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남은 인생 10년, 당신이라면 뭘 하겠나요?”

난치병으로 10년 시한부 인생
삶의 끝 준비하는 과정 담아내
세월의 아쉬움 절절히 느껴져

영화 '남은 인생 10년'의 한 장면.
영화 '남은 인생 10년'의 한 장면.

창밖에 벚꽃이 활짝 피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날에 핀 벚꽃이다. 병실로 햇살이 가득 들어온다. 언제까지 이 벚꽃을 볼 수 있을까.

24일 개봉한 '남은 인생 10년'(감독 후지이 미치히토)은 난치병으로 10년 밖에 더 살지 못하는 20살 여자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병원에서 퇴원한 마츠리(고마츠 나나)는 늘 캠코더를 들고 주변 풍경을 찍는다. 고이 간직하고픈 마음에서다. 우연히 중학교 동창회에 나갔다가 내성적인 카즈토(사카구치 켄타로)를 만난다. 카즈토는 생활고로 삶을 포기하려고 한다. 단 하루의 삶도 소중한 여자와 단 하루도 살기 싫은 남자. 너무나 다른 사연을 가진 둘은 곧 가까워지면서 사랑에 빠진다.

'남은 인생 10년'은 폐동맥성 폐고혈압증에 걸린 마츠리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이 병으로 2017년 세상을 떠난 작가 코사카 루카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했다. 100만명 당 1~2명이 걸리는 병으로 작가가 투병하면서 쓴 이야기다.

마츠리가 2년 만에 집으로 온 것이 2013년. TV에서는 2020년 도쿄에서 올림픽이 열린다는 뉴스가 나온다. 7년 후의 미래다. 과연 그때까지 살 수 있을까.

꽃이 피는 것은 힘들어도 지는 것은 순간이다. 찬란하게 핀 벚꽃은 늘 그랬다. 봄 한철 화려하게 피었다가, 어느 순간 한꺼번에 눈송이처럼 떨어지고 만다. 영화는 마츠리의 시한부 삶을 벚꽃에 비유한다. 그래서 벚꽃으로 시작해 벚꽃으로 끝난다. 우에노 공원의 하나미(꽃구경)도 나온다.

마츠리는 이 순간이 아쉬운 듯 늘 캠코더로 찍는다. "계속 보고 싶어. 조금이라도 더." 꽃과 사람들, 거리의 모습 등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곧 떠날 세상의 풍경이니 아쉬움은 더 크다.

그래서 영화는 마츠리의 마음처럼 그 풍경을 무척 아름답게 담고 있다. 싱그러운 여름과 단풍이 든 가을, 그리고 눈 내리는 겨울 등 사계절을 모두 담아냈다. 거기에 두렵게 시작되는 사랑이 더해진다.

영화 '남은 인생 10년'의 한 장면.
영화 '남은 인생 10년'의 한 장면.

내성적인 카즈토는 삶이 무의미한 남자다. 실직해 생활고에 시달리다 창밖으로 뛰어내린다. 죽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다 마츠리를 만난다. 삶의 의미가 생긴다. 누군가를 지켜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녀는 쉽게 다가갈 수가 없다. 밝게 웃다가도 곧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는 그녀의 비밀은 뭘까.

마츠리도 카즈토가 싫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의 삶이 곧 끝나는데, 그에게 아픔을 주기 싫다. 그래서 그가 다가오면 뒤로 물러나게 된다. 그러나 그에게 진심이 느껴진다. 어느 순간 그를 받아들이면서 아쉽고, 안타깝고, 그래서 더욱 소중한 사랑이 시작된다.

'남은 인생 10년'은 관객에게 "앞으로 10년밖에 살지 못한다면 당신은 뭘 할 것인가?"를 묻는다. 오늘은 내 남은 인생의 첫날이라는 생동감보다는 끝을 향하는 절절함이 더하다.

중학교 동창회에서 10년 전에 묻은 타임캡슐을 연다. '10년 후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가 들어 있다. "사회인이 된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연인이 생겼나요? 소설가 데뷔는 했나요? 멋진 인생을 살아주세요." 10년 후의 지금, 그리고 또 이어지는 10년 후에는?

세월이 주는 아쉬움과 야속함이 영화 곳곳에 배여 있다. "결혼도 해 보고 싶고, 효도도 하고 싶었는데…" "짧은 인생이었지만 네가 있어서 내 삶이 행복했어"와 같은 신파성도 피해갈 수가 없다.

눈물 또한 철철 흐른다. 아버지도 울고, 엄마도 울고, 친구도 울고, 연인도 운다. 늘 눈물을 참으며 담담하려고 애쓰던 마츠리도 결국은 울음이 터진다. 그리고 빠르게 줄어드는 시간에 떠날 준비를 한다. 소중했던 영상들을 재생해 보며 이 세상과 작별을 하려고 한다.

영화 '남은 인생 10년'의 한 장면.
영화 '남은 인생 10년'의 한 장면.

마츠리 역의 고마츠 나나는 영화 '갈증'(2014)으로 일본 아카데미상 신인배우상을 수상한 일본의 대표 배우다. 2017년에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사일런스'에도 출연했다. 후지이 미치히토는 심은경 주연의 '신문기자'(2019)를 연출해 한국에도 알려진 감독이다. 탁월한 영상미를 자랑하는 그의 이력은 이 영화에서도 잘 살아난다. '고독한 미식가' 시리즈로 인기를 끈 배우 마츠시게 유타카가 마츠리의 아버지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어느 가족'(2018)의 릴리 프랭키가 선술집 사장으로 나와 눈길을 끈다.

'남은 인생 10년'은 지난해 3월 일본에서 개봉해 23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30억 엔의 수익을 올렸다. 삶에 대한 간절함이 필요하거나, 공연히 눈물을 흘리고 싶다는 관객에게 잘 어울릴 영화다. 125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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