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 시공간을 넘어서,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여행

지금 바다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을까(최영실/학이사/2021)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과 닿아 있고 지나간 것은 다가올 것의 예감이다. 나의 여행은 비가역적 시간을 수평 위에 점으로 기록하는 일이다."(작가 소개)

작가 소개가 독특하다. 바다와 어울리는 파란색 표지에 적힌 하얀 제목에 마음을 빼앗긴 것도 찰나, 흔한 이력도 소속도 아닌 문장으로 표현된 소개는 이 책과 작가를 이해하기에 충분하다. 작가의 과거, 미래, 현재에 공간의 확장을 넘어 공간의 초월을 느끼게 하는 여행 산문집이 성큼 다가온다. 이 책은 2021년 출간한 산문의 거울 8집으로 작가의 첫 여행 산문집이다. 외씨버선길, 부석사, 평창 대관령 등 국내 24곳, 캄보디아 프놈펜, 베트남 호치민 등 국외 10곳을 여행하고 그 후기를 '마냥', '붉은', '다시'로 나눠 인생의 여정같이 느껴진다.

여행지에 대한 간결한 설명에 깊은 서정이 잘 버무려져 있고 작가의 의도대로 여행의 시작과 끝이 다시 돌아와 처음과 이어진다. "고백하자면 나의 진정한 여행은 그곳에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는 작가의 말처럼.

책을 읽으며 당장 버스 노선이 없을지도 모를 그곳에 버스를 타고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친다. 내친김에 그녀가 소개하는 거제 지심도로 내달려 가본다. '아버지의 섬 그리고 동백 이야기' 거제 지심도, 붉은 동백에 추억이 서려 있는 그대로 작가의 유년 시절로 데려다줬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이 섬, 저 섬처럼 자유롭고 싶었던 아버지, 그러고 보면 모든 뭍이 그리움이 되는 섬을 좋아하는 나의 아버지를 꼭 닮았을까."(105쪽)

"희석된 시간에 묽어져 흐르는 메콩강이 평화로운 흙빛이다. 뼛조각이 화석돼 가라앉은 긴 시간, 핏빛 물길 되어 강물 저 깊은 곳으로 흐르고 있겠지. 사이공의 밤이 그렇게 흐르는 것처럼."(192쪽)

서로에게 타자화돼가는 도시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베트남 한국참전의 역사를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 '헬로우 미스사이공' 잊지 말라며 당부 인사 한다.

올 한 해를 보내며 홀연히 여행을 떠나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이유에 묶여 떠나지 못한 우리 모두에게 작가는 묻고 있다 "지금 바다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을까." 여행은 새로운 장소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기회이며, 역사 속의 우리 모습까지 확인할 수 있게 이끈다. 이것만으로도 떠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은가. 새해를 준비하는 지금, 익숙한 나와 결별하고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당장 버스 노선이 무슨 문제일까? 그런 곳으로 떠나고 싶은 누군가에게 이 책을 선물하련다.

김창희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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