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웰컴투 삼달리’, 지친 도시인들을 위한 힐링 드라마

JTBC 토일드라마 ‘웰컴투 삼달리’, 신혜선과 지창욱이 전하는 위로

JTBC 토일드라마 '웰컴투 삼달리' 포스터. JTBC 제공
JTBC 토일드라마 '웰컴투 삼달리' 포스터. JTBC 제공

도파민 과다의 콘텐츠 홍수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그 자극의 짜릿함에 빠져들다가 점점 둔감해지고 이내 피로해진다. 그래서일까. 최근에는 정반대로 잔잔하고 편안하게 마음을 건드리는 드라마들이 주목받고 있다. JTBC 토일드라마 '웰컴투 삼달리'가 그런 드라마다.

◆버티는 삶에 지쳐버린 현대인들에게

예술은 사회의 결핍을 반영한다고 하던가. 성공하는 것만이 삶의 유일한 목표처럼 달려가는 사회에서 오히려 정반대의(혹은 대안적인) 삶을 그려나가는 작품들은 이제 하나의 계보를 갖게 됐다. 뭐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도시의 삶에 지쳐 잠시 고향으로 내려온 청춘이 그 곳에서 직접 키운 농작물로 한끼 한끼를 챙겨먹으며 삶의 활력을 찾는 이야기를 담았던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그렇고, 스펙이 없다는 이유로 '쌈마이' 취급하는 세상의 틈바구니에서 차라리 '마이웨이'를 가겠다고 '쌈'을 걸어보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임상춘 작가의 '쌈, 마이웨이'가 그러하며, 치과의사인 차도녀가 바닷가 마을에 내려와 그 곳에서 도시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만능 백수'를 만나 사랑은 물론이고 삶을 위로받는 이야기를 다룬 '갯마을 차차차'가 그렇다. 이제 이 계보 위에 또 한 작품이 추가됐다. JTBC 토일드라마 '웰컴투 삼달리'가 그것이다.

드라마는 한 편의 우화 같은 이 작품의 성격을 조용필(지창욱)과 조삼달(신혜선)의 탄생과 성장 과정 등을 통해 제시한다. 같은 날 제주 삼달리에서 태어났지만 두 사람은 성향이 사뭇 다르다. 조삼달이 개천 같은 제주를 벗어나 용이 되겠다는 포부를 가졌다면, 조용필은 그 개천이 너무나 소중하다 여기며 그곳에서 살겠다고 말한다. 그러니 어려서는 둘도 없는 절친으로 자라났고 커서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됐지만, 꿈을 향해 달려가는 조삼달과 끝내 헤어진 조용필은 고향 제주로 돌아와 그곳 지킴이로 살아간다. 그렇게 조삼달은 조은혜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패션 사진작가의 꿈을 이루지만, 남자친구 천충기(한은성)와 불륜을 저지른 퍼스트 어시스턴트 방은주(조윤서)의 거짓 갑질 폭로로 하루 아침에 추락한다. 노력으로 모든 걸 얻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빈 껍데기'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금세 드러난다.

논란에 휘말리자 15년 간 함께 했던 패션잡지 편집자도, 또 10년이나 함께 일하며 꼭 사진은 그녀에게 찍겠다고 했던 연예인들도 모두 등을 돌린다. 15년 세월이 누적된 사진전도 취소된 데다 언론은 심지어 언니와 동생까지 집요하게 신상을 파헤친다. 결국 세 자매는 도망치듯 제주도 고향으로 내려온다. 꿈이라 포장된 성공에 대한 욕망을 좇고, 그것이 진짜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삶. 이건 어쩌면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의 모습 그대로일 게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런 생존의 버텨내는 삶이 과연 진짜 소중한 삶인가를 묻는다. 아등바등 살아가다 지친 이들에게 더 이상 버티기 힘들 때는 숨을 고르라고, 해녀들의 지혜를 통해 전한다. "해녀들을 교육할 때 가장 강조하는 말이 있다.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라고. 평온해 보이지만 위험천만한 바다 속에서 당신의 숨만큼만 버티라고. 그리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땐 시작했던 물 위로 올라와 숨을 고르라고."

JTBC 토일드라마 '웰컴투 삼달리' 포스터. JTBC 제공
JTBC 토일드라마 '웰컴투 삼달리' 포스터. JTBC 제공

◆'동백꽃 필 무렵' 차영훈 감독과 '하이바이 마마' 권혜주 작가의 만남

이 작품을 연출한 차영훈 감독은 우리에게는 '동백꽃 필 무렵'으로 잘 알려진 감독이다. '동백꽃 필 무렵'이 연출로 보여줬던 시골의 아름다운 정경과 특유의 정서들은 그래서 '웰컴투 삼달리'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특히 인물들 하나하나를 생생한 개성과 따뜻한 온기로 담아내는 그 연출의 시선은 '동백꽃 필 무렵'의 옹산이라는 가상의 마을과 '웰컴투 삼달리'의 삼달리가 겹쳐보이는 느낌을 줄 정도로 여전하다. 따뜻한 시골의 인심이 묻어나는 이야기에 '까불이' 같은 미스테리한 존재를 집어넣어 스릴러적 색깔을 더해넣었던 '동백꽃 필 무렵'처럼, '웰컴투 삼달리' 역시 삼달리 사람들의 따듯한 이야기와 더불어 남달리 개발지구를 둘러싼 갈등이나 조삼달을 갑질 상사로 둔갑시킨 방은주의 거짓 폭로 등의 뾰족한 극적 서사들도 빼놓지 않는다. 삼달리라는 조용한 마을과, 이와 대비되는 치열한 도시를 병치시키고 그 대결구도를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은 장르적으로도 코미디와 휴먼드라마를 오가는 그 균형잡힌 연출에 의해 효과를 낸다.

한편 이 작품은 우리에게 '고백부부', '하이바이 마마'로 잘 알려져 있는 권혜주 작가가 집필했다. 코미디를 잘 그려내고, 무엇보다 따뜻한 인간애를 개성적인 캐릭터들을 살려 표현하는데 능숙한 작가다. 감정을 이끌어내고 증폭시키는 대사에도 능해, 눈물 쏙 빼게 만드는 대사들의 배치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끈다. '웰컴투 삼달리'에서도 동네 절친인 왕경태(이재원)가 이렇게라도 망해서 돌아와 볼 수 있게 된 게 좋다고 했던 말이 마치 "망해서 돌아와 잘됐다"는 뜻으로 오해를 사게 만든 것에 대해 왕경태가 미안하다 하는 대목은 시청자들을 울컥하게 만든 장면이다.

"아 나는 그냥 보고 싶었단 말이야. 보고 싶었는데 그냥 네가 와 줘서 기분 좋단 소리였는데 어? 네가 뭐 망해 와서 좋았다는 게 아니라. 네가 망하길 내가 왜 바라냐, 어? 네 기사 같은 거 볼 때마다 내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데 내가 왜 그러겠냐? 아, 물론 네가 뭐 점점 딴 세상 사람 같아서 서운한 적도 있었어. 근데 야 그래도 우리가 얼마나 매일 응원했는데. 우리가 못한 거 넌 다 해냈잖아. 너는 우리 자랑이고 우리 자부심이야. 근데 내가 왜 내가 네가 망하길 바라냐? 나 안 그래." 열심히 노력했지만 어쩌다 망하게 된 아픔을 경험해본 이들이라면 이 대사 한 마디가 주는 강렬한 여운을 실감할 수밖에 없을 게다.

JTBC 토일드라마 '웰컴투 삼달리' 포스터. JTBC 제공
JTBC 토일드라마 '웰컴투 삼달리' 포스터. JTBC 제공

◆도파민보다는 힐링과 위로가 필요해

사실 최근 K드라마는 그 어느 때보다 자극과 수위가 높아졌다. OTT를 통해 장르물들이 쏟아져 나왔고, 선택적 시청으로 자극과 수위에서 자유로워진 플랫폼의 특성 때문에 19금 콘텐츠들도 폭증했다. 여기에 OTT 시대 이전에는 보편적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고 시청률을 목표로 했던 지상파, 케이블, 종편조차 19금 콘텐츠들을 편성하고 또 성공 사례를 내기 시작했다. 무려 23.7%(닐슨 코리아)의 최고 시청률을 낸 'SKY캐슬'이나 28.3%의 '부부의 세계' 같은 작품들이 그 문을 열었다면, 시즌2까지 방영되어 최고 시청률 21%를 낸 '모범택시2'나 28.8% 시청률을 기록했던 김순옥 작가의 '펜트하우스'가 변화된 환경을 보여주는 지표들이 됐다.

하지만 자극과 수위를 높여 효과를 보던 이른바 도파민 드라마들이 연달아 힘을 발휘하는 건 아니라는 게 최근 결과로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순옥 작가의 460억 야심작 '7인의 탈출'의 초라한 실패다. 이 작품은 고작 7.7%의 최고 시청률로 이렇다할 화제성도 만들지 못한 채 대중들의 기억에서 지워져버렸다.

여기저기 틀기만 하면 피가 철철 흐르는 도파민 과다의 드라마들 속에서 시청자들도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웰컴투 삼달리'가 보여주는 시청률 수직상승은 예사롭지 않은 변화로 보인다. 5.1%로 시작한 드라마는 매회 상승하더니 6회에 8.2%까지 치솟았다. 대단한 자극과 수위가 아니라 편안하게 보면서 힐링과 위로를 전하는 작품에 시청자들이 마음을 열고 있다는 반증이다.

물론 이 흐름이 얼마나 계속 이어질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자극으로 달리는 작품들이 쏟아져 나올수록 그 반대급부로서 정반대 계열의 작품들 역시 주목 받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마치 고도화된 경쟁사회의 치열함은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그럴수록 정반대의 힐링과 위로에 대한 갈증 또한 커지는 현실을, 이들 드라마들의 작용-반작용이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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