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정신질환 편견 깨는 휴먼드라마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주는 힐링과 위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아직도 정신질환 혹은 정신병원이라고 하면 선입견과 편견이 있는 게 사실이다. 어딘가 사회와는 격리되어야 할 것 같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기는 경향이 그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그걸 깨주는 감동적인 드라마다.

◆정신질환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얼마 전에도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 범인이 잡혔을 때 환청, 환시에 시달리는 조현병 환자였다는 사실이 뉴스에 크게 보도가 되면서 이슈가 됐었죠? 안타까운 건 사람들의 인식입니다. 치료받지 않은 조현병 환자의 범죄율은 전체 범죄의 0.04%에 불과합니다. 정신질환은 관리의 병입니다. 무엇보다 병원에 빨리 오셔서 관리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이제 기상해 준비를 하고 출근을 하는 정다은(박보영) 간호사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가 출근길에 핸드폰으로 보는 '뇌플릭스TV'의 내용들을 의도적으로 깔아 놓는다. 그 방송에 나온 인물은 내과 3년차에서 전과한 정다은 간호사가 이제 일하게 된 정신병동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임혁수(김종택)다. 평범하게 아침을 맞고 출근을 하는 정다은 간호사의 모습과, 임혁수 교수의 멘트는 이 드라마가 앞으로 그려나갈 이야기의 긴장감을 부여한다. 교수가 말한 것처럼 조현병 환자의 이야기는 뉴스 보도에서 사건으로 이슈화되곤 했던 일들이 아닌가. '이상동기범죄'라고도 불리는 사건에서 종종 거론되곤 하는 정신질환이 바로 조현병이다. 그런데 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이들 환자들도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일까. 지금은 아프지만 잘 관리되면 언젠가 정다은 간호사처럼 평범한 아침을 맞을 수 있는.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편견을 깨는 드라마다. 남다른 감수성과 공감 능력으로 환자들의 아픔을 자기 일처럼 여기는 정다은 간호사의 따뜻한 시선은 이 드라마가 가진 시선이기도 하다. 첫 에피소드로 조울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오리나(정운선) 환자의 이야기에서부터 이 드라마가 가진 정신질환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정다은 간호사를 통해 전해진다. 엄마가 하라는대로 하면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 판사 남편과 결혼한 이 환자는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지만, 스토커로 신고를 당하기도 하고 옷을 전부 벗어던지고 춤을 추는 이상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모든 걸 최고로만 해줬던 엄마는 그런 딸을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딸은 폭발한다. "진짜 웃긴 게 뭔지 알아? 나 다 벗어 던지고 춤췄을 때가 태어나서 제일로 행복했어. 사람들이 미친년이라고 손가락질하던 그 순간이 그 때 처음으로 제대로 숨 쉬는 거 같았어. 나 엄마랑 있으면 행복하지가 않아."

그 말에 충격을 받은 그녀의 엄마에게 정다은은 조심스럽게 말한다. "저기 어머니. 제가 이런 말씀 드리는 게 조금 조심스럽긴 한데요. 어머님 꼭 저희 엄마 같으세요. 저희 엄마도 그러시거든요. 막 병원에 떡 돌리라 그러고. 다 나 위해서 하는 말인 거 아는 데도 실은 좀 싫기는 했거든요." 그러면서 딸 역시 엄마의 사랑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를 마치 자기 이야기처럼 에둘러 전해준다. "딸들도 알아요. 엄마가 누구보다 나 사랑하는 거. 어머님이 사랑하니까, 걱정하니까, 그러셨다는 거. 저도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게 편할 때도 있었어요. 그래도 엄마가 제일 좋을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내가 뭘 하든 잘할 거라고 믿고 지켜봐 줄 때요. 어머님도 오리나님 한번 믿어 보시면 안 될까요?"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누구나 정신질환을 겪을 수 있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병원이 등장하고 의사, 간호사들이 나오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봐왔던 의학드라마와는 사뭇 다른 지점이 있다. 그건 의사-간호사-환자로 나뉘는 일종의 경계가 없다는 점이다. 보통의 의학드라마는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와 그걸 고쳐주는 의사라는 분명한 경계를 세워둔다. 그래서 지위의 차이는 아니지만, 환자가 의사에 의지하는 관계가 만들어지고, 두 존재 사이는 분명한 선이 그어진다. 종종 의사가 질병을 앓는 이야기가 서사에 들어오긴 하지만 전체적인 의학드라마의 흐름이란 절대자로서의 의사와 그에게 의지하는 환자로 구분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이런 경계가 흐릿해져 있다. 예를 들어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대장항문외과 의사 동고윤(연우진)은 손가락 마디를 꺾는 강박증을 가진 인물이고, 주인공인 정다은 간호사 역시 마음을 썼던 환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을 겪고는 심각한 우울증의 늪에 빠지는 인물이다. 무엇보다 의사나 간호사들 역시 신적인 존재로 그려지지 않는다. 수간호사인 송효신(이정은)은 이렇게 말한다. "저희들은 환자들의 마음에 파동을 드릴 뿐이에요."

이처럼 의사나 간호사 같은 전문의료인들과 환자 사이에 경계를 흐려 놓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건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함이다. 정신질환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질병 중 하나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그런 구도를 의도적으로 넣은 것. 실제로 이 드라마에는 이들 간호사들 주변에 일상화되어 있는 정신질환을 보여준다.

정다은 간호사의 오랜 절친인 송유찬(장동윤)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일하다 쏟아지는 일에 공황장애를 갖게 돼 퇴사한 인물이고, 송효신은 동생이 조현병이라 그 편견 때문에 마음대로 이사도 가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정다은의 후배 간호사인 민들레(이이담)는 도박중독에 돈만 요구하는 엄마 때문에 온전한 사회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하는 인물인데, 같은 병원 정신과 의사 황영환(장률)은 그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위로하고 치유시켜준다.

환자와 간호사가 직업적으로만 나뉠 뿐 다 같은 사람이라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워킹맘 간호사인 박수영(이상희)과 아이가 학교폭력을 당한 후 가성치매 증상을 보여 입원한 역시 워킹맘인 환자의 이야기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애를 썼지만 일도 육아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가성 치매를 겪는 이 환자는 어느 날 정신을 살짝 놓은 상태에서 박수영을 젊은 날의 자신으로 착각하며 이렇게 말한다.

"너무 애쓰지 마. 너 힘들거야. 모든 걸 다 해주고도 못해준 것만 생각나서 미안해질 거고, 다 니 탓 할거고, 죄책감 들거야. 니가 다 시들어가는 것도 모를 거야. 인생이 전부 노란색일 거야. 노란불이 그렇게 깜박이는데도 너 모를 거야. 아이 행복 때문에 니 행복에는 눈 감고 살거야. 근데 니가 안 행복한데 누가 행복하겠어?"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하며 눈물을 흘리던 환자는 정신이 돌아오자 자신의 손을 꼭 쥐어주고 있는 박수영에게 미안하다고 한다. 그러자 박수영은 "아니예요. 괜찮아요" 하며 미소를 지어줬는데, 그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그 환자의 이야기가 바로 박수영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물론 드라마는 정다은과 동고윤이나 황영환과 민들레의 때론 달달하고 때론 가슴 절절한 멜로도 갖고 있지만, 정신병동을 둘러싼 많은 인물들의 따뜻한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휴먼드라마다. 이재규 감독이 연출을 했는데 우리에게는 '지금 우리 학교는'로 잘 알려져 장르물과는 사뭇 다른 이 작품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그는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같은 휴먼드라마나 영화 '완벽한 타인' 같은 코미디에도 능한 감독이다.

'봄날의 햇살' 같은 따뜻함을 선사하는 박보영과 드러내지 않고 주변을 맴돌며 빛을 주는 '시크릿 선샤인' 같은 연우진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는 수작이다. 넷플릭스로 한 번에 공개돼 상대적으로 화제성이 짧았지만, 만일 매주 방송됐다면 매회 폭발적인 반응이 나왔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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