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코로나·이혼·힌남노 연이어 덮쳐…그래도 두 아들 위해 일어선다

첫째는 ADHD·둘째는 심한자폐성장애… 홀로 두 아이 양육·치료
미용실 운영난에 5천만원 빚…턱없이 모자라는 수입, 남는 게 없어
에어컨 살 돈 없어 집에서 선풍기 하나로 올 여름 폭염 버텨야

지난달 30일 박신지(가명·37) 씨가 에어컨도 없는 방 안에서 두 아들 윤우(가명·8)와 선우(가명·6)를 보살피고 있다. 둘째 선우는 너무 더워 집에선 나체로 지내고 있다. 윤정훈 기자
지난달 30일 박신지(가명·37) 씨가 에어컨도 없는 방 안에서 두 아들 윤우(가명·8)와 선우(가명·6)를 보살피고 있다. 둘째 선우는 너무 더워 집에선 나체로 지내고 있다. 윤정훈 기자

"애기 엄마! 두꺼비집 차단기 내려요, 빨리!"

새벽 4시 20분쯤, 건물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눈을 떠보니 흙탕물이 미용실 홀을 넘어 방 안까지 차올라 있었다. 자고 있는 두 아들을 앞뒤로 둘러업고 거리로 나왔다. 자동차들이 섬처럼 떠 있었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젖은 머리카락이 얼굴을 뒤덮어 한 치 앞도 안 보였다. 오로지 발의 감각에 의지해 허리까지 잠긴 물을 헤치며 파출소로 향했다.

"악!"

어디선가 날아온 통 같은 것에 머리를 맞았다. 그 바람에 앞에 안고 있던 둘째를 놓쳤다. 첫째를 아무 차 위에 올려놓고, 휩쓸려 가는 둘째를 잡기 위해 미친 듯이 헤엄쳤다. 물살을 가로질러 두 팔을 필사적으로 휘저으며 나아가고, 또 나아갔다. 간신히 둘째를 되찾아 겨우겨우 파출소에 도착했다. 팔다리는 피투성이가 됐고, 신고 있던 슬리퍼는 무릎에 걸려 있었다. 죽고 싶은 줄만 알았는데. 사실 이토록 살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은.

박신지(가명·37) 씨는 다시 두 아들을 둘러업고 경찰의 안내에 따라 인근 터널로 향했다.

◆어렵게 연 미용실에 들이닥친 코로나… 남은 건 5천만원 빚

초등학교 6학년 때 우연히 본 학교생활기록부 한 편엔 낯선 여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신지 씨는 그때 처음 엄마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원양어선을 타느라 1년에 1번 꼴로 돌아오셨다. 아기 때부터 키워주신 할머니도 농사하랴 집안일 하랴 늘 바쁘셨기에, 속 편히 엄마에 대한 걸 물어볼 만한 사람이 없었다. 어린 신지 씨에게 '엄마'나 '가족'은, '공룡'이나 '명왕성'처럼 현실감 없는 단어였다. 그 뒤로도 엄마와 실제로 만난 적은 없다. 딱히 연락해 볼 마음도 없었고, 그건 엄마 쪽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무미건조하게, 그래도 주어진 일은 착착 해내며 살아 온 신지 씨. 새벽엔 나이트클럽 청소, 오후엔 고깃집 서빙 알바를 하며 열심히 미용학원에 다녔다. 미용사 자격증을 딴 지 일주일 만에 한 미용실에 취직하게 됐다. 그 무렵 신지 씨는 택배 기사로 일하고 있는, 자기보다 1살 많은 남자 손님과 친해졌다. '이 사람 참 괜찮다'는 생각이 들 무렵 손님이 말했다. "저 곧 결혼해요." 씁쓸했지만, 웃는 얼굴로 축하해줬다. '나중에 이혼하면 나랑 결혼하면 좋겠다' 따위의 생각은 곱게 접어 하늘 위로 날렸다.

그러고 나서 1년 뒤, 오랜만에 본 손님은 살이 홀쭉 빠져있었다. 손님의 머리를 손질하며 그의 전처가 도박에 빠져 하루 종일 술만 마셨다는 얘기, 혼인신고는 안 해서 다행이라는 얘기, 오늘 일 끝나면 저녁이나 같이 먹자는 얘기 등을 들을 수 있었다. 1년 전 접어 날렸던 생각은 그렇게 현실이 됐다. 신지 씨는 30살에 그 손님과 결혼했다. 같은 해 첫째 윤우(가명·8)가, 이듬해 12월 선우(가명·6)가 태어났다.

'엄마'도 되고, '가족'도 생긴 신지 씨. 이젠 마냥 행복할 줄 알았다. 남편은 윤우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허리를 크게 다쳤다. 허리 수술을 받았지만 이제 무거운 짐을 들 수 없었다. 남편은 하는 수없이 택배 기사 일을 그만두고 해외에 있는 회사에 취직해 집을 떠났다. 남편이 돈을 보내주긴 했지만, 세 식구가 살기엔 빠듯해 신지 씨는 두 아이 육아와 더불어 화장품 방문 판매 등 일을 하며 틈틈이 돈을 모았다.

여기에 빚을 내고, 친정에서 빌린 돈을 보태 2019년 자신만의 미용실을 열었다. 기세 좋게 개업했지만, 다음 해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재난이 신지 씨를 덮쳤다. 손님이 1명밖에 없는 날도 허다했다. 미용실 월세, 전기세, 수도세 등만 한 달에 100만원, 염색약 등 재룟값은 할부로 해도 한 달에 40, 50만원은 빠져나갔다. 빚을 내고, 빚을 내서 겨우겨우 미용실을 이끌어왔다. 눈 깜짝할 새 5천만원이라는 빚이 생겼다.

◆연이은 시련 '힌남노'로 미용실 침수… 홀로 장애 아들 2명 키워야

잠깐씩 한국에 왔던 남편 역시 코로나가 터지며 돌아오지 못했다. 떨어져 있는 거리만큼, 두 사람 사이에도 골이 생겼다. 남편은 신지 씨에게 왜 돈을 모으지 못했느냐며 화를 냈고, 신지 씨는 두 아이 육아에 돈벌이에 아등바등 살아왔지만, 이를 몰라주는 남편이 미웠다. 둘째 선우가 3살 때 이상한 조짐이 보여 언어치료 센터에 보내자고 했을 때, 남편이 "우리 애가 장애인도 아닌데 거길 왜 보내냐", "네가 잘 안 돌봐서 애가 이상한 거 아니냐"고 쏘아붙였던 것도 상처로 남았다. 2022년 신지 씨는 남편과 이혼했다. 이후 신지 씨는 두 아들과 함께 미용실에 딸린 작은 방에서 생활했다.

이혼한 그해, 또 하나의 재난이 대만과 일본 오키나와를 거쳐 신지 씨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슈퍼 태풍 '힌남노'였다. 1천만 원 가까이 들어간 인테리어, 값비싼 미용 기계들이 침수됐다. 그래도 살아있기 때문에, 살아야 했다. 현재 신지 씨와 두 아들은 LH에서 5천만원을 지원받아 얻은 1층은 미용실, 2층은 집인 상가주택에 살고 있다.

삶의 터전을 되찾았으나 모든 게 쉽지 않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진행한 검사에서 첫째는 'ADHD'와 '지적장애', 둘째는 '심한자폐성장애'라는 진단이 나왔다. 아이들 병원 치료와 부모 교육 등 일정으로 미용실 운영을 못 하는 날이 수두룩했다. 와중에 힌남노로 잃은 고가의 세팅기계는 도저히 구입할 수 없어, 세팅 시술을 원하는 손님들을 울며 겨자 먹기로 돌려보내고 있다.

이렇다 보니 미용실 수익은 한 달 70만원 수준에 그친다. 기초생활수급비, 모자가정아동양육수당, 장애아동수당 등 정부보조금으로 매달 162만원을 받고 있지만, 부채상환비 40만원, 상가 월세 55만원, 아이들 교육비 20만원, 의료비 30만원 등 고정 지출을 빼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다.

쉴 새 없는 태풍 같던 삶에 마음이 꺾인 신지 씨. 현재 우울증 등으로 정신과 약을 지어 먹고 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힘을 내야 하는데, 물에 젖은 솜처럼 마음은 자꾸만 가라앉는다. 점점 심해지는 더위 또한 신지 씨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다. 현재 에어컨을 마련할 돈도 없어 1만9천원짜리 선풍기 하나로 버티는 실정이다. 외부 방범창이 없어 창문조차 열지 못한다. 둘째는 너무 더워 집에선 나체로 지내고 있다.

이번 여름은 얼마나 잔인할까. 서늘한 두려움에 열기 어린 두 아이를 끌어안았다.

*매일신문 이웃사랑은 매주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소중한 성금을 소개된 사연의 주인공에게 전액 그대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성금을 전달하고 싶은 분은 하단 기자의 이메일로 문의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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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성금내역]

◆남편으로부터 심각한 가정폭력 당하다 경찰에 신고했으나 언제 보복 당할지 몰라 두려운 고희정 씨에게 2,405만원 전달

남편으로부터 심각한 가정폭력 당하다 최근 경찰에 신고했지만 언제 보복 당할지 몰라 두려워도 돈이 없어 이사 못 가는 고희정(매일신문 6월 20일자 10면) 씨에게 2천405만1천466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에는 ▷구미현대병원 25만원 ▷(주)삼이시스템 10만원 ▷달서구약사회 10만원 ▷서정섭 10만원 ▷이병규 2만5천원 ▷신종욱 2만원 ▷조혜란 2만원 ▷최선태 2만원 ▷최정원 1만5천원 ▷최지원 1만5천원 ▷김성옥 1만원 ▷김종식 1만원 ▷박미화 1만원 ▷우동수 1만원 ▷이서영 1만원 ▷이현민 1만원 ▷정혜원 1만원 ▷이순덕 5천원 ▷조철제 5천원 ▷이장윤 2천원 ▷심금자 1천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린 시절부터 당뇨로 힘든 시절 보내다 결혼 후 지적장애 아들 치료에 헌신하고 현재 건강 상태 악화돼 지적장애 아들 보살핌 받고 있는 임미양 씨에게 2,189만원 성금

어린 시절부터 당뇨로 힘든 시절 보내다 결혼 후 지적장애 아들 치료에 헌신하고 현재 건강 상태 악화돼 지적장애 아들 보살핌 받고 있는 임미양(매일신문 6월 27일자 10면) 씨에게 48개 단체, 165명의 독자가 2천189만1천440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 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20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주)대구은행 100만원 ▷(주)태원전기 50만원 ▷다우약품 50만원 ▷세무법인 송정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태린(박찬종) 40만원 ▷최상규이비인후과 4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한미병원(신홍관) 30만원 ▷(주)동아티오엘 25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20만원 ▷대백선교문화재단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대흥분쇄기(한미숙) 20만원 ▷법무사 김태원 20만원 ▷(주)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주)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10만원 ▷김영준치과의원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신성산업(김용환) 10만원 ▷창성정공(허만우) 10만원 ▷건천제일약국 5만원 ▷고려실리콘산업 5만원 ▷공가네 5만원 ▷극동특수중량(김형중) 5만원 ▷명EFC(권기섭)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봉산교회(김명묵) 5만원 ▷서울드림정신과 5만원 ▷선남의원(김홍구) 5만원 ▷선진건설(주)(류시장) 5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 5만원 ▷이전호 세무사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중앙안과의원(김일경) 5만원 ▷채성기약국(채성기)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흥국시멘트 5만원 ▷국선도풍각수련원 3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일철) 3만원 ▷청산(우창하) 3만원 ▷사단법인대한민국힐링문화진흥원 1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도경희 200만원 ▷김상태 이정추 각 100만원 ▷김진숙 진민지 각 50만원 ▷이신덕 30만원 ▷문심학 박철기 성현탁 신금자 각 20만원 ▷하경석 각 12만원 ▷곽용 김순향 이동욱 이재일 장학종 전시형 조득환 추종엽 허금주 각 10만원 ▷강원석 구율원 김미경 김미희 김민준 박원경 박종천 배정준 백미화 변대석 서정오 신광련 안대용 이경자 이종하 임채숙 정원수 진국성 최상수 최종호 최한태 한윤조 각 5만원▷나선희 3만3천원 ▷권규돈 김나운 김미진 김승숙 김영수 김준홍 김태욱 김평섭 남영희 박미경 박세린 박영규 변현택 서현조 이강준 이대성 이서연 이재열 이현숙 전예루 정의관 조진우 최춘희 최현우 각 3만원 ▷김선 김현주 류휘열 민윤자 방태표 서숙영 송재일 안성혜 위옥복 이재민 이해수 장영희 전대석 정경희 정주현 천정창 각 2만원 ▷강관우 권령경 권오영 권오현 권유진 권재은 김강현 김광명 김균섭 김다영 김덕우 김리원 김삼수 김성진 김태상 김태옥 김태천 김현정 나경인 박미오 박영미 박인배 박정만 박태용 박홍선 변세문 서득현 서제원 성영아 손규리 손현춘 안영숙 안정섭 엄지영 우철규 유귀녀 유명희 윤미 윤인주 이병순 이영수 이운대 이정현 정서원 정운섭 조영식 지호열 최경철 최병철 각 1만원 ▷김인희 문민성 이지연 이진기 조용인 각 5천원 ▷권두영 3천원 ▷김서연 이샛별 각 2천원 ▷이현주 최연준 각 1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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