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tvN 토일드라마 ‘이번 생도 잘 부탁해’

그 사람을 위한 환생 그 사상이 특별하다

'이번 생도 잘 부탁해' 공식 포스터. tvN 제공

이제 멜로는 별로? 아니다. 최근 들어 멜로는 장르물이나 판타지를 더하면서 새로워지고 있다. 그저 그런 사랑 타령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시대의 정서가 얹어지면서 색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 tvN 토일드라마 '이번 생도 잘 부탁해'는 바로 그런 판타지 로맨스다.

◆'이생망' 시대의 판타지 로맨스

"이번 생은 망했어." 이른바 '이생망' 정서는 현 젊은 세대들이 갖고 있는 시대에 대한 답답함이 담겨 있다.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 같은 태생적 조건이 그 미래를 결정짓는 현실을 마주한 젊은 세대들은 더 이상 노력이 이 생을 바꿔줄 거라는 믿음을 갖기보다는, 차라리 '인생 리셋'을 꿈꾼다. 그래서 망한 이번 생 대신 다음 생을 살고픈, 현실에서는 불가능은 꿈을 꾼다. '이생망'이라는 말에는 그래서 현실에 대한 체념 섞인 농담이 더해져 있는 것이지만, 콘텐츠는 이러한 대중의 갈증을 일으키는 결핍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판타지를 통해서라도 그 결핍을 채우려 하는 것.

웹소설, 웹툰에서 그토록 쏟아져 나온 '재벌집 막내아들' 같은 '회귀물'들이 대표적이다. 이 판타지 장르는 이러한 결핍과 갈증을 다양한 장르를 통해 풀어낸다. tvN 토일드라마 '이번 생도 잘 부탁해'도 이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환생이라는 판타지를 통해 현실에서는 이루지 못한 결핍 혹은 상처를 위로하고 치유해보려는 시도기 때문이다.

그 판타지는 전생을 온전히 기억하는 반지음(신혜선)이라는 문제적 캐릭터를 세우면서 시작된다. 좋은 판타지가 그러하듯이 하나의 설정만으로 다양한 서사가 펼쳐지는 '이번 생도 잘 부탁해'는 전생을 기억한다는 하나의 상상을 확장시켜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다채롭게 풀어낸다.

전생을 기억한다는 건, 죽음을 여러 차례 경험한다는 뜻이고 그것은 삶을 허무하게 만든다. 그래서 반지음은 무려 인생 19회차를 살아오며 기억나는 전생으로 인해 삶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하는데, 인생 18회 차에 윤주원(김시아)으로 살면서 인연을 맺게 된 어린 서하(정현준)를 통해 드디어 의미를 찾게 된다. 호기심에서 시작했지만 점점 마음을 주게 된 운명의 상대. 하지만 서로가 마음을 주고받으며 삶 깊숙이 들어가던 차에 교통사고로 윤주원은 사망하게 된다. 서하는 죽은 윤주원을 잊지 못하며 그 상처를 내면 깊숙이 숨긴 채 살아가고, 윤주원은 19회차 인생 반지음으로 태어나 서하를 찾아 나선다. 이번 생에는 그와 함께 행복한 삶을 꿈꾸게 된 것.

죽었다 다시 살아나 인생을 리셋한다는 '이생망' 정서는 그래서 '이번 생도 잘 부탁해'에서는 환생이라는 판타지로 그려진다. 다른 존재로 태어나지만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존재는 같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다만 여기에는 다른 육신으로 다른 시기에 태어나기 때문에 생겨나는 장애 요소들이 있다. 18회 차 인생에서는 윤주원이 서하보다 나이가 많지만, 19회 차 인생에서는 거꾸로 서하보다 다시 태어난 반지음이 나이가 적다. 게다가 그렇게 각각 성장해 반지음(신혜선)이 문서하(안보현)를 만나기 위한 노력 끝에 결국 두 사람은 만나지만, 문서하는 전생에 그가 사랑했지만 잃었던 윤주원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이 장애 요소들을 넘어서서 서하와 지음은 '이번 생'에서는 서로 사랑할 수 있게 될까. 그것이 바로 '이번 생도 잘 부탁해'의 판타지 로맨스가 풀어가려는 이야기다.

'이번 생도 잘 부탁해' 스틸컷. tvN 제공

◆나이·성별 뛰어넘는 환생 판타지

흥미로운 건 지음과 서하의 죽음을 넘어선 운명적인 사랑을 담고 있는 이 멜로드라마는 환생 판타지를 가져옴으로써 나이도 성별도 뛰어넘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어린 지음과 김애경(차청화)이라는 김치찜 식당을 운영하는 이와의 인연은 이를 잘 보여준다. 17회 차 인생에서 지음은 서커스단으로 유랑하던 김중호라는 인물이었고, 김애경은 형 내외가 죽고 남겨진 딸이었다. 즉 17회 차 인생을 기억하고 있는 지음은 대뜸 김애경을 찾아가 자신이 전생에 그의 삼촌이었다고 말하고 그걸 증명해낸다. 이로써 중년의 나이를 먹은 김애경이 어린 지음에게 "삼촌"이라고 부르는 기막힌 상황이 펼쳐지고, 그 삼촌의 조언대로 김치찜 식당을 하면서 그와 함께 살아가게 된다. 전생에는 남성이었지만 후생에는 여성으로 태어나고, 전생에는 훨씬 나이가 많은 삼촌이었지만 후생에는 나이 어린 아이가 되는 이 관계의 겹침은 이 환생 판타지가 나이도 성별도 뛰어넘는 세계를 구현해내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물론 '이번 생'에서의 사랑 이야기는 지음과 서하라는 여성과 남성(그것도 서하가 더 나이가 많은)의 관계를 그려내고 있지만, 환생으로 계속 이어지는 도저한 세월 속에서 이러한 성별과 나이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그건 그저 그 생에서의 겉으로 드러난 지표들일뿐, 환생 개념의 긴 삶에서의 실체는 그런 지표들을 무화시키기 때문이다.

이 지점은 '이번 생도 잘 부탁해'라는 멜로드라마가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를 하면서도 동시에 이성애나 우정의 관계를 모두 뛰어넘는 휴먼드라마로 확장될 수 있는 요건이 된다. 지음과 서하의 사랑은 환생 판타지를 더함으로써, 그저 비슷한 나이의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틀을 벗어나 이를 모두 뛰어넘는 인간 대 인간의 사랑 이야기로 확장되는 것이다. 멜로드라마가 지나치게 사적인 이야기라는 점 때문에 어딘가 공감대가 약할 수 있다는 약점은 그래서 이 판타지가 가능하게 한 휴먼드라마적 성격으로 인해 극복된다.

'이번 생도 잘 부탁해' 공식 포스터. tvN 제공

◆남은 자에 대한 위로·삶의 의미

그렇다면 지음과 서하의 사랑 이야기가 그 사적 사랑의 차원을 넘어 담으려 하는 건 무엇일까. 그건 죽음이라는 불가항력을 두고 벌어지는 애도와 위로가 아닐까. 사랑했지만 사고로 먼저 가버린 윤주원을 잊지 못하고 여전히 그 묘소를 찾아가 꽃다발을 놓고 말을 거는 서하와, 바로 그 윤주원이 전생이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한 채 아파하는 서하를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는 지음의 모습에서는 망자에 대한 애도와 위로의 마음이 겹쳐진다. 그 죽음에 대해 트라우마까지 갖게 된 서하에게 앞뒤 재지 않고 직진하는 지음의 사랑은 망자를 먼저 떠나보내고 남은 이들에 대해 이 드라마가 그려나가려는 위로가 된다.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라는 것.

하지만 지음의 입장에서 보면 전생을 기억함으로써 결코 끝나지 않는 삶은 또 다른 고통이다. 그건 삶을 허무하게 만들고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고통 속에서 지음이 드디어 찾아낸 삶의 의미가 바로 서하라는 점은, 어딘가 통속적으로만 여겼던 '사랑'을 보다 숭고한 의미로 바라보게 만든다. 결국 삶의 의미로 남는 건,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과 누군가에게 사랑 받았던 기억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건 서하와 지음의 관계에서 보이는 연인의 사랑은 물론이고, 지음과 김애경의 관계에서 보이는 가족의 사랑도 모두 포함되는 이야기다.

이른바 '이생망'의 정서에 깔린 '정해진 미래'라는 지점은 우리네 삶을 허무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 허무함을 느끼게 만드는 현실 앞에서 이 드라마는 그래도 중요한 의미를 찾아내려 애쓴다. '이번 생은 망했어'에서 느껴지는 포기의 정서 대신, '이번 생도 잘 부탁해'라며 어려운 현실 앞에서도 긍정의 의미를 찾아내려 한다. 물론 그것은 드라마라는 판타지에서나 가능한 일이지만, 그러한 판타지를 통해 우리가 갖고 있는 갈증의 실체를 들여다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기능한다. 허무하게 느껴지는 삶의 현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의미 있는 삶과 관계에 대한 갈증이 크다는 걸 드라마를 보는 내내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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