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웃다가도 현실에 대한 냉소에 서늘…‘슬픔의 삼각형’

지난해 칸 황금종려상 수상한 블랙 코미디
유람선 속 피라미드식 계급 구조 보여주며
계급, 인종, 젠더 차별 적나라하게 드러내

'슬픔의 삼각형'의 한 장면.
'슬픔의 삼각형'의 한 장면.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대신 '슬픔의 삼각형'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2017년에도 '더 스퀘어'라는 작품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스웨덴의 대표적인 감독이다. '더 스퀘어'는 현대인의 위선과 차별, 이기심을 세련된 영상 문법으로 그렸다. 과연 '슬픔의 삼각형'은 어떤 이야기로 우리를 놀라게 할까. 드디어 17일 한국 관객을 만났다.

'슬픔의 삼각형'은 자본주의와 그 속에 녹아들어 있는 현대인의 불평등과 계급의식, 차별을 그린 블랙 코미디다. 웃다보면 서늘한 냉기마저 느껴진다. '더 스퀘어'가 개인에 포커스를 맞추었다면, '슬픔의 삼각형'은 현대사회의 구조, 시스템에 메스를 들이댄다. 더 적나라하고 냉소의 진폭도 커졌다.

영화는 모델의 오디션으로 시작한다. 웃옷을 벗은 남성 모델들의 대기실. 리포터가 이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서로 다른 웃음을 요구한다. "자, 발렌시아가 표정을 지어요. 거만하게요." "이제는 좀 더 싼 H&M이예요. 밝은 미소로." 명품 브랜드로 나눠진 사회적 위치를 꼬집는 시작이다.

이들 속에 주인공 칼(해리슨 디킨슨)이 있다. 그는 무명의 모델이다. 수입도 적다. 그래서 자신보다 몇 배나 더 버는 여친인 유명 모델 야야(샬비 딘)와 갈등도 있다. 왜 더 벌면서 식사비용을 내가 내야 되지? "내가 돈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야." "아까 내려고 했던 50 유로는 왜 다시 집어넣어?" 전통적인 성 역할, 고정관념 속에 기울어진 평등을 그린 에피소드다.

'슬픔의 삼각형'의 한 장면.
'슬픔의 삼각형'의 한 장면.

이 영화는 모두 3개의 챕터로 구성된다. 1부가 칼과 야야의 이야기고, 둘이 함께 초대된 유람선 여행 '보트'가 2부, 이들이 난파돼 섬에서의 생존기를 그린 '섬'이 3부다.

유람선의 인물 군상들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러시아 재벌, 수류탄을 제조해 단란한 가정을 지키는 금슬 좋은 노부부 등 부유한 이들이 하류인생인 승무원들의 서비스를 받으며 우아한 크루즈 여행을 하고 있다. 수억 달러 하는 이 배의 선장(우디 해럴슨)은 마르크스주의자이다. 이들이 펼쳐내는 요지경 같은 세상이 우화처럼 그려진다.

까칠하다가 평등을 운운하고 자본주의를 신봉하다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이중적 태도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수영을 즐기던 중년 여성 승객은 젊은 여성 승무원에게 당장 수영복을 입고 물에 들어오라고 요구한다. 여성 승무원은 난감하다. 그러나 막무가내다. 인생을 즐겨야 하는데, 너나 할 것 없이 평등해야 한다는 논리다. 평등을 가장한 폭력이며, 돈으로 강요하는 위선이다. 급기야 그 바쁜 와중에 모든 승무원들이 워터슬라이드를 타는 촌극이 연출된다.

이어 진행되는 파티 장면은 난장판의 극치를 보여준다. 고급 샴페인과 비싼 음식으로 시작된 파티는 큰 파도로 인해 요동친다. 우아한 신분의 승객들은 토사물을 쏟아내며 내동댕이쳐진다. 이들이 지키던 품위는 사라지고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지경이 된다. 술에 취한 선장은 방송으로 자신의 현학적 지식들을 뽐내고, 승무원들은 귀부인과 신사들이 뱉어놓은 오물을 치우느라 정신이 없다. 이 장면에서 관객은 4DX가 아니어도 극장 안에 진동하는 냄새를 느낄 수 있다. 배 멀미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슬픔의 삼각형'의 한 장면.
'슬픔의 삼각형'의 한 장면.

제목 '슬픔의 삼각형'(Triangle of Sadness)은 찡그릴 때 미간과 코 위쪽에 생기는 삼각형 모양의 주름을 뜻한다. 모델에게 표정을 주문하면서 언급된 '슬픔의 삼각형'은 유람선을 통해 피라미드식 계급으로 확장된다. 유람선의 구조가 그렇게 나뉜다. 상류층의 부자 승객, 중간층으로 상류를 꿈꾸는 승무원, 하류층인 청소부들이다.

이런 인식 접근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닮은 부분이 있다. 지하와 반지하, 지상으로 나뉜 계급의 갈등이 유람선으로 구조화된 것이다. 변기를 뚫고 나오는 오물 등 표현 방식도 유사하다.

그러나 '슬픔의 삼각형'이 보여주는 풍자의 폭은 더 크고 직접적이며, 신랄하다. 계급과 인종, 젠더 갈등에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등 선이 굵고 진하다. '기생충'이 이런 사회를 전복하지 못했지만, '슬픔의 삼각형'은 이를 뒤집어 버린다. 배가 폭파하고, 염치없던 이들이 가라앉고, 급기야 섬에 도착한 이들은 계급, 젠더, 자본, 피부색마저 전복된다.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소망적 우화가 과하리 만큼 적나라해진다.

칸 국제영화제는 최근 들어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파헤친 작품들에 후한 시선을 주고 있다. '기생충'도 그랬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 등 부의 불균형, 가족의 해체, 자본주의의 병폐, 계급과 계층의 갈등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올해는 '슬픔의 삼각형'의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이 심사위원장까지 맡아 그 색깔이 더 선명할 것 같다.

'슬픔의 삼각형'은 찡그린 현대사회의 슬픈 표정을 풍자적으로 그린 문제작이다. 참고로 야야로 출연한 남아프리카 출신 배우 샬비 딘은 우월한 외모에 매력적인 연기를 펼치는 여배우의 탄생을 알렸으나 이 영화로 주목을 받자마자 세균성 패혈증으로 사망해 안타까움을 더한다. 147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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