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검은 비 내렸다" 원폭 피해자 국내 1천834명 생존…2세대 피해도 속출

생존자 평균 나이는 83살 "평생 두통과 피부질환 달고 살아"
대구경북 원폭피해자 570여 명…2세대는 지원조차 못 받아

1일 오후 대구 반월당역 교육장, 일본적십자사 나가사키원폭병원과 나가사키대학 병원에서 차출된 피폭 전문 의료진이 대구경북 원폭피해자들을 진찰하고 있다. 김유진 기자
1일 오후 대구 반월당역 교육장, 일본적십자사 나가사키원폭병원과 나가사키대학 병원에서 차출된 피폭 전문 의료진이 대구경북 원폭피해자들을 진찰하고 있다. 김유진 기자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연이어 투하된 원자폭탄의 상흔이 80년이 지난 지금도 아물지 않고 있다. 일제에 강제징용된 탓에 피폭된 한국인 피해자들과 그 후손들은 사회적 편견에 짓눌려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데 급급했다.

1일 오후 방문한 대구 반월당역 교육장에는 일본적십자사 나가사키원폭병원과 나가사키대학 병원에서 차출된 피폭 전문 의료진이 고령의 환자들을 진찰하고 있었다. 진찰을 받는 환자는 모두 1945년 원자폭탄에 피폭된 피해자였다. 대한적십자사는 지난 2005년부터 연 2회 원폭 피해자를 대상으로 건강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로 중단된 상담은 올해 3년 만에 재개됐다.

당시 7살의 나이로 가족들과 함께 히로시마에 거주했다는 조유형(85) 씨는 원자폭탄이 떨어지던 순간의 장면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는 "부엌에서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시커멓고 커다란 구름이 생기더니 검은 비가 내렸던 기억이 난다"라며 "사람들은 담요를 덮어쓰고 바쁘게 뛰어다녔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피폭된 사실은 평생 숨기고 다녔다. 남편에게도 결혼 뒤에 간신히 말할 수 있었다"라며 "나는 아직도 만성적인 두통과 피부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콩팥 하나도 종양이 생겨 제거했다"고 털어놨다.

피해자들은 피폭의 고통이 한 세대에서 끝나지 않고 대를 이어 내려왔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 대구경북지부에 따르면 대구경북에 거주하는 원폭 피해자는 모두 570여 명이다. 이 중 원폭 직접 피해자인 1세대는 320명, 2세대는 250명 정도다. 3세대는 정확한 파악이 어려운 실정이다.

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장을 맡고 있는 이태재(64) 씨는 "어릴 때부터 병약했다. 나이를 먹고서는 위암이 생겨 위 4분의 3을 절제했다"며 "나는 후유증이 덜한 편이다. 심각한 사람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일반 사고와 달리 피폭은 고통을 대물림하는 재앙"이라고 했다.

남은 피해자들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원을 정부와 지자체에 요구한다. 박일부 한국원폭피해자협회 대구경북지부장은 "지난 2017년에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 시행됐지만 지난해부터 한 달에 지원금 5만원씩 받는 게 고작이다. 우리 협회만 해도 인건비도 없어 허덕이는 처지"라며 "2세대들은 아직 인과성을 입증하지 못해 지원조차 못 받고 있다"고 말했다.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로 한국인은 7만여 명이 피폭돼 4만여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방 이후 생존자 3만여명 가운데 2만3천여 명이 귀국했는데, 대한적십자사 집계 결과 올해 4월 기준 국내 생존자는 1천834명에 불과하다. 생존자 평균 나이는 83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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