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반갑다 새책] 서사를 바꿔라

하워드 진·레이 수아레스 지음 / 산처럼 펴냄

노엄 촘스키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양심적 지식이자 진보적 사회운동가로 꼽히는 하워드 진(Howard Zinn)은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미국 민중사' 등으로 1980년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도 뜨거운 관심과 호응을 받았던 인물이다.

지난 2010년 세상을 떠난 그는 85살이던 2007년, 방송인 레이 수아레스와 역사학자로서 자신이 가져왔던 문제의식과 핵심적인 주제들에 관해 이틀 동안 하루 6시간씩 대담을 나눈다. 하워드 진은 평생을 미국의 주류 역사에서 성역으로 여겨 온 신화들을 건들며 제국의 내면을 파고드는 정밀한 서사로 주목받아왔는데, 이 책은 그 간의 그의 지적 여정에 관한 구술 기록인 셈이다.

이 책은 미국인들에게 절대적으로 영웅시되던 15세기의 인물 콜럼버스의 허상을 깨는 것부터 시작해, 최근의 9·11 테러 등 21세기에 이르는 전반적인 미국 역사를 날카롭고 깊이 있는 시선으로 훑어간다.

출처-클립아트코리아
출처-클립아트코리아

본래 이탈리아 출신 선원이었다가 나중에는 스페인의 식민지 총독처럼 된 콜롬버스를 오랫동안 영웅으로 받드는데 대해 비판적인 잣대를 들이댄 하워드 진은 "그런 걸 붙들고 역사를 쓴다는 것은 스스로 남들이 불편해하는 '골칫덩어리'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평생을 역사학자로서 골칫덩어리가 되더라도 피하지 않고 맞섰던 하워드 진은 권력자가 만든 교과서의 역사가 아닌 억압에 물러서지 않고 저항하고 투쟁하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온 인물과 역사적 사실 들을 들춰내 조명해 우리가 알아야 할 진정한 역사적 진실을 집요하게 추적했다. 예를 들어 콜롬버스가 바로 원주민들을 납치하고 팔과 다리를 잘라 죽이고 노예로 삼았다는 이면들 말이다.

출처-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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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벨트 대통령에 대해서도 전쟁광이자 제국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필리핀 민중에 대해 학살명령을 내린 이면을 살펴야 한다고 지적하고, 하층 백인들과 흑인들의 잇따른 봉기와 하급 병사들의 반란 등 주류 역사가 외면해온 사연들도 일깨운다.

이 책은 미국사에 대한 낡은 관념을 뒤흔들고,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며 새로운 관점과 서사를 펼쳐 보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란 무엇이며, 왜 역사를 공부해야 하고, 어떻게 역사를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역사적 각성을 통렬히 일깨우고 있고, 역사나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이 가득 담겨 있다.

하워드 진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고 서사를 바꿔야 도전적인 역사를 만나고, 우리의 내일은 진보한다고 강조한다. 256쪽, 1만6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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