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야호~.(거제! 안녕~.)"
걸그룹 리센느 멤버 미나미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경남 거제를 뜻밖의 방식으로 주목시켰다.
일본 국적 멤버 미나미는 거제 출신 멤버 원이와 함께 출연한 유튜브 콘텐츠에서 원이가 자신의 갸루(개성 강한 화장·패션을 선호하는 일본 젊은 여성 문화) 콘셉트를 지적하며 "너 지금 이러고 거제 가잖아? 거제시민들한테 혼나"라고 말하자 임기응변으로 "거제! 야호~."라고 대답했고, 이게 곧장 인터넷 밈이 돼 유행 중이다. '야호'는 일본 젊은이들이 쓰는 '안녕'과 같은 가벼운 인사말.
현재 '거제 야호'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틱톡 등 SNS 세상에서 짧은 영상(숏폼) 문법을 타고 퍼지며 거제라는 지역명을 젊은층의 검색어와 농담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거제시가 이걸 놓치지 않았다. 지난 5월 22일 리센느를 거제시 홍보대사로 위촉한 것. 지역명이 밈이 되고, 밈이 지역 홍보의 소재가 되는 주목할만한 사례가 작성되고 있다. 가령 '갸루와 거제에 왔습니다(거제 1편)' 유튜브 영상은 공개 2주 만인 6월 6일 기준으로 조회수 590만회를 넘겼다. 참고로 거제시 유튜브 동영상 중 최다 조회수 기록이 130만회다.
◆'여수 밤바다' 이후의 여수
거제시는 '거제 야호'의 인기를 바탕으로 급격히 커진 지역에 대한 관심을 여행(관광) 활성화와 특산품 소비, 그리고 지역 브랜드 향상으로 전환시키려 하는데, 그 속도가 관건이다. 밈은 빠르게 번지지만 또한 빠르게 식기 때문이다. 지자체의 역할은 그 짧은 주목을 최대한 붙잡아 브랜드로 형성하는 일이다.
거제가 목표로 삼을 만한 첫번째 사례는 전남 여수다. 가수 버스커버스커가 2012년 발표한 곡 '여수 밤바다'는 지역 이미지 자체를 바꾼 대표적 대중가요 사례로 꼽힌다. 원래 풍부한 해양 관광 자원을 갖고 있던 여수는 노래가 뜬 후 '낭만적인 밤바다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굳혔다. 이후 여수시는 낭만버스킹, 낭만포차, 야간시티투어 같은 콘텐츠로 그 이미지를 관광상품화했다. 노래가 감성을 만들고, 지자체가 그 감성을 관광산업으로 번역한 셈이다.
실제로 여수는 2012년 여수 세계 박람회(여수 엑스포) 개최 전만 해도 연평균 방문객이 700만명 안팎 수준이었지만, 박람회를 개최하고 여수 밤바다가 히트하자 2015~2017년 3년 연속 연 방문객 1천300만명을 넘기며 관광도시의 체급을 높였다.
◆'효리네 민박'이 띄운 제주살이
제주 애월과 소길리가 누렸던 '효리네 민박'(JTBC 예능프로그램) 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여수가 하나의 노래가 도시 전체의 정서를 만든 경우라면, 제주는 유명인의 생활 장면이 특정 생활권의 이미지를 바꾼 경우다. 애월과 소길리는 통상의 관광지라기보다 방송 속 이효리·이상순 부부의 일상을 동경해 '살아보고 싶은 동네'의 감각으로 소비됐다.
이는 실제로 제주 내국인 관광객 증가와 음식업·숙박업 파급 효과를 만들었다. 한국은행 제주본부는 효리네 민박 방송 기간이었던 2017년 6월~2018년 5월 제주 내국인 관광객이 100만7천명 증가한 것으로 파악, 생산 유발효과 6천251억원, 부가가치 유발효과 3천34억원, 취업 유발효과 8천693명 등의 경제 효과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두 사례의 공통점은 지방소멸 시대에 지자체가 원하는 관광산업 부흥의 해법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관광산업은 더 이상 명승지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특정 장소에 가야하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이야기와 이미지, 그리고 그곳에서만 가능한 특별한 경험을 원한다.
◆노래가 남긴 지역의 기억
사실 대중가요가 지역을 각인시키는 사례는 꾸준히 발생했다.
경북 안동은 진성의 '안동역에서'(2008년 안동사랑노래 버전도 있지만 2012년 편곡 버전이 크게 히트) 효과를 봤다. 안동역 앞에 노래비가 세워졌고, 노래는 안동이라는 지명을 오래된 기다림과 애틋함의 이미지로 묶었다. 덕분에 안동은 '양반의 고장' '정신문화의 수도' '독립운동가를 가장 많이 배출한 지역' 등 진지한 이미지만 가득하던 것에서 벗어나 애절한 로맨스의 매력을 곁들였다.
김태희의 '소양강 처녀'(1970)가 먼저 닮은 효과를 냈다. 노래는 소양강을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대중적 기억을 남겼고, 강원 춘천은 소양강 처녀상과 노래비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경북 포항은 최백호의 '영일만 친구'(1993)를 지역 홍보와 농특산품 공동브랜드에 활용했다. 노래 제목이 바다 도시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걸 넘어 특산품 이름으로 확장된 경우다.
이런 효과가 같은 강도로 지속되는 건 아니다. 노래의 인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식고, 세대가 바뀌면 체감은 더욱 약해진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는다. 지역명이 들어간 가요의 힘은 폭발력보다 잔존력에 있다. 한 번 대중의 입에 붙은 지명은 아주 천천히 옅어질 뿐 쉽게 증발하지 않는다.
이 밖에도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1989), 최성원의 '제주도의 푸른 밤'(1988), 문성재의 '부산 갈매기'(1982)처럼 지명이 들어간 노래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지역 이미지를 만들었다.
◆공무원도 지역 띄운다
흥미를 부르는 부분은 이제 이런 효과가 대형 연예인이나 인기곡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충북 충주시에서 '충주맨'이라는 유튜브 콘텐츠 내지는 캐릭터를 성장시켰던 김선태 전 주무관은 공공기관 홍보의 문법을 바꾼 인물이다. 충주시 공식 유튜브 '충TV'는 딱딱한 시정 홍보 대신 B급 감성과 빠른 편집, 공무원 캐릭터를 앞세운 디테일로 전국적 인지도를 얻었다. 충주맨을 맡았던 김 전 주무관의 영향력은 구독자 수로도 확인됐다. 그의 사직 소식이 전해지기 직전 충주시 공식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97만명 수준까지 치솟았다.
이 흐름은 다른 지역으로 번졌다. 경남 양산시는 하진솔 주무관 등이 출연한 '진솔아 나를 믿니?' 등의 숏폼 콘텐츠로 주목받았다. 양산시 SNS 영상들은 누적 조회수 수천만회를 넘기며 공무원 홍보 콘텐츠가 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경기 양주시는 정겨운 주무관의 일명 '진주무관' 캐릭터를 부각시켜 지역 축제와 특산품, 시정 홍보를 과감한 패러디 콘텐츠로 풀어냈다. 이들 모두 '공무원 인플루언서형 지역 브랜딩'이라는 새 유형을 제시했다.
◆거물 스타만 답은 아니다
BTS(방탄소년단) 사례는 이 흐름의 정반대편에 있다. BTS는 여느 스타들과 체급이 다른 글로벌 아이돌이다. 멤버들의 고향은 존재 자체로 관심을 얻고, 뮤직비디오와 앨범 재킷 촬영지는 팬덤의 순례지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거제 야호'가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리센느는 소규모 팬덤을 가진 이른바 중소 기획사 아이돌, 중소돌이다. 그런데도 유튜브 콘텐츠 속 짧은 대화가 밈이 되자 거제라는 지명이 퍼졌고, 지자체는 이를 공식 홍보를 위해 끌어왔다. 지역에 유명세를 불어넣는 힘이 꼭 거물의 이름값에서만 나오지 않는 시대가 됐다는 얘기다.
즉, 중소 아이돌도, 공무원도, 주민 누군가의 우연한 한마디도 지역명을 전국적 밈으로 만들 수 있다. 지역 브랜딩의 문법은 '누가 유명한가'에서 '어떤 말이 반복되고, 어떤 콘텐츠가 따라하기 쉬운가'로 이동 중이다.
◆관심을 소비와 체류로
여기서 비거주자의 지역 방문 활성화, 즉 관광 및 생활인구 확대의 중요성을 찾을 수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2024년 펴낸 '인구감소지역의 여가 소비 현황과 과제'에 따르면 2022~2023년 인구감소지역 전체 소비 지출에서 비거주자의 소비가 40% 이상을 차지했다. 연구원 측은 "일반 지역과 비교해 인구감소지역은 비거주자가 방문해 지출하는 소비금액이 지역 전체 소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고, 인구감소지역 활성화에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여행과 스포츠를 목적으로 방문한 비거주자의 소비가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주목한 것이다.
연구원이 사례로 언급한 생활인구 확대 수단이 지역 축제와 스포츠 대회, 전지훈련 유치라면, 이젠 여기에 대중문화·디지털 콘텐츠를 계기로 한 방문 소비도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수 밤바다'와 '효리네 민박'은 노래와 방송이 지역 이미지를 바꿔 방문 욕구를 키운 사례였고, '충주맨'은 지자체 생산 콘텐츠가 지역명을 전국적 브랜드로 만들어 호감을 높인 사례였다. 이제 막 나온 '거제 야호' 역시 아직 성과를 평가할 단계는 아니지만, 아이돌 콘텐츠에서 출발한 밈이 타지 사람들의 우리 지역에 대한 관심으로 번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관건은 이런 관심을 실제 여행 동선, 체류 경험, 소비 상품 등으로 전환시키는 지자체의 실행력이다.
지방소멸 시대의 지자체는 출생률 회복 같은 대반전과 대기업 유치 같은 큰 호재가 정주인구를 늘려주길 마냥 기다릴 수만 없다. 지역의 이름이 우연히 대중의 입에 오르는 순간을 포착하고, 그걸 방문·체류·소비와 재확산의 구조로 연결해야 먹고살 수 있는 시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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