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은행, 26년만에 지방 본점 시중은행…5대 은행 독주 지각 변동 예고

시중은행 조건 충족 지방은행, 대구은행이 유일
지방은행 디스카운트 해소로 은행 간 경쟁 촉진
금융영역 확대하고 디지털 중심으로 경쟁력 강화

왼쪽부터 대구은행 남일동 본점, 1985년 준공 당시 수성동 본점, 최근 수성동 본점 전경 사진. 대구은행 제공
왼쪽부터 대구은행 남일동 본점, 1985년 준공 당시 수성동 본점, 최근 수성동 본점 전경 사진. 대구은행 제공

1967년 국내 1호 지방은행으로 시작한 대구은행이 설립 57년 만에 시중은행 전환을 앞두고 있다. 올해 1분기(1~3월) 안에 시중은행 전환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이번에 시중은행 전환에 성공하면 1992년 평화은행 이후 32년 만에 탄생하는 시중은행이 된다. 국내 시중은행은 국민·신한·우리·하나·제일·한국씨티은행에 더해 7개로 늘어나고, 지방은행은 경남·광주·부산·전북·제주은행 등 5개만 남는다.

1998년 대동은행(대구)·동남은행(부산)이 사라진 뒤 26년 만에 지방에 본점을 둔 시중은행이 등장한다는 의미도 있다.

금융당국은 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 등 5대 은행이 독주 중인 국내 은행업계 구조에 변화를 일으킬 '신규 플레이어'가 출현하길 기대한다. 대구은행이 미꾸라지 떼 사이에서 활동성을 끌어올리는 '메기'가 될지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상황이다.

◆ 대구은행, 은행산업 '메기' 될까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에 불이 붙은 건 지난해 7월 금융당국의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방안' 발표가 기점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저축은행의 지방은행 전환,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을 적극적으로 허용해 은행권 경쟁을 촉진한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2월 15일 비상경제 민생회의에서 금융·통신 분야 과점 해소와 경쟁 촉진 대책을 주문하자 같은 해 3월 은행권 영업·경영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논의한 결과다.

금융당국은 은행권 경쟁 촉진·구조 개선 방안을 설명하면서 '지방은행인 대구은행이 시중은행으로 전환할 의향이 있는 상황이며, 대구은행이 시중은행으로 전환한다면 30여년 만에 시중은행에 진입하는 동시에 지역에 본점을 둔 시중은행이 출현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부연했다.

이런 설명이 덧붙은 건 현재 시중은행 전환 조건을 충족하는 지방은행이 대구은행뿐이기 때문이다. 은행법에 따른 시중은행 인가 요건은 ▷자본금 1천억원 이상 보유 ▷동일인 보유 지분율 10% 이하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 보유 지분율 4% 이하 등이다.

최근 공시 자료를 보면 대구은행 자본금은 7천6억원으로 기준치를 훨씬 웃돈다. 대구은행 지분은 지주사가 100% 보유 중이며 DGB금융지주 최대 주주는 국민연금공단(8.07%)이다. DGB금융지주 주주 가운데 비금융주력자 지분은 삼성생명 3.35%다.

대구은행과 지방은행 인지도 1, 2위를 다투는 BNK부산은행의 경우 자본금은 지난해 3분기 기준 9천774억원으로 충분하지만 BNK금융지주 최대 주주가 부산롯데호텔 포함 롯데 계열사 7곳(10.42%)으로 산업자본인 데다 동일인 지분율 기준치를 넘어서는 상태다.

◆ "디스카운트 해소로 경쟁력 강화"

금융당국 발표가 나오자 대구은행은 곧바로 시중은행 전환 추진을 선언했다. 대구은행은 작년 7월 6일 기자회견을 열고 "3월 초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TF에서 은행권 경쟁 촉진 방안의 하나로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인가를 제시함에 따라 즉시 타당성 검토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대구은행이 시중은행 전환에 적극적인 이유는 영업 환경 차이 때문이다. 1967년 '1도 1은행' 정책에 따라 지방 금융지원을 목적으로 설립한 지방은행은 시중은행과 달리 영업구역에 제한을 받는다.

처음 '은행 소재 도(道)'로 묶였던 지방은행 영업구역은 조금씩 규제를 완화해 광역시·특별시, 경기도까지 넓어졌다. 대구은행 정관상 영업구역은 서울과 각 광역시, 특별시, 경기도, 경상도, 국외다. 시중은행 인가를 받으면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로 진출이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대구은행은 "시중은행급 재무 구조와 신용도를 갖추고 있는데도 지방은행이라는 이유로 불합리한 디스카운트를 받아 왔고 이를 해소할 필요성이 있다"고도 했다. '지방은행 디스카운트'로 기업 가치가 저평가돼 조달 비용을 더 부담하고 있다는 것.

대구은행 연간 총대출 규모는 51조6천억원으로 시중은행인 제일은행(46조8천억원)보다 많고, 신용등급은 신한·국민은행과 같은 'AAA'다. 그러나 선순위채권을 시중은행보다 4bp(1bp=0.01%포인트), 후순위채권과 신종자본증권은 21~25bp 높은 금리로 발행한다.

중소기업 대출비율도 시중은행 45% 이상·지방은행 60% 이상으로 차등 적용해 왔으나 이는 지난해 7월 제도 개편에 따라 50%로 같아졌다.

역대 대구은행 CI. 대구은행 제공
역대 대구은행 CI. 대구은행 제공

◆ 시중은행 전환, '사과'일까 '독'일까

대구은행은 시중은행으로 전환하면 조달 비용을 줄여 소비자 금리 부담을 낮출 수 있다고 본다. 영업구역 제한을 벗어나 전국에 금융서비스를 지원하고 은행 간 경쟁을 촉진하면 이로 인한 실익이 소비자 몫으로 돌아갈 거란 설명이다.

반면 지역 소비자 입장에서는 입지가 좁아질 거란 우려도 나온다. 통상 지방은행과 시중은행은 대출을 내주는 과정에 대상자 신용을 평가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지방은행은 지역 기업과 장기적으로 밀착 관계를 유지하면서 비재무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신용평가에 반영한다. 이른바 '관계 금융'이다. 반면 시중은행은 전국 차주를 대상으로 신용을 평가해 대출을 결정해야 하는 만큼 일관성 있는 기준을 따라야 하고, 기업별·지역별 특성을 일일이 고려하기는 어렵다.

한 벤처창업 투자회사 관계자는 "시중은행으로 전환하면 시중은행이라는 지위를 명분 삼아 상대적으로 부실 위험이 높은 지역 중소기업 대출 규모를 축소할 수 있고, 지역 중소기업이 더 힘든 상황에 놓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업 대상이 전국구로 넓어지면 비용 효율성을 고려해 인구 밀집도가 낮은 지역을 대상으로는 서비스 제공을 축소할 가능성이 커지는 점도 우려할 만한 부분이다.

대구은행은 시중은행 전환으로 얻는 이익을 지역에 환원한다는 방침이다. 전국 영업을 통해 창출한 이익과 자금을 지역에 재투자하고, 대형 시중은행에서 소외되는 중신용등급 기업·개인사업자를 지원하는 등 '지역 상생' 기조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대구은행 관계자는 "시중은행으로 전환해도 대구은행 뿌리가 대구경북 지역인 건 변함없는 사실이며 본점 소재지를 대구에 유지하는 만큼 대구은행 성장이 지역 성장으로 귀결될 것"이라며 "전국으로 확장된 은행 네트워크를 활용해 지역기업 성장을 도우며, 지역 주력산업과 대구경북 신공항 건설 등 정책사업에 대한 금융지원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약점 강화"

대구은행은 수도권 영업망 확대를 중심으로 시중은행 전환을 준비해 왔다. 직원들에게는 '시중은행다운 자세'를 재차 강조하고 있다. 전국 규모의 시중은행 구성원에 걸맞게 시야와 사고 폭을 넓히자는 주문이다.

은행 구성원들은 시중은행 전환을 '내용'이 아닌 '규모' 변화로 바라본다. 시중은행 인가가 은행 업무나 서비스 내용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고, 영업 대상이 확대되는 만큼 사업 규모·단위가 커질 거라는 것.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기업 가치를 높이면 장기적으로 커머셜 뱅킹(CB)은 물론 자금조달 중개 등 인베스트먼트 뱅킹(IB) 부문까지 경쟁력을 갖출 거라 기대하고 있다. DGB그룹이 하이투자증권, 하이신용정보 등으로 계열사를 넓혀 온 만큼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임원급에는 은행을 전국구로 키워갈 리더십이 요구되는 가운데 자체 구축한 인재 육성 프로그램이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DGB그룹은 부점장 이상 직급별 임원 후보를 선발·관리하는 'HIPO(High Potential) 프로그램'을 구축해 놨다. 은행·비은행 부문을 아우를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표로 멀티 비즈니스, 리스크 관리, 글로벌 역량 함양 등 교육을 제공한다.

황병우 행장은 "대구은행은 중소기업 금융을 강점으로 성장했다. 이를 바탕으로 금융 영역을 넓혀 노하우를 더욱 발전시킬 것"이라며 "시중은행과 비교하면 인적·물적 네트워크가 부족한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약점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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