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반갑다 새책] 허리케인 도마뱀과 플라스틱 오징어

소어 핸슨 지음/ 조은영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2021년 기후변화로 인해 희귀 철새인 팔색조의 번식 시작 시기가 예년보다 일주일 정도 앞당겨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사진은 팔색조. 연합뉴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2021년 기후변화로 인해 희귀 철새인 팔색조의 번식 시작 시기가 예년보다 일주일 정도 앞당겨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사진은 팔색조. 연합뉴스

만화잡지 출판사인 퀄리티 코믹스가 1941년 파격적으로 선보였던 캐릭터가 있다. 바로 '플라스틱맨'. 그는 붉은 옷을 입고 몸을 늘리거나 구부리는 등 자유자재로 몸의 형태를 바꾸며 범죄자와 맞선다.

자연의 동·식물에서도 플라스틱맨은 종종 발견된다. 적어도 1850년대 이후부터 전문가들은 일종의 초능력에 해당하는 동·식물의 능력을 기술할 때 가소성(Plasticity)이라는 말을 사용해왔다. 이는 플라스틱과 어원이 같은 말로, 환경의 변화에 맞춰 습성을 바꾸거나 심지어 몸을 늘리고 구부릴 수 있는 능력이다.

이 책의 지은이인 소어 핸슨은 수많은 동·식물이 플라스틱맨처럼 생물의 삶을 위협하는 심각한 기후변화와 분투하고 적응하며 살아남은 데에 주목한다. 그는 북미의 숲과 사막, 남미의 우림, 태평양과 대서양 곳곳의 해안가, 북극의 빙해에서 동식물 연구에 매진 중인 동료 학자들의 입을 빌려 놀라운 얘기들을 전한다.

가령 카리브해의 아놀도마뱀은 빈번해지고 강력해지는 허리케인에서 살아남고자 앞다리는 길게, 뒷다리는 짧게, 발가락 패드는 크게 진화했다. 그럼으로써 나뭇가지를 붙잡고 깃발처럼 나부끼며 강풍을 흘려보낼 수 있게 됐다. 이러한 형질 변화는 놀랍게도 단 한두 세대만에 이뤄졌다.

기후변화는 동식물의 먹이와 성격, 심지어 형태까지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 많은 사람이 곰이라고 하면 겨울잠을 자기 전 살을 찌우기 위해 연어를 잡아먹는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알래스카 회색곰은 최근 채식의 비중을 크게 높였다. 기후변화로 알래스카에 일찍 봄이 찾아오자 엘더베리라는 열매가 더 일찍, 더 많이 열리게 됐는데 연어보다 살이 빨리 찔 수 있는 이 열매를 찾아먹게 됐다는 것. 때문에 오늘날 알래스카에서 곰을 보려면 강가 대신 숲속을 뒤져야 한다.

또다른 예를 살펴보자. 캘리포니아만 앞바다에 사는 훔볼트오징어는 그 거대한 크기 때문에 대왕오징어로도 불린다. 그런데 수면 온도가 상승하는 해양 열파가 심각해지자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하지만 해양생물학자들이 조사해보니 훔볼트오징어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종으로 보일만큼 작아져있었다. 즉, 환경이 열악해지자 기존보다 절반만 살고 그만큼 작게 자라는 쪽을 택한 것이다.

서식범위의 이동도 기후변화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그 이동범위와 방법이 상식을 벗어나기도 한다. 북미의 갈색펠리컨은 더위를 피해 1천440km나 북쪽으로 날아갔다. 따개비부터 병코돌고래까지 각종 해양 생물도 평균 345km를 이동했고, 후드윙커개복치는 아예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고향을 바꿨다.

이렇듯 생물들은 진화와 멸종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지은이는 다시 한번 가소성을 강조하며, 인간 사회에서도 가소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각 개인이 당장 바꿀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면 개체군, 종, 군집 전체로 퍼져나갈 수 있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정도의 소소한 변화가 모여 세계의 운명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348쪽, 1만8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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