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석에 있던 제 시집의 얼굴이 보여 좋아요" 대구 시집 전문 독립 서점, 산아래 시(詩)

지난 6월 개관…전국 130여 명 시인들 열광
소문 듣고 해외에서도 무상으로 시집 보내와
지난달 대구시인협회와 자매책방 협약 체결
"시를 좋아하는 이들의 소소한 공간 되고파"

지난 6일 오후 3시쯤 찾은 대구 남구
지난 6일 오후 3시쯤 찾은 대구 남구 '산아래 시'. 책의 얼굴인 표지가 보이도록 시집이 진열돼 있다. 알록달록한 표지들이 눈에 띄었다. 심헌재 기자
대구 남구
대구 남구 '산아래 시'에 진열된 시집들. 심헌재 기자

"자신의 시집 얼굴과 셀카를 찍는 시인들이 정말 많아요"

지난 6일 찾은 대구 남구의 한 작은 동네 책방. 10명의 사람들만 들어가도 움직이기 힘들어 보이는 작은 크기였지만, 수백 종류가 넘는 책들이 오밀조밀 진열돼 있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아담한 책방이지만, 특이한 점을 하나 찾아볼 수 있었다. 진열돼 있는 모든 책이 '시집'이라는 점이다. 시집만을 판매하는 시집 전문 독립서점, '산아래 시(詩)'의 모습이다.

'산아래 시'는 지난 6월 개관한 시집 전문 위탁 판매 서점이다. 전국 130여 명, 대구경북 100여 명의 시인들의 시집 300여 종, 1천권 이상이 진열돼있지만, 도서 구입 비용이 따로 들지는 않았다. 문을 열기 전부터 이곳의 소문을 듣고 전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시인들이 무상으로 시집을 보냈기 때문이다. 정가의 10% 할인된 금액으로 판매를 하고, 판매 대금의 60%를 시인에게 보내는 형식으로 운영된다.

판매 경로를 뚫기 쉽지 않은 시인들이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서점이지만, 시인들이 열광하는 포인트는 따로 있었다. 책의 얼굴인 표지가 보이도록 진열돼 있다는 것이다. 책방지기인 이동림 씨는 "대형서점에서 시집 코너는 구석에 위치한 경우가 많고, 그마저도 책의 표지가 아닌 제목만 겨우 확인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여기는 거의 모든 시집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며 "시집을 위탁한 시인들이 시집 사진을 찍는 것은 물론, 셀카를 찍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진열 방식도 특이하다. 모든 시집이 공평하게 좋은 자리에 진열될 수 있도록, 가로·세로 한 줄 씩 시집의 위치가 매주 바뀐다. 또 시집이 매진되면 그 시집은 추가로 판매하지 않는다. 아직 팔리지 않은 다른 '좋은' 시집들을 위함이다. 손님들에게 시집 추천도 절대 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곳의 모든 시집들이 다 좋은 시집이라고 생각하는 책방지기의 운영 방침이다.

산아래 시를 찾은 시민들이 시집을 구경하고 있다. 산아래 시 제공.
산아래 시를 찾은 시민들이 시집을 구경하고 있다. 산아래 시 제공.

지난달 대구시인협회와 자매책방 협약 체결을 통해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이들은 ▷대구 시인들의 시집 보급을 위한 상호 협조 ▷시문학 활성화 및 예술 교류 사업을 통한 상호 협력 증진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시인이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점차 입소문을 타고 있다. 박상봉 대구시인협회 사무국장은 "비교적 나이가 있는 시인들이 이곳을 많이 찾고, 관심이 크지만 최근에는 중학생 2학년이 이곳을 찾기도 했다. 시를 사랑하는 마음에 연령은 크게 상관이 없는 듯하다. 울산과 인천 등 전국에서도 문의가 있다"고 했다.

이곳에서는 '시집 전문 북 토크'도 거의 매달 열리고 있다. 12일 대구 출신의 김재진 시인의 새로운 시집 '헤어지기 좋은 시간'의 북 토크가 예정돼있다. 다만, 이는 산아래 시에서 진행되는 마지막 북 토크가 될 예정이다.

이동림 책방지기는 "소소하게 시를 좋아하는 시인들과 시민들만의 공간으로만 남고 싶다. 북토크 등 큰 행사가 본질을 해치는 것 같아 지양할 생각"이라며 "대구의 시 발전에 산아래 시가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