌다. 하승진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 논란에 대해 해명했다. "덱스가 신나서 휘파람을 불었다고 생각해 분노했다"는 것. 즉 게임에서 이길 수도 질 수도 있지만 그걸 비아냥댄 것으로 오해해 감정이 터졌다는 것이었다. 하승진은 이 해명을 통해 당시 승부는 정당했고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끝나고 바로 덱스에게 "내가 선을 넘은 것 같다. 실수한 것 같다"고 사과했다 밝혔다. 또 자신이 "눈살 찌푸리게 하는 행동을 한 것"에 대해 "추하고 옹졸했다"며 시청자들에게 사과했다.

'피의 게임2' 스틸컷. 웨이브 제공

◆자극과 실감나는 현실 은유

즉 이 논란은 '피의 게임2'라는 게임 서바이벌의 자극적인 면을 잘 드러낸다. 게임은 게임으로서 할 때 이성적인 끈을 놓치지 않을 수 있지만, '피의 게임2'는 게임에 부여한 상대적 박탈감 같은 감정적 요소들이 더해짐으로써 훨씬 자극적인 극단적 상황들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다.

이처럼 '피의 게임'은 시즌1에서도 지하와 지상이 나뉘어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 상황을 연출함으로써 치열한 감정 대립까지 끄집어내는 상황이 만들어진 바 있다. 하지만 시즌2는 웨이브 오리지널로 제작되면서 이러한 자극이 훨씬 더 강화됐다. MBC와 함께 했기 때문에 시즌1에서는 가려졌던 흡연 장면이나 무력 충돌, 욕설 같은 것들이 이 OTT에서는 가감없이 허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게임 서바이벌이 갖는 자극성에 대한 논란과 비판적 시선들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극과 더불어 생생히 드러나는 장면이나 감정들은 현실이 갖는 차별이 불러일으키는 억압이나 분노를 보다 선명하게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 현실 은유가 더 생생해진다고나 할까. 자극적인 장면들에 대한 불쾌감이나 불편함이 있지만, 그래도 선택해서 보는 이들은 더 날 선 현실 은유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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