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호신술 직접 배워보니…생사를 가르는 '40초'

시민들 불안감 고조…태권도·복싱클럽 등 호신술 학원에 관심
서현역 사건 발생 직후부터 '보안용품' 검색 급증
흉기 든 범인 제압 어려워도 심리적으로 도움

대구 북구 침산동 태권도장 한미르 태권도장에서 수강생들이 태권도와 호신술을 배우고 있다. 한미르 해동도장 제공
대구 북구 침산동 태권도장 한미르 태권도장에서 수강생들이 태권도와 호신술을 배우고 있다. 한미르 해동도장 제공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무릎을 세게 밀어보세요!"

7일 오전 11시쯤 대구 북구 침산동에 있는 태권도학원 한미르 해동도장에는 호신술을 배우러 온 성인반 수강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주로 2~40대 여성들이었다. 황영민 관장(45)은 수강생들에게 '갑자기 손을 붙잡혔을 때 빼내는 법', '위협당할 때 발로 차고 도망가는 법' 등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취재진도 괴한과 맞닥뜨렸을 때 도망가는 법을 직접 배워봤다. 처음에는 뒷걸음질 치다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반사적으로 몸이 움츠러들기도 했다. 하지만 안정적으로 물러나는 법을 배운 후에는 빠른 속도로 상대의 공격 반경을 빠져나왔다. 넘어지더라도 상대를 주시하며 무릎을 발로 밀어냈다. 상대가 뒤로 밀려나 당황하거나 주춤하는 사이 재빨리 도망쳐야 한다.

황 관장은 "일반적으로 40초를 버티면 범행이 쉽지 않다고 느끼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 시간 동안 도망칠 여건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최근 '묻지마 범죄'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하며 스스로 몸을 지킬 수 있는 호신술과 호신용품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지는 못해도 최소한의 방어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다. 일각에서는 시민 불안감 해소를 위해 치안 강화에 나서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3일 경기 분당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이후 수도권 주민들의 불안함은 극에 달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1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을 입었다. 신림역에서 칼부림 사건이 벌어진 지 13일 만이다. 인터넷을 통해 살인 예고글이 잇따라 올라오자 비수도권 주민들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대구 북구 주민 박서영(42) 씨는 "처음에는 운동 목적으로 아들을 킥복싱 학원에 보냈는데, 요즘에는 호신술 차원에서도 도움이 될 것 같아 계속 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구 주민 복소리(28) 씨도 자전거로 15분 거리에 떨어진 태권도 학원에서 호신술을 배우고 있다. 복 씨는 "최근 묻지마 살인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친구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그런 사건은 정말 아무나 죽이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라며 "이전부터 태권도를 배우고 있었지만, 최소한의 방어를 위해 최근에는 호신술 연습도 병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호신용품 수요도 덩달아 증가했다. 네이버 급상승 검색어 이력을 제공하는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서현역 사건이 발생한 3일부터 '보안용품' 검색량이 확연히 늘었다. 지난 5일 기준 '생활·건강' 분야 검색어 순위를 살펴보면 호신용품, 호신용스프레이, 삼단봉, 방검복 등이 나란히 1~4위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호신술과 호신용품이 도망갈 시간을 벌거나 급작스러운 상황에 빠른 판단을 내리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은학 대구과학대학교 레저스포츠과 교수는 "흉기를 든 범인을 완전히 제압하긴 힘들어도 위급 상황에는 몸이 기억하고 민첩하게 반응할 수 있다"며 "상대를 제압하는 훈련을 하면서 심리적으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시민들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도록 치안 강화에 힘써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상운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호신용품이나 호신술 열풍이 부는 것은 결국 경찰의 치안력이 시민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지 못한다는 반증"이라며 "시민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7일 오전 11시 30분쯤 대구 북구 침산동 태권도장 한미르 태권도장에서 기자가 직접 호신술을 배워봤다. 윤수진 기자
7일 오전 11시 30분쯤 대구 북구 침산동 태권도장 한미르 태권도장에서 기자가 직접 호신술을 배워봤다. 윤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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