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항일史 자랑 '광복회'…1915년 달성공원서 광복 꿈꾼 비밀조직 태동했다

그해 여름 대구서 '광복'을 꿈꾼 청춘들…달성공원서 결성된 광복회 투쟁기 재조명
총사령 박상진 필두로 우재룡, 권영만 등 주축…1910년대 대표 항일단체
"대구가 발원지지만 기념비 하나 없어 아쉬워"…스티로폼 기념비로 행사 진행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1915년 12월 24일 새벽 경북 경주 효현교. 혹한의 추위 속 현금을 가득 싣고 대구로 향하던 우편마차가 털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마차에는 일제가 경주·영덕·영일(현 포항) 등 3개 군에서 거둔 세금 8천700원이 있었다.

이 사건이 항일무장단체인 광복회의 첫 '거사'였다는 것은 한참 뒤에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우편마차가 대구로 이동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광복회 단원 우재룡과 권영만이 군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실행한 작전이었던 것.

환자로 가장한 권영만은 일본인인 우편마차 주인집에서 숙박한 뒤 대구 병원 치료를 핑계로 마차에 올라탔다. 우재룡은 마차를 멈추기 위해 다리를 파괴하고 기다렸고, 권영만은 마차가 멈춘 사이 돈을 챙긴 후 달아났다. 사건의 진실은 광복 이후 작성된 광복회 총사령 고헌(固軒) 박상진의 일대기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1915년 달성공원서 결성된 광복회…"대구에서 만주까지"

제78주년 광복절을 맞아 대구에서 결성된 항일무장단체 광복회의 족적이 재조명되고 있다. 서슬 퍼런 일제 치하에서도 선명히 빛났던 이들의 애국심과 저항정신은 대구시민들에게 큰 울림을 전한다.

대한광복회라고도 불리는 광복회는 1915년 8월 25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결성된 비밀결사 조직으로, 당시 경북지역에 거점을 뒀던 독립의군부·풍기광복단·달성친목회·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 등 4개 단체가 합쳐졌다. 총사령에는 울산 출신의 박상진이 추대됐고, 우재룡과 권영만이 지휘장을 맡아 중심을 잡았다.

13일 대구 중구에 있는 대구근대역사관 2층 기획전시실에는 '대구에서 만나자-1910년대 광복을 꿈꾼 청년들' 특별기획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번 전시는 광복회 결성 당시 대구 모습이 담긴 지도와 사진, 문서와 함께 박상진 광복회 총사령의 사형 판결문 등 100여 점의 역사자료를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상덕태상회(尙德泰商會)'에 관한 내용이었다. 총사령 박상진은 1912년 대구경찰서 바로 맞은편에 상덕태상회라는 곡물상을 세웠는데, 이곳은 광복회의 실질적인 본부이자, 연락거점이었다. 적진의 중심부에서 거사를 도모한 광복회의 대담성과 기개를 엿볼 수 있는 단면이다.

광복회는 1910년대 국내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항일단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조선팔도에 지부가 있을 정도로 전국적인 조직이었고, 만주의 독립군 기지를 지원하기도 했다. 김좌진 장군을 만주로 파견한 것 역시 광복회였다. 이들의 치열했던 독립투쟁은 1919년 3·1운동과 1920년대 이후 더 격렬해진 의열 활동의 초석이 됐다.

지난 6월 9일부터 시작된 특별기획전에는 대구시민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대구문화예술진흥원 박물관운영본부에 따르면 13일 기준 9천953명의 관람객이 방문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가족들과 전시를 보러 온 김유진(34) 씨는 "대구를 중심으로 이처럼 치열한 독립운동이 전개됐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며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해 당시 대구에 모였던 분들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중보 1946년 1월 3일자에 실린 상덕태상회 사진. 상덕태상회 간판 바로 옆에 앉은 이는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선생으로 추정된다. 대구근대역사관 제공
민주중보 1946년 1월 3일자에 실린 상덕태상회 사진. 상덕태상회 간판 바로 옆에 앉은 이는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선생으로 추정된다. 대구근대역사관 제공

◆스티로폼 기념비로 행사 치르는 계승사업회

광복회는 대구 항일운동사의 자랑거리지만, 정작 대구에 이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하나도 없다는 점은 '옥에 티'로 지적된다. 지난 2018년부터 매년 8월 25일 달성공원에서 광복회 설립 기념식을 열고 있는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도 스티로폼으로 만든 임시 기념비를 설치해 행사를 치르는 실정이다.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는 2020년 10월 1천만원가량의 자체 예산을 잡아 세로 1.8m, 가로 40㎝의 돌 재질 기념비를 설치하고자 대구시에 문의했으나 문화재청이 난색을 보여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2021년에는 대구시 대외협력특보 주재로 문화재청, 중구청 등이 회의를 거쳤으나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신청이 어려운 것으로 검토됐다.

이와 관련 대구시 관계자는 "달성공원 내부에 땅을 파고 기념비를 세우려면 소유주인 문화재청의 현상변경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라며 "기념비 설치를 시 차원에서 검토 중이진 않다"라고 밝혔다.

광복회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알릴 상징물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관계자는 "전북 군산에도 있는 광복회 표지석이 정작 발원지인 대구에 없다는 것이 참 안타깝다"라며 "교과서에서 실릴 만큼 큰 업적이다.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관심을 기울여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구 지도(1918년 )에 표기된 광복회 관련 주요 현장. 대구근현대역사관 제공
대구 지도(1918년 )에 표기된 광복회 관련 주요 현장. 대구근현대역사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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