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하고 불러 보면 늘 그렇듯 씩 웃으시던 모습이 그립습니다. 답답하고 앞길이 보이지 않던 때 아버지를 찾아 뵙고 그저 바라다 보면 "다 괜찮아"하며 등 두드려 주셨지요. 열정과 땀으로 사신 아버지의 삶을 다시 되돌아봅니다.
농업고등학교 소년수의사로 불리며 군내의 가축을 돌보고 다니셨지요. 그 당시는 전문인력이 부족하여 학교에서 가축 예방접종 등을 봉사하고 다니신 모양입니다. 태극기와 무궁화 꽃으로 장식된 커다란 빛바랜 표창장이 증명하고 있어요.
아버지는 로맨티스트이기도 했어요. 학창시절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는 이모들을 통해서 가끔 소설처럼 들었어요. 이모는 편지 전달책으로 러브스토리의 조연이었던 듯합니다. 어머니는 우물가에 기다리다가 먼 발치서 보고만 있었다는데 졸업 직전에 결혼식을 올렸답니다. 대청마루에 초례상이 준비되고 읍내의 고등학생들이 교복입고 들이닥쳐 진풍경을 이루었다니 요즘보면 '세상에 이런일이'에 나올 이야기입니다.
학창시절 온상에서 기른 모종을 5일장에 선보여 농업신동이란 소릴 들으셨답니다. 60년대 초에 모종으로 채소 농사를 한다는 것은 과학영농의 모범이었습니다. 양유를 보급하는 일에 열중이었는데 젖 짜는 산양을 들여와 어린아이들에게 산양유를 보급해야 한다고 직접 실천하셨지요.
젖소는 너무 비싸고 키우는데 힘이 들고 비용이 많이 드는데 반해 산양이 최적이라 판단하고 산양 키우는 목장을 하였답니다. 고교시절 몇십리 길을 하루 종일 걸어 양을 데려 왔다고 하셨는데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왔답니다. 양유는 읍내의 유지들에게 전단을 등사해서 홍보하고 학교 다니는 중에 배달해 가며 학업을 했다합니다. 새벽 같이 배달을 하고 하교길에 병을 수거했다 하니 참 대단하시지요.
당시 메모장을 보니 크롤레라, 유산균, 발효액관리등 지금에야 상용화된 아이템들로 즐비하여 놀랐습니다. 집 한구석은 아버지의 연구실이었는데 현미경과 주사기, 시험관으로 가득했는데 옆에서 지켜보곤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열정과 도전의 일생이었습니다. 준비하시고 펼치신 일들은 너무 많지만 항상 한두 발 앞선 것들이라 상업화 하기엔 때가 맞지 않은 듯 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중에도 연구와 도전은 계속되었습니다. 녹즙 열풍이 일기도 전에 녹즙기 특허를 획득하고 사업에 뛰어들기도 하셨지요. 십년이나 지난후에 녹즙기가 유행하는 것을 보기도 했고 자동세척기연구와 식품기계개발등 특허와 실용신안의 성과는 상용화 하기엔 안타까운 일들이 많아 애를 태우기도 했습니다. 결국 뇌출혈로 건강을 해쳐 오랫동안 어머니의 정성으로 살아오셨습니다.
두분은 금실이 좋아 동네에서도 잉꼬부부로 알려져 서당골 노래자랑에도 초청되어 인기상을 수상하고 엑스코 시니어축제에서 찍힌 사진이 매일신문에 큼직하게 나와 가족들에게 기쁨을 선사하기도 하셨지요. 아들은 법대 나와서 고시도 못했다며 아쉬워 했는데 손녀의 로스쿨 졸업식엔 한을 풀었다며 좋아라 하시고 변호사 합격 소식엔 동네 떡을 돌리기도 했지요.
아버지의 지칠 줄 모르는 도전과 열정은 동네꽃길 만들기로 마지막까지의 남은 힘을 쏟았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화분에 물주는 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셨던 마지막 모습이 젊은시절 새마을운동 사진과 오버랩됩니다. "열정과 땀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시간을 아껴 아버지 유훈을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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