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리버드라면 이른 아침 서울지하철 6호선이나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무언가에 골몰하는 한 중년의 남성을 봤을지 모르겠다. 주인공은 중국 시장 특화 자산운용사를 이끌고 있는 이규엽 한국대성자산운용 대표. 그는 운용 펀드의 수익률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능력을 발휘해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금리 같은 외적 변수에 흔들리기보다 대한민국만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이 대표의 언급에서 한국대성자산운용의 성장 노하우와 발전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이 대표는 고향의 젊은이들에게는 "발자국을 남기면 언젠가 길이 될 수도 있다"라고 창업을 권유하며 응원했다.
-회사를 소개해 달라.
▶중국 시장 특화 자산운용사다. 2016년 11월 설립했다. 갈수록 중국이나 동남아 등을 대상으로 한 해외 투자기회가 많아지고 있다. 국내외 공동 사모펀드를 각각 이해도가 높은 곳에 투자한다면 양국이 개별적으로 투자하는 것에 비해 위험을 줄이고, 수익을 높이게 된다. 해외투자자와 공동 사모펀드를 결성해 SOC‧M&A‧벤처 분야 등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이 쪽에 뛰어든 계기는?
▶1961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82 달러였다. 필리핀의 1/2, 태국의 1/3 수준이었다. 지난해 3만3천 달러로 60년간 약 400배 성장했다. G7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제 강국이 됐으니 대단하지 않나. 과거 가발이 아니라 이제 디지털이 주요 수출 품목이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가 향후 우리 경제 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우리나라 무역흑자의 약 85%가 중국과의 무역에서 나온다. 국제금융센터의 발표에 따르면 중국의 향후 5년간의 GDP 증가분은 미국의 1.5배 된다. 여전히 중국은 세계 최대시장이라고 본다.
-난관이 없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극복했나?
▶날짜를 잊지 못하겠다. 2015년 11월 21일 중국 정부기업 대표가 대구 수성알파시티를 방문해 투자하기로 대구경북경제자유청장(당시 도건우 청장)과 MOU를 체결했다. 하지만 사드 이슈가 터지면서 막히게 돼 아쉬웠다. 이제 이른바 '한한령(限韓令)'을 한류 국제화로 맞서 중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가격과 기술력이 월등한 임플란트만 하더라도 한국이 중국 시장의 58%를 점유하고 있다. 정치적 이슈와는 별도로 경제 이익이 더해지면 서로의 필요에 따라 움직이게 돼 있다.
-경영 철학이 있다면?
▶도전 정신이다. 성공할 확률이 10% 밖에 되지 않아도 10번 도전하면 확률이 높아진다.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길목이다. 저는 회사란 Value-add라고 생각한다. 알버트 슈바이처는 잘 나가는 지도층 신분을 던지고, 아프리카에서 병원을 개설해 인류애를 실천했다. 쓸모 있는 회사가 되자! 그래야 사회에, 국가에, 세계에 도움이 된다.
-단기 계획은?
▶백야 피부미용의료기기 시제품 완성과 중국 파트너와의 합자회사 설립이다. 기본적으로는 한중 공동사모펀드 등 협력 플랫폼을 설립해 양국의 투자자와 프로젝트를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지향해 왔다. 참여하는 기업에게 관련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서로 신뢰하는 교류 환경을 조성하는 데 충실하겠다.
-장기 비전을 듣고 싶다.
▶앞으로 세계 최고 PE로 성장하는 게 꿈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이 대표의 겸손함과 달리 한국대성자산운용은 경이적인 기록을 써나가고 있다. 지난 2020년 6월 18일 설정한 공모주펀드 55억 원의 누적수익률은 지난 1일 현재 104.52%, 2020년 12월 7일 설정한 코스닥벤처펀드 24억 원의 누적수익률은 131.78%로 치솟았다. 증권시장 침체기에 유례를 찾기 힘든 사례다. 금융감독원 기업공시국 근무 경력이 '매의 눈'을 갖게 된 토대가 됐다. 또 이 대표의 중국 경력과 중국인 직원의 저력이 바탕이다. 실제로 이 대표는 금융감독원 재직 중 중국정법대 법학박사, 지난해 베이징대학에서 중외정치제도연구로 박사를 취득하는 등 약 10년 동안 중국 경험 속에 인맥(꽌시‧關係)을 쌓고 탄탄한 내공을 다졌다. 현재 중한생명보험 사외이사와 중국 산동성 웨이하이중재위원회 중재원을 맡고 있는 중국(通)이다.
-새해 한국 경제를 진단한다면? 그리고 활로는?
▶독일과 한국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국가이다. 독일이 지금 어려워지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긴장해야 된다. 급속전기차충전기‧디지털 의료기기 산업 등 신기술 영역의 대외 진출 성과가 새해 한국 경제의 관건이다. 미국의 금리 인하 등을 주목하고 있는 데 우리로선 우리만의 경쟁력을 가진 IT, 뷰티‧헬쓰 같은 것에 집중해야 한다. 외부 요인은 한계가 있는 게 아닌가.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미국 금리, 유가를 콘트롤할 수는 없다. 세계에 먹혀들 내재적 실력과 기술 수준을 높이는 게 급선무다.
-고향에는 자주 찾나?
▶대구 대봉초 모임에는 대구에 내려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약 30명이 매월 만나는 데 1년에 5차례 이상 얼굴을 본다. 비즈니스가 아닌 정으로 보고 있으니 편안하고, 그냥 좋으니까…. 금융감독원 베이징대표처 근무 시절이던 2015년 5월 초 연휴 기간 중 대봉초 동기 24명을 초청해 2박3일 일정으로 베이징 투어를 한 게 기억에 난다.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하하.
-자산운용사 대표로서의 일과가 궁금하다.
▶매일 오전 5시면 일어난다. 서울 6호선 지하철을 타고 출근한다. 1시간 동안 중요한 일을 수행한다. 7시 30분 쯤 회사 근처에 도착해 여의도의 한 증권회사 도서관 카페에서 신문 스크랩을 하고 워밍업을 마친다.
-주식 투자를 하는 이들에게 팁을 준다면.
▶산업적으로 뿐 아니라 AI‧디지털산업 등으로 상징되는 기업 환경과 시장이 급변해가고 있다. 미래 산업에 대한 도전과 지속적인 기술 혁신을 시현하는 기업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하는 게 중요하다. 미래산업 철학과 도전 정신‧아이디어‧기술력을 가진 기업에 투자하는 게 기본 원칙이 될 수 있다.
-고향의 후배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들려 달라.
▶연공서열식 임금체계는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나이든 세대가 젊은 세대를 착취하는 시스템이다. 그동안 젊은 층이 용인한 이유는 자신들도 나이가 들면 이런 시스템 아래 보상 받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미래에는 그대로 유지되기 어려울 테니 세대 간 갈등이 심하다. 인생에 한번은 창업하라고 권하고 싶다. 아스팔트와 같은 대기업 직원이나 공무원에 머무르는 대신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서 발자국을 남기면 어느 날엔가 길이 될지도 모른다. 청춘이라면 돈보다 경험을 쌓아라. 그리고 경청하는 자세, 공감 능력을 기르기 바란다.
◆이규엽 대표 누구

오늘의 이규엽 대표를 만든 9할은 어머니다. 동화풍의 에세이집 '세계 최초의 기억에서' 그는 "하얀 보자기에 덮인 채 어머니 품에 엎였던 장면"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병환이 깊어 입원하기 3일 전 마지막 힘을 다해 요양사와 함께 된장·간장을 담그고 "숙제를 다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돌아가시고 난 후 매일 조금씩 먹으며 시공을 초월한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다고 돌아봤다. 또 다른 사모곡으로는 '어머니 함께 햇볕 쪼여요!'가 있다. 이 대표와 앞을 못 보는 노모와의 소소한 일상을 절절한 그리움으로 채색했다.
남다른 영혼의 소유자다. 직원의 모교에 "좋은 인재를 보내줘 고맙다"고 장학금을 전달해왔다. 에세이집에는 다친 비둘기를 공원에서 발견한 뒤 사무실에서 치료해 날려 보낸 이야기도 나온다. 또 1997년부터 지구환경 보존과 생명존중 사상에 영향을 받아 채식주의자가 됐다. 새해 첫날인 1일 한국채식연합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주최한 채식 캠페인에서 '비건(VEGAN) 채식하고 복 받으세요' 피켓을 들었고 선언문을 낭독했다.

대구 대륜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법학 학사‧석사를 취득했다. 1990년 조흥은행(현 신한은행)에 입행해 10년 일한 뒤 2000년 금융감독원에 경력직으로 입문했다. 기업공시국 수석조사역 등을 지냈고, 부국장 조사역으로 사직한 뒤 제주대 법과정책연구원 한중금융연구센터장을 역임했다. 한중법학회 부회장‧중국자본시장연구회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경제부총리 표창과 금융감독위원장상‧금융감독원장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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