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정재찬/인플루엔셜/2020)

깊은 가을,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이다. 11월의 하늘을 보면 눈물이 나는 까닭은 윤희순 작가의 말처럼, '누구나 마음속에 흐르는 강이 있어'서일까?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엔 차마 아까운 시간'(나태주 '11월') 때문일까? 무엇이든 이대로 보내기엔 너무 아쉬운 계절의 끝자락에서 삶을 위로하는 따뜻한 책, 정재찬의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펼쳐 든다.

정재찬 작가는 한양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시를 잊은 그대에게'(2015), '그대를 듣는다'(2017),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들'(2020) 등을 출간하며 우리 시대의 '시(詩) 소믈리에', '시(詩) 에세이스트'로 불리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시의 숲에서 인생의 길을 찾는 이에겐 향기로운 빛이 난다고 말하는 그는 시가 우리 삶에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정답이 없는 인생에 어떻게 정답을 찾는 길잡이가 되어주는지를 간결하고 편안한 문체로 표현한다. "시마저 없다면 어떤 언어로 인생을 위로할 수 있을까?" 작가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책은 '밥벌이, 돌봄, 건강, 배움, 사랑, 관계, 소유' 총 7가지 주제로 구성돼있다. 어떻게 인생을 살아나갈 것인가에 대한 작가의 지혜를 인문학 강좌를 보는 듯, 듣는 듯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감성의 언어에 젖게 된다. 책 속에 심어둔 시는 자연스럽게 나의 인생과 사람들, 내가 지나온 길을 살피도록 이끈다. 작가는 이렇게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을 기억하도록 돕는다. 정재찬 교수의 글은 산문이지만 시처럼 군더더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시에 대한 해설도 딱 적당하다. 나머지는 나의 몫이 된다.

"마음은 비우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은, 영혼은, 채우는 겁니다. 얼마나 선한 것, 귀한 것, 사랑스러운 것으로 채울까. 그런 것들로 채우는 삶은 행복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5장 '사랑' 중)

"세월을 안으로만 새기고, 생각은 여전히 푸르른 희망으로 가득 찬 사람, 그리하여 내년엔 더 울창해지는 사람. 그렇게 나이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중략) 어른으로 늙는 것이 아니라, 어른으로 계속 커가면 좋겠습니다."(4장 '배움' 중)

시로 듣는 인생론이다. 꽤 좋다. 가끔 고개를 끄덕이고, 슬쩍 미소 짓다가 혹은 눈물도 훔쳐보며, 마음을 다지고, 때론 마음을 내려놓으면 그만.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좋은 시 한 편과 함께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이승희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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