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터뷰] 대덕교통 버스기사 이광용 씨 "씽씽 달리는 버스처럼, 올 한해 쾌속 하십시오"

백화점 셔틀 운전 경험 친절한 운행…입사 4년 만에 친절 기사로 뽑혀
'인형 버스' 민원 들어와 모두 철거
"살갑게 인사 승객들도 진심 알아줘, 운행 후 휴식시간 부족 개선됐으면"

대덕교통 이광용 버스 기사는 836을 6년 째 운행 중이다.
대덕교통 이광용 버스 기사는 836을 6년 째 운행 중이다.

승객 한명이 기사에게 다가가 휴대폰을 받는다. 충전을 맡겨 놨던 듯 감사하다고 연신 인사를 한다. 어린이 승객이 버스에 오르자 기사는 이름을 부르며 먼저 알은체를 한다. 그러자 아이도 방긋 웃으며 하루 일과를 늘여 놓는다. 제일 앞자리에 앉은 승객은 장바구니 속에서 음료수 하나를 꺼내 기사에게 건넨다. 기사와 승객은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운다.

버스가 원래 이랬던가. 기자는 의아하다. 마을버스 같기도, 동네 사랑방 같기도 한 이 버스가 궁금해진다. 그때 버스는 동구 경안로에 위치한 종점에 도착했다.

-승객들과 이렇게 사이가 좋아도 되나.(웃음) 기사님의 운행하는 모습을 인상 깊게 봤다. 기사님 소개 부탁한다.

▶이름은 이광용, 대덕교통 836 버스 기사다. 군대 시절 대형차를 운행했고 학교 복학하기 전까지는 아르바이트로 택시 운전을 했다. 그렇게 운전 쪽으로 빠지게 된 것 같다. 그러다 화물차 잠깐 하고 백화점 셔틀차 운행을 하다가 2000년도에 버스 회사에 입사하면서 버스 운전을 처음 시작했다. 시내버스는 사람을 운송하는 직업이다 보니 무조건 경력직을 뽑는다. 이전까지의 내 경력이 버스 회사 입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백화점 셔틀 버스 경력이 눈에 띈다. 그래서 서비스 정신이 이렇게 투철한건가

▶그것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백화점 셔틀 운전할 때는 정장을 입고 다녔다. 그리고 아침마다 서비스 교육도 받았다. 하지만 그 일을 그만두고 버스 회사에 입사를 해보니 여기는 그냥 기름쟁이 느낌이더라. 옷도 시커먼 작업복을 줬었다. 그래서 그때 나는 백화점 일하듯이 넥타이 메고 정장을 입고 일했다. 처음에는 쟤 미쳤다고 손가락질도 많이 당했다. 하지만 그렇게 친절하게 운행을 하다 보니 4년 만에 친절기사로 뽑히고 대구시 표창장도 받았다.

대덕교통 이광용 버스 기사가 마이크로 승객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대덕교통 이광용 버스 기사가 마이크로 승객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그러고보니 기사님 옷이 유난히 눈에 띈다.

▶이 옷은 아무나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다. 친절 기사 몇 명에게만 지급되는 옷이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겉옷은 내가 구입한 정장 자켓이다. 승객들에게 깔끔하게 보이고 싶어서 직접 준비했다. 자랑을 좀 하자면 20년 무사고에 친절상은 매년 받는다.(웃음) 친절기사로 뽑히면 매년 포상금을 받는데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매달 10만원이 더 생기더라. 그때 생각했다. 이 돈을 시민들께 어떻게 돌려 드리지. 그렇게 인형 버스가 탄생했다.

-안 그래도 기사님을 알아보니 친절기사 말고도 인형 버스 기사님으로도 유명하더라.

▶2021년 버스 내부를 인형으로 꾸몄었다. 그래서 꽤 유명해졌다. 타 지역에서도 많이 보러 왔으니 말이다. 봄 다가올 때는 벚꽃으로 꾸몄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는 산타 복장을 하고 직접 준비한 간식 꾸러미를 승객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참 재밌었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사비를 들여 왜 했겠는가. 그리고 승객들이 매일 타는 버스를 조금 재밌게 이용하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해 놓으면 승객들도 나에게 말 한번 더 걸테고, 그러다보면 버스 분위기가 좋아질 것 같았다.

대덕교통 이광용 버스 기사는
대덕교통 이광용 버스 기사는 '대구 인형 버스' 기사로도 유명했다. 2021년 부터 2023년까지 운행한 인형 버스는 시민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오늘 836을 탔을 때는 인형이 없더라. 없어진건가.

▶칭찬 민원 9개가 들어와도 불편하다는 민원 1개가 들어오면 회사 입장에서는 문제가 된다. 일부 민원이 들어와서 모두 철거하게 됐다. 인형은 당근 마켓에 다 팔았다. 하지만 올 겨울에 하려고 준비했던 산타 장식품은 도저히 못 버리겠더라. 언젠가 사용할 날이 오리라 믿는다.

-버스 기사를 오래하다 보면 손님들과 함께 세월을 보낼 것 같다.

▶836은 2018년 5월 15일부터 운행했다. 벌써 6년이 됐다. 한 버스를 오래하다 보면 매번 타는 승객이 정해져있다. 그러다보니 승객이 나이 들어 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항상 시민 운동장에서 타는 모자(母子)가 있는데 아이가 유치원 때부터 함께 탔었다. 그러다 애가 커가며 엄마는 사라지고 아이 혼자 버스를 타더라.

아이 혼자 어디 갈 수 있는 나이가 됐다는 말이다. 그리고 한 부부는 아침에는 남편과 아내 따로 출근했다 퇴근은 같이한다. 이 부부와도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아. 사실 나는 836 버스기사로말고 머리 긴 기사로도 유명하다. 기자님도 처음에 나를 여자인 줄 알았다고 했지 않나

대덕교통 이광용 기사가 브이를 내보이고 있다. 836을 타고, 이광용 기사와 마주친다면 환하게 인사를 해보라. 그는 더 환한 웃음으로 화답을 할 것이다.
대덕교통 이광용 기사가 브이를 내보이고 있다. 836을 타고, 이광용 기사와 마주친다면 환하게 인사를 해보라. 그는 더 환한 웃음으로 화답을 할 것이다.

-처음에 마스크를 끼고 계시길래 여자분인줄 알았다. 민망하실까봐 이야기 안 꺼냈는데 먼저 꺼내주셔서 감사하다

▶하하. 그랬었나. 머리 기르는 것도 일종의 퍼포먼스다. 머리를 기르니 여자 기사님인줄 알고 먼저 이야기를 걸어오는 사람들이 꽤 많다. 신기하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굵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면 깜짝 놀라신다. 그냥 나는 승객들이 나로 인해 즐거움을 느끼는게 즐겁다. 예전에 이런 일도 있었다. 승강장 아닌 곳에서 세워달라고 하길래 그냥 지나쳤는데 버스회사로 민원이 들어왔다. 아줌마 기사가 그냥 자기를 보고 지나쳤다고. 그때 직원들이랑 많이 웃었다.

-그런 진심이 승객들에게도 와닿은 것 같다. 아까 보니 음료수며 간식이며 승객들이 많이 주시는 것 같더라. 인기 기사님인가.

▶쑥스럽다. 승객에게 살갑게 인사하고, 가실 때 잘 가시라고 하고, 장 봐서 오면 장 많이 봤네 말을 걸다 보니 승객들도 그 마음을 아는 것 같다. 약초 캐러 다니시는 영감님이 계시는데 산에서 캔걸 다 갖다 주신다. 최근 승객 한 분은 저 잘되라고 절에 가서 촛불도 켜주셨단다. 참 감사하다.

-유튜브도 하시던데, 이 또한 그런 의미로 하시는건가

▶처음에 시작은 그냥 기록용으로 했는데 구독자가 너무 많이 늘어 버렸다. (웃음) 버스에 달린 cctv 말고 내 사비로 5개를 더 달았었다. 승객이 내리고 타는걸 조금 더 자세히 봐야 안전하겠다 싶어서였다. 그러다 그 cctv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게 됐다. 유튜브에 그렇게 자연스레 입문한 것 같다.

-유튜브 댓글들을 보니 '버스에 대해 많이 알고간다' '재밌다'라는 의견들이 많더라.

▶버스에 대한 정보도 많이 올린다. 막차 없어졌을 때는 그에 대한 내용도 올렸고, 입사 채용정보도 올렸다. 버스 유튜버이다 보니 버스 기사들이 관심을 갖더라. 며칠 있다가는 버스 요금 인상되는 내용을 올리려고 한다.

대덕교통 이광용 기사의 유튜브에 기자도 출연했다. 이광용 기사가 운행하는 836 버스에는 다른버스보다 cctv가 5개 더 달렸다.
대덕교통 이광용 기사의 유튜브에 기자도 출연했다. 이광용 기사가 운행하는 836 버스에는 다른버스보다 cctv가 5개 더 달렸다.

-버스 운행에 유튜브에 쉬실 날이 없겠다. 버스 기사하시면서 힘든일도 많을 것 같다.

▶처우 부분이 조금 개선 됐으면 좋겠다. 내가 입사했을 때. 그러니 24년 전부터 변치 않고 똑같은 게 있다. 바로 휴식시간 이다. 1회차 운행 마치고 오면 대기시간이 20분, 밥시간은 7분을 준다. 그마저 낮에는 식사시간 7분을 뺀다. 그러니 기사들은 식당에 들어가 밥을 거의 마시다시피 한다.

하나 더 말하자면 신입 버스기사들을 위해 개선됐으면 하는 부분이다. 처음에 말했다시피 버스 기사를 하려면 대형운전 경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구 기사들은 어디 경력 쌓을 곳이 없다. 그래서 경기도에 가서 관광이나 통근차를 하다 내려오는 친구들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마을버스가 도입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다른 지역에는 마을버스에서 경력을 쌓아서 시내 버스로 넘어오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버스기사 구하기도 쉬워지지 않을까 싶다. 기본적인 고충은 장시간 앉아 있으니 허리 질환이나 목디스크는 물론. 물을 잘 안마시는 버릇도 생겼다. 한번 운행 시작하면 4시간은 내리 앉아 있어야 하는데 화장실 갈 시간이 어딨겠냐.

기사는 다시 달린다. 승객을 싣고, 나누는 이야기를 싣고, 이른 아침에도 저녁에도 달린다. 그리고 그는 대구 시민들에게 버스기사 다운 새해 인사를 전했다. "우리 대구 시민들! 씽씽 나가는 이 버스처럼 올 한해 하시는 일 모두 쾌속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제 자리에서 우리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날마다 운행하겠습니다. 혹시 836 타게 되시면 우리 반갑게 인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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