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팔공산은 천상의 화원] 보석처럼 찬란한 가을 열매

초가을,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꽃보다 더 꽃같은 열매

꽃보다 화사한 참빗살나무 열매
꽃보다 화사한 참빗살나무 열매

세상에 예쁜 존재들은 참 많다. 사람들이 그것들을 잘 보지 못하고 지나칠 뿐이다. 그 예쁜 이들중에서 스치고 지나치기 특히 아까운 것이 열매다. 가을이 깊어 갈수록 숲의 색은 점점 탁해진다. 초록에서 붉은색으로 가는 중간색은 숲을 어두워 보이게 한다. 아직 단풍이 들 만큼 농익은 가을은 아니라서 음침하다.

그렇지만 열매들은 자신들을 드러내기 위해 아름다운 색으로 치장하고 뽐내기에 여념이 없다. 9월 말, 팔공산에 단풍이 제대로 들려면 한 달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면 단풍의 화려한 색깔에 묻혀버리기 전에 꽃 못지않게 예쁘고 보석처럼 찬란한 열매를 만나러 산으로 가보면 어떨까.

팔공산 역시 아름다운 가을 열매들이 다양한 색으로 치장한다. 어떤 열매는 빨간색으로, 어떤 열매는 보라색으로, 어떤 열매속의 씨앗들은 새까맣다. 햇빛을 받으면 모든 색이 보석이다. 그런 보석들이 나무에 달려서 빛이 난다. 그 열매들을 만나는 계절은 춥지도 덥지도 않다. 너무 두껍지 않은 재킷 하나 걸치고, 선선한 가을을 맞으며, 자연이 세공한 아름다운 보석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들의 색이 탈색되기 전에 이렇게 제안하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권위 있는 세공사가 만든 보석을 감상하러 우리 함께 팔공산 가실래요?"

참빗살나무
참빗살나무

◆꽃보다 화사한 참빗살나무 열매

팔공산에 참빗살나무는 아주 흔하게 자란다. 수태골이며, 가산산성 가는 길이며, 동봉에서도 볼 수 있다. 특히 하늘정원과 비로봉 가는 길에 많이 자생한다. 참빗살나무 열매는 어느 꽃에도 뒤지지 않는 색을 가졌다. 꽃은 연한 푸른색이라서 눈길을 끌기는 어렵다. 가을이 오면 화사하고 선명한 분홍색의 열매들이 특히 매력 있는 나무다. 키는 그다지 크지 않으며, 능선에 자라는 참빗살나무는 눈높이에서 열매를 자세히 볼 수 있다.

부푼듯한 분홍색의 열매껍질이 터지면 주황색 옷을 입은 씨앗들이 노출되는데 새들이 참 좋아한다. 이처럼 아름다운 색을 가진 열매는 사람의 마음을 감탄케도 하지만 실제로는 새들을 유인하기 위한 전략이다. 새들의 먹이가 되어 새의 뱃속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는 새들을 위한 색이라도 무슨 상관이랴. 사람도 아름다운 빛깔과 자연의 경이를 즐길 권리가 있다.

초피나무는 경상도에서는 재피나무 또는 지피나무라고 흔히 부른다.
초피나무는 경상도에서는 재피나무 또는 지피나무라고 흔히 부른다.

◆재피나무? 지피나무? 초피나무!

초피나무는 경상도에서는 재피나무 또는 지피나무라고 흔히 부른다. 추어탕의 풍미를 돋우기 위해서 향신료로 넣는 것이 바로 초피나무이다. 초피나무는 알다시피 향이 아주 강한 나무이다. 잎과 꽃, 열매에서도 향기가 진하게 난다. 우리나라의 전통 허브라고 여기면 된다. 초피나무는 전국의 산에서 흔하게 자란다. 팔공산에서도 여기저기 다양한 곳에 자생한다.

초피나무는 이른 봄에 꽃이 피는데 암수딴그루이다. 암꽃은 암술만 있고 수꽃은 수술만 있다. 그래서 초피나무 수나무는 열매가 전혀 달리지 않는다. 오로지 암나무에만 달리는 열매는 늦여름이나 가을에 주로 채집한다. 그리고는 잘 말려서 씨앗은 버리고 껍질을 남긴다. 그 열매껍질을 말려서 가루로 빻아 향신료로 사용한다. 그것이 재피가루 또는 지피가루이다. 사람이 미처 따지 못한 열매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향기를 품은 채 아주 빨갛게 익어 가을숲을 장식한다.

작살나무는 가지가 갈라지는 모습이 물고기를 잡는 작살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작살나무는 가지가 갈라지는 모습이 물고기를 잡는 작살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보랏빛 구슬이 알알이, 작살나무

작살나무는 가지가 갈라지는 모습이 물고기를 잡는 작살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름과는 달리 여름이면 귀엽고 예쁜 연한 보라색의 작은 꽃이 오밀조밀 모여서 핀다. 특히 작살나무는 꽃 못 않게 예쁜 열매를 가진 나무중에 하나이다. 꽃보다도 더 진한 보라색의 조그마한 구슬같은 열매들이 가을에 알알이 달려 익는다. 키가 크지 않아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기에도 적당하다.

그런 앙징맞은 나무가 팔공산에 흔하다. 동봉이며 서봉이며 은해사 주변이며 다 나열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 가까이에 있다. 깊은 숲속보다는 등산로 주변으로 조금만 눈길을 돌리면 눈에 들어온다. 유혹적인 보라색의 열매는 지금부터 겨울까지 감상이 가능하다. 아직은 나뭇잎에 숨어 있는 보라색의 열매를 찾아보는 재미를 즐길 수 있는 계절이 바로 요즘이다.

으름덩굴 열매
으름덩굴 열매

◆코리안 바나나, 으름덩굴의 열매

으름덩굴의 열매를 우리는 보통 '으름'이라고 부른다. 뽕나무 열매는 '오디'라는 이름을 따로 가졌지만 으름덩굴의 열매는 그냥 으름이다. 으름덩굴 역시 흔하게 자라는 나무이며 팔공산에도 갓바위(관봉), 가산산성 가는 길, 등 여러 등산로 주변에서 자주 보인다. 으름덩굴은 이름대로 다른 나무를 칭칭 감고 올라가서 꽃을 피운다.

꽃의 색깔은 보랏빛이 도는 갈색이다. 하나의 꽃차례에 암꽃과 수꽃이 따로 달리는데 그 크기와 모양이 달라서 쉽게 구분이 가능하다. 수꽃은 암꽃보다 크기가 작고 더 많은 개수가 달린다. 암꽃은 수꽃보다 크고 가운데 달린 진한 자주색의 암술대가 자라서 열매가 된다.

꽃은 향기가 아주 달콤하여 저절로 고개가 돌아갈 정도이다. 열매는 길쭉하게 연한 갈색으로 가을에 익는데 보통 추석 즈음이다. 작은 바나나 같은 모양의 열매는 익으면 한쪽이 쪼개져서 벌어진다. 속에 하얀 과육과 함께 까만 씨앗들이 아주 많다. 과육을 먹으면 지나치지 않은 달콤한 맛이 난다. 그 맛이 잘 익은 바나나와 비슷하다. 모양과 맛이 바나나를 닮아서 코리안 바나나라는 별명이 붙었다.

산에 자라는 키위, 다래
산에 자라는 키위, 다래

◆산에 자라는 키위, 다래

다래라는 이름을 들어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만큼 익숙한 이름이다. 청산별곡에도 다래가 등장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에 깊이 녹아든 나무가 다래다. 다래는 덩굴식물로 다른 나무를 감고 올라간다. 요즘 팔공산에 가면 덩굴에 주렁주렁 달린 열매를 만날 수 있다.

하늘정원을 비롯해서 높은 곳을 향해 오르는 사면길이나 골짜기 등지에서 어디든 만나진다. 다래는 늦봄이나 초여름에 꽃이 피고 향기가 아주 좋다. 꽃이 지면 열매가 영그는데 다 익어도 초록색이다. 보통의 열매들은 익으면 색이 더 화려하고 빛나는 색으로 바뀐다. 그러나 다래는 그렇지 않다. 다 익으면 땅에 떨어지고 그 열매들을 주워서 먹는 것이 제맛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다.

약간 말랑말랑한 열매를 먹으면 영락없는 키위 맛이다. 아니 그보다 더 맛있다. 좀 큰 도토리만한 열매는 굳이 껍질을 깔 필요가 없다. 털이 없기 때문이다. 그대로 옷자락에 쓱쓱 문질러 닦아서 먹을 수 있다. 사람 못지않게 너구리도 다래 열매를 참 좋아한다. 그러니 산에서 다래 열매를 만나면, 그 달콤한 유혹을 견디기 어렵더라도 다 먹어치우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에게는 간식이지만 너구리에게는 양식일 수 있으니까.

김영희 작가
김영희 작가

글 산들꽃사우회 (대표집필 김영희작가)·사진 산들꽃사우회

〈유재경 교수의 수도원 탐방기〉는 필자의 사정으로 다음주 목요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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