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몸바쳐 시댁식구 뒷바라지…돌아온 건 남편의 무차별 폭행

밤새도록, 가족 앞에서도 맞아…도망가란 딸 말에 끝내 가출 결심
돈 없고 갈 곳 없어 노숙하거나 고시원서 궁핍한 생활 이어가
건강 안 좋은데다 교통사고까지…허리 못 피고 무릎도 안 구부러져

지난 15일 정래원(가명·54) 씨가 옷장에 허리를 기대어 통증을 달래고 있다. 윤정훈 기자
지난 15일 정래원(가명·54) 씨가 옷장에 허리를 기대어 통증을 달래고 있다. 윤정훈 기자

"엄마 이러다 죽어…. 아빠 오기 전에 빨리 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딸이 다급하게 말했다. 딸은 바지 한 벌, 티셔츠 한 벌, 양말 두 켤레를 넣은 종이가방을 건넸다. 가방 손잡이를 쥐고 있는 작고 야무진 두 손이 시야에 들어왔다.

열두 살난 딸은 아이답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슬픔에 짓눌렸지만 결연한 표정. 그러나 꽉 쥔 두 손은 아이답게 달달 떨렸다. 엄마와 떨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떨림으로 전해져 왔다. 하지만 정래원(가명·54) 씨는 딸의 말을 듣기로 했다. 앞만 보고 달리고, 달리고, 달렸다.

그날 현관 앞에 서 있던 딸의 표정이 이젠 떠오르지 않는다. 갈수록 선명해지는 그리움과 죄책감만 옅어진 기억의 틈새를 메울 뿐이다.

◆가정 폭력으로 점철된 끔찍한 결혼생활

래원 씨는 학교 수업이 다 끝나고 오는 날엔 매를 맞았다. 조퇴하고 일찍 돌아와 밭일을 돕고, 동생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라는 부모님의 명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공부를 더 하고 싶었지만 중학교가 한계였다.

중학교 졸업 후, 래원 씨는 타지의 섬유공장에 잠시 다녔지만, 1년도 안돼 공장이 문을 닫아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마땅히 할 일이 없어 결혼했다. 상대는 어머니의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열 살 많은 남자였다.

래원 씨에게 결혼은 은행에서 통장을 만드는 일과 같았다. 해야 하니까, 하라고 하니까. 통장 디자인 따위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던 거다.

감흥 없는 결혼이라도 충실하려했다. 시아버지는 공원을 산책하던 중 넘어지면서 뇌를 다쳐 거동을 못했다. 맏며느리로서 래원 씨는 시아버지의 대소변을 직접 받아내며 헌신적으로 돌봤다.

남편과 시어머니, 함께 사는 시동생 3명의 뒷바라지 역시 래원 씨의 몫이었다. 두 아이를 임신했을 때도 만삭의 몸을 이끌며 모든 일을 홀로 해냈다.

남편이라도 자기 편이 돼줬다면, 그토록 서럽진 않았을 테다. 화물차 운전사였던 남편은 일이 없는 날엔 친구들과 만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그리고 래원 씨를 밤새도록 폭행했다. 주먹으로 때리고 눕혀서 밟고, 머리채를 잡아 옷장으로 던졌다. 흉기라도 손에 드는 날에는 한밤중에 친척 집으로 피신해야만 했다.

시어머니와 시동생들, 그리고 어린 딸과 아들이 지켜보는 앞에서도 폭행당했다. 밤새 맞아 온몸이 멍 투성이가 된 어느 날, 래원 씨는 가출을 결심했다. 엄마가 맞는 모습을 밤새 지켜 본 열두 살 딸이 래원 씨의 등을 밀었다.

래원 씨는 친정으로 가지 않았다. 자신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줄로만 아는 가족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무작정 버스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왔다.

갈 곳도, 돈도 없었다. 처음 이틀 동안은 역에서 노숙을 했다. 그러다 식당 아르바이트를 구했고, 업주의 배려로 영업이 끝나면 식당 홀에서 잠을 청할 수 있게 됐다.

돈이 약간 모였을 땐 고시원에 들어갔다. 아르바이트도 계속했지만, 적은 월급으로는 고시원 생활마저 간당간당했다.

지친 래원 씨는 결국 전 재산 10만원을 들고 친정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 뒤로 어머니와 큰 오빠 집을 전전했다. 남편과도 끝내 이혼했다.

◆교통사고로 용변조차 힘들어…치료는 "꿈도 못꿔"

래원 씨는 가족이 빌려준 작은 빌라에서 혼자 살고 있다. 예전처럼 식당 아르바이트라도 하고 싶지만, 건강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래원 씨는 왼쪽 귀가 난청으로 들리지 않는다. 어린 시절 수술을 받고 작게나마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요즘 들어 다시 들리지 않는다. 기관지 건강도 좋지 않아 호흡곤란을 자주 겪는데 원인을 알 수 없다.

왼쪽 어금니 2개와 오른쪽 어금니 1개가 없고, 앞니도 많이 흔들려서 식사도 쉽지 않다. 심적으로 많이 의지했던 어머니가 3년 전 세상을 떠난 이후로 우울증 치료도 받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허리와 무릎 이상으로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이다. 40대 후반에 들면서 척추질환과 무릎 통증이 심해졌다.

게다가 지난해 10월엔 택시를 타고 가던 중 교통사고까지 당하면서 건강이 악화됐다. 맞은 편에서 달리던 승합차가 갑자기 방향을 틀자 택시가 급제동하면서 다친 사고였다.

그 사고 이후 아팠던 허리는 완전히 펼 수 없게 됐고, 무릎도 구부러지지 않았다. 방에 앉았다가 일어서는 데만 5분 넘게 걸리고, 화장실 변기에 앉는 것도, 볼일을 보고 일어나는 일도 버겁다.

가끔 외출하는 일은 더욱 고통스럽다. 계단을 내려갈 땐 난간을 붙잡고 게처럼 옆으로 한발, 한발 내딛어야 한다. 평지에서도 지팡이 없이는 걸을 수 없다. 마주치는 동네 사람들마다 '젊은 사람이 왜 벌써 저러냐'며 혀를 찼다.

정확한 병명을 진단받고 치료를 하려면 우선 MRI 촬영 등 검진이 필요한 상황. 그러나 기초생활수급비 58만원이 한 달 소득의 전부인 래원 씨에게 MRI는 '그림의 떡'이다.

보험료와 공과금을 내고, 병원에 다니려고 교통카드를 충전하면 생활비도 부족하다. 매달 5만원인 빌라 관리비조차 11개월간 내지 못해 집주인에게 빌고 빌어야 한다.

오늘도 잔혹한 아침이 래원 씨를 찾아왔다. 침대에서 내려오는 일부터 하루의 시련이 시작된다. 엉덩이를 살살 밀며 침대 밑으로 겨우 내려온 래원 씨. 갑자기 심한 허리 통증이 느껴진다. 옷장에 허리를 기댄 채 한참을 서 있었다. 지금 그가 기댈 수 있는 존재는 옷장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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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중 추돌 사고로 오른팔 거의 못 쓰는데 병든 부모님까지 돌보는 한경희 씨에게 2,733만원 전달

6중 추돌 사고로 7차례 대수술 받으며 20대 청춘 다 보내고 아르바이트 전전하며 병든 부모님 홀로 돌보는 한경희 씨(매일신문 12월 5일자 10면)에게 2천733만7천228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엔 ▷(주)삼이시스템 10만원 ▷선남의원(김홍구) 5만원 ▷전시형 10만원 ▷백미화 5만원 ▷안현숙 5만원 ▷진국성 5만원 ▷권규돈 3만원 ▷이병규 2만5천원 ▷신종욱 2만원 ▷최정원 1만5천원 ▷최지원 1만5천원 ▷권증남 1만원 ▷가지영 5천원 ▷김진혹 5천원 ▷이장윤 2천원 ▷'나노김동현' 7만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포항 지진으로 살고 있던 무허가주택 무너져 고치다 몸 다친 김칠만 씨에게 2,157만원 성금

사업 망한 뒤 무허가주택에서 지내고 있다 포항 지진으로 무너져 스스로 고치다 몸 다친 김칠만 씨(매일신문 12월 12일자 10면)에게 44개 단체, 116명의 독자가 2천157만9천135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에스엘(주) 200만원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20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주)대구은행 100만원 ▷(주)태원전기 50만원 ▷세무법인송정김천2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태린(김동수) 40만원 ▷최상규이비인후과 4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한미병원(신홍관) 30만원 ▷(주)동아티오엘 25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20만원 ▷대백선교문화재단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법무사김태원 20만원 ▷(주)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주)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10만원 ▷김영준치과의원 10만원 ▷느티나무한약국 10만원 ▷대구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최우진)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신성산업(김용환) 10만원 ▷우성약국(허창옥) 10만원 ▷이재만 대구지방세무사회 회장 10만원 ▷창성정공 (허만우) 10만원 ▷국제정밀(김용근) 5만원 ▷더좋은이름연구소(성병찬)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선진건설(주)(류시장) 5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 5만원 ▷우리들한의원(박원경)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참한우소갈비집(신동애) 5만원 ▷채성기약국(채성기)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국선도풍각수련원 3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일철) 3만원 ▷청산(우창하) 3만원 ▷사단법인대한민국힐링문화진흥원 1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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