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시속으로] AI로 대체할 수 없는 예술의 의미와 가치를 묻다…최선 작가

개인전 ‘Illusion of an illusion’
12월 6일까지 갤러리CNK

자신의 작품 앞에 선 최선 작가. 이연정 기자
자신의 작품 앞에 선 최선 작가. 이연정 기자

1800년대 사진기의 발명은 미술사를 뒤흔든 사건 중의 하나로 꼽힌다. 그림보다 더 현실의 모습을 똑같이 담아내는 사진을 마주한 화가들은 새로운 활로를 찾아 나섰다. AI 등 첨단 기술이 삶 곳곳에 녹아들고, 마침내 미술적 방법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 시대의 화가들도 어쩌면 그 때의 화가들만큼이나 깊은 고민과 자문을 반복하고 있을지 모른다.

최선 작가도 그 중 한 명. 그의 작품에는 인공지능으로 대신할 수 없는 예술 작품의 의미와 미적 가치에 대한 질문이 녹아있다.

갤러리CNK(대구 중구 이천로 206)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개인전 '환영의 환영(Illusion of illusion)'에서는 신작 '젖은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그의 작업은 캔버스 천이 젖어 있는 상태에서 시작된다. 물감은 올려지는 순간 번지면서 흐려지고, 흘러내린다. 아무리 붓질을 해도 물감은 허무하게 사라지지만, 수없는 반복에 의해 씻겨도 씻기지 않고 남는 물감이 서서히 비쳐진다. 그렇게 캔버스에 남은 깊은 색은 곧 사라지는 듯한 시간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흔적을 얘기한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아주 많은 선을 그어도 남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이 마치 수많은 것들이 쏟아지고 또 쉽게 사라지는 요즘 시대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와중에도 캔버스에 '생존한' 물감 덩어리들은 마치 희망의 씨앗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 '젖은 그림'의 부제는 '망친 그림'. 그는 "AI에게 망친 그림을 그릴 수 있냐고 물으니 '그런 그림은 그릴 수 없다'고 답했다. 거기에서부터 '젖은 그림'이 시작됐다. 부정할 수 없는 미술의 획기적 변화 앞에서 인공지능으로 대신할 수 없는 예술 작품의 가치에 대한 고민을 작품에 담았다"고 말했다.

갤러리CNK 전시장 전경. 이연정 기자
갤러리CNK 전시장 전경. 이연정 기자

또 다른 신작 '7월'은 작가가 여러 지역을 이동하던 중 경부선 열차가 영동역을 지날 때 유난히 아름다운 마을이 보였던 기억에서 시작한다. 작가는 나중에서야 그곳이 한국전쟁 직후 일어난 양민 학살의 장소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까지 선명히 남아 있는 총탄 흔적은 긴 세월에 잊혀 아름다운 벽화처럼 보이는데, 이러한 아이러니함을 작가는 현장의 모습 그대로 캔버스에 옮긴다.

그는 "아름다운 그림이지만 역사적 배경을 알고 나면 한국인들에게는 분명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라며 "그러한 역사적 경험이 묻은,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한국만의 현대미술을 만들어나가고 싶은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전시장에는 이외에도 부작함초 신작 등이 공개됐다. 전시는 6일까지. 053-424-0606.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