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고려 거란 전쟁’, KBS 대하사극의 화려한 부활

KBS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 호평, 시청률, 화제성 다 잡은 이유

KBS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 포스터. KBS 제공
KBS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 포스터. KBS 제공

KBS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에 대한 관심과 반응이 폭발적이다. 애초 다시 KBS 대하사극이 시작한다고 했을 때 나왔던 많은 우려들과는 너무나 다른 결과다. '고려 거란 전쟁'의 무엇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고려 거란 전쟁', 전쟁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 있었다

퓨전사극은 물론이고 이제 판타지 사극까지 나오는 마당에 다시 정통사극이 힘을 쓸 수 있을까. KBS 대하사극이 거론될 때마다 나왔던 의구심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으로서 '정통 역사'를 담는 드라마 제작은 분명 명분이 있는 사업이지만, 달라진 트렌드와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예전 같은 KBS 대하사극이 통하기 어렵다는 전망들이 나오곤 했다.

하지만 결국 '공영방송 50주년 특별기획'으로 문을 연 '고려 거란 전쟁'은 의외로 괜찮은 반응들이 터져나왔다. 첫 회 5.5%(닐슨 코리아) 시청률로 시작했던 드라마는 매회 상승세를 타며 최고 시청률 8.4%를 찍으며 순항중이고, 방송 2회만에 넷플릭스 국내 TV시리즈 부문 1위를 차자했으며, 콘텐츠 경쟁력 분석 전문 기관인 굿데이터코퍼레이션 공식 플랫폼 펀덱스에서 발표한 11월 4주차 TV-OTT 종합 화제성 부문 4위를 기록했다. 이제 8회가 방영된 '고려 거란 전쟁'은 총 32부작에서 이제 3분의 1을 지나고 있어 향후 사실상 이 사극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강감찬(최수종)이 본격 전쟁에 등판하면서 또 다시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이례적인 성과를 만들어냈던 걸까. 적어도 드라마 초반 부분을 보면 '전쟁'을 전면에 내세운 점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 거란 전쟁'은 당대 중원의 신흥강국으로 떠올랐던 거란제국과 고려가 맞붙게 된 26년 간의 전쟁이다. 그 전쟁 중에서도 1010년에 있었던 거란의 2차침략을 사극의 주 소재로 삼았다. 고려의 장수 강조(이원종)가 군사를 일으켜 목종(백성현)을 시해하고 현종(김동준)을 황제로 세우는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명분 삼아 거란의 황제 야율융서(김혁)가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하며 시작된 전쟁 상황이 그것이다. 당시의 전쟁에서 우리가 역사를 통해 기억하는 이름은 주로 '귀주대첩'을 이끈 강감찬 장군이다. 만일 기존의 KBS 대하사극들처럼 영웅들 중심의 성장서사를 그려나가려 했다면 제목 자체를 '강감찬'으로 붙였을 테지만, '고려 거란 전쟁'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영웅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전쟁 자체에 더 중심을 맞춰놓고 한 영웅이 아닌 여러 영웅들의 서사를 담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래서 '고려 거란 전쟁'의 초반 서사는 고작 3천명의 군사로 40만 대군의 공격을 이겨내고 성을 끝내 지켜낸 흥화진 전투를 이끈 도순검사 양규(지승현)가 주인공이나 마찬가지다. 흥미로운 건 전쟁을 담는 방식이다. 과거의 KBS 대하사극들이 그리는 전쟁 신은 제작비 부족으로 인해 조악하기 이를 데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도 성을 두고 벌어지는 '단촐한' 전투신이 대부분이었고, 그것도 장수들이 죽 일렬로 서서 전쟁 상황을 '중계'하듯 대사로 처리하는 방식을 쓰곤 했다. 하지만 '고려 거란 전쟁'은 훨씬 스케일이 커진 CG 작업을 동원해 수만 대군이 맞붙는 장면들을 연출해냈고(디지털 더미가 활용됐다), 전투신도 투석기나 맹화유(맹열히 타오르는 기름), 함마갱(인마살상용 함정) 같은 디테일한 장면들이 연출됐다. 굳이 '전쟁'을 내세운 건 이러한 전쟁 양상의 디테일이 주는 치고받는 스펙터클한 재미를 보여주겠다는 의도 또한 들어 있었던 것이다.

KBS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 포스터. KBS 제공
KBS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 포스터. KBS 제공

◆기성세대는 물론이고 MZ세대도 사로잡은 비결

이러한 전쟁의 디테일은 이 작품에 대하사극의 고정 시청층이라고 할 수 있는 기성세대는 물론이고 2049 시청자들까지 사로잡은 이유이기도 했다. 게임 등을 통해 익숙해진 전쟁 신들을 대하사극을 통해서도 스펙터클로 보게 된 것이다. 실제로 흥화진 전투에 투석기가 등장하자, 그 형태가 과연 진짜가 맞는가 하는 전쟁 마니아들의 고증이 나오기도 했다. 본래 고려군의 투석기는 장력식 투석기인데 '고려 거란 전쟁'에 나온 건 무게추 투석기와 이것이 뒤섞인 형태라는 식의 이야기들이다. 비판적 고증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디테일한 이야기가 화제가 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자체가 고무적인 일이다. 그만큼 두루뭉술했던 과거의 대하사극과 달리 전투신이 다채로워졌다는 걸 의미하는 일이니 말이다.

물론 흥화진 전투 같은 대승의 역사가 만들어내는 '국뽕'적인 요소 또한 빠지지 않는다. 40만 대군이라면 쉽게 무너뜨릴 줄 알았던 흥화진이 끝내 버텨내는 모습은 한국인으로서 '보는 맛'을 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이 그리 일방적인 승리로만 이어질 수는 없다. 이후 벌어진 전투에서 연거푸 곽주성과 영주성이 함락되고, 도통사로 고려군을 이끌던 강조마저 거란군에 붙잡혀 결국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같은 승리와 패전을 오가는 상황은 드라마로서는 몰입감을 높여주는 요인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전쟁 상황은 왕과 신하들 간의 정치 상황으로도 이어져 '정치극'으로서의 재미 또한 만들어낸다. 강조가 거란군에 잡히게 됐다는 소식이 고려의 신하들을 동요시키고, 그래서 신하들은 일단 백성들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현종(김동준)으로 하여금 거란 황제에게 항복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두가 똑같은 목소리를 낼 때 강감찬만은 다른 생각일 거라 현종은 믿지만, 그 역시 똑같이 항복을 청하자 낙담한다. 하지만 그건 거란 황제는 물론이고 신하들까지 속이려는 강감찬의 계책이었다. 일단 저들을 속여 시간을 벌기 위한 거짓 항복을 하라는 것. 전쟁이 만들어낸 공포 속에서 화친을 요구하는 이들과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이들이 대립하고, 그 사이에서 강감찬이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정치적 선택들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물론 뒤로 가면 그 역시 정치가 아닌 전쟁 속으로 뛰어들 것이지만.

KBS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 포스터. KBS 제공
KBS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 포스터. KBS 제공

◆'고려 거란 전쟁'이 존버 시대에 던지는 공감대

'고려 거란 전쟁'은 '전쟁의 이유'에 대한 화두 또한 던지고 있다. 우리네 전쟁의 역사가 대부분 그러하지만, 고려와 거란이 치른 전쟁에서 고려의 입장은 저들의 침략에 맞서 '지키는 전쟁'이었다. 저들의 전쟁의 이유가 '약탈'과 '정복' 같은 욕망에 있다면, 우리가 전쟁하는 이유는 가족과 이웃을 지키려는 데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격이 아닌 방어에 가까운 이 전쟁은 이른바 '존버 시대'에 사는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공감의 울림이 적지 않다. 즉 힘겨운 상황을 어떻게, 무슨 이유로 버텨내는가 하는 서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생존 상황에서의 '버텨내는 이야기'는 점점 우리네 콘텐츠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종영한 MBC 사극 '연인'도 마찬가지다. 병자호란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끝내 모질게 버텨내는 민초들의 이야기를 '연인'이라는 멜로적 관점을 투영해 그려낸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존버'의 서사는 그래서 '무빙' 같은 슈퍼히어로물이나 '무인도의 디바' 같은 멜로에서도 중심적인 이야기로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된 건 현 시대의 정서가 대단한 성공을 추구하기보다는 현재의 생존이나 각자도생에 더 맞춰져 있기 때문일 게다. 그런 의미에서 '고려 거란 전쟁' 또한 스펙터클한 전쟁 그 자체로 '존버'의 서사를 그려내고 있는 작품으로서 대중들의 시선을 잡아 끌고 있다고 보인다.

과연 '고려 거란 전쟁'은 KBS 대하사극 부활의 신호탄이 될까. 향후 지속적인 상승세를 타며 시청자들의 호평이 이어진다면 당연히 만들어질 수 있는 결과다. 모쪼록 공영방송으로서 그만한 가치와 더불어 재미까지 잡는 대표 콘텐츠로 자리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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