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경북 혁신도시 10년] "단 2개 노선 버스, 기다리다 지쳐" 통근버스 운영할 수밖에

교통 접근성 개선 혁신적 대책 시급
"교통·교육여건 미흡…외딴 섬 같아"…전세버스 지하철역·수도권 오고가
통합 통근버스, 기관 이견 탓 파행
전문가 "배차 간격 문제 DRT 해법"…대구시 용역 추진 등 논의 나서기로

22일 오전 대구 동구 신서혁신도시 내 한 공공기관 정문 앞에서 직원들이 대구 곳곳에서 운행하는 통근버스를 타고 출근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22일 오전 대구 동구 신서혁신도시 내 한 공공기관 정문 앞에서 직원들이 대구 곳곳에서 운행하는 통근버스를 타고 출근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혁신도시에서는 10년째 출퇴근 시간만 되면 전세버스가 공공기관 직원들을 직장 앞까지 태워주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10년 전 줄지어 있던 버스 행렬은 아니지만, 여전히 대구 지역으로 내려와 살고 있는 공공기관 직원은 물론 주말이면 버스에 몸을 싣고 서울, 인천 등 수도권을 오가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대구혁신도시가 교통은 물론 보육·교육 여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를 해결하려면 혁신도시 공공기관은 물론 대구시 등 관계기관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구시도 이전공공기관 실무협의회를 통해 대구혁신도시 교통 접근성을 높이고 거주 여건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10년을 누빈 혁신도시 전세버스

22일 오전 8시20분 대구 신서혁신도시 내 한국가스공사 정문. 사옥 앞에 대형 전세버스가 정차하더니 두꺼운 외투를 걸친 승객들이 내려 한국가스공사 사옥으로 들어갔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가거나 큼직한 보스턴백을 든 모습도 목격됐다.

이른 오전부터 혁신도시에 등장한 이 버스들은 공공기관 직원들의 출퇴근을 위한 것으로 이날 한국가스공사 앞에 정차한 버스(7대)에서 내린 직원들은 각산역, 기숙사, 서대구이마트트레이더스 등에서 탑승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과 인천, 분당 등 수도권에 가족이 있는 직원들의 출퇴근을 돕는 버스(4대)도 10년 전부터 운영 중이다. 수도권을 오가는 버스는 금요일 오후에 혁신도시를 떠나 각 지역으로 간 뒤, 일요일 오후 7시쯤 다시 혁신도시로 향한다. 한국부동산원도 직원들의 출퇴근을 위해 통근버스(대구 1대, 서울 2대)를 운영한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은 서울을 오가는 버스(2대)만 주말에 운영하고 있다.

이밖에 지능정보사회진흥원(1대), 한국뇌연구원(1대), 중앙교육연수원(3대), 신용보증기금(4대),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1대) 등도 인근 지하철역이나 합숙소를 오가는 통근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다만, 비교적 규모가 작거나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중앙병역판정검사소, 한국사학진흥재단,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통근버스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

대구혁신도시 내 한 공기업 관계자는 "혁신도시에서 살아도 회사로 가는 버스가 워낙 적은 데다, 불편해 오히려 출퇴근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통근버스가 있으니 혁신도시에서 나와 살면서 지하철을 이용해 출퇴근하고 있다"고 했다.

2025년 3월 1일 정동고 이전이 예정된 1만4천280㎡ 상당의 동구 숙천동 389번지 일원이 텅 비어있다. 매일신문 DB.
2025년 3월 1일 정동고 이전이 예정된 1만4천280㎡ 상당의 동구 숙천동 389번지 일원이 텅 비어있다. 매일신문 DB.

◆교통·교육 여건 오히려 열악한 혁신도시

이같은 상황이 10년이 넘도록 생기는 것은 대구 도심 여건과 달리 혁신도시 교통, 교육 여건이 열악하기 때문이라고 공공기관 직원들은 입을 모은다. 거리가 다소 멀더라도 통근버스가 있다 보니 출퇴근 시간을 일정하게 관리할 수 있는 데다, 원하는 교육 환경에서 자녀를 키우거나 여건을 누릴 수 있어서다.

국토교통부 혁신도시발전추진단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조사에서 대구혁신도시 정주 여건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는 65.7점에 불과했다. 유형별로는 교통환경(64.5점), 보육·교육환경(63.9점)에서 지역 평균을 밑돌았다. 전국 혁신도시 평균 만족도는 69.0점으로 집계됐다.

오랫동안 혁신도시는 대구 내 교통 오지로 불려 왔다. 이 같은 민원은 끊임없이 제기돼 왔고, 해결책으로 시내버스 노선을 늘렸으나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통근버스는 사라지지 않았고, 일부 버스를 타지 못한 공공기관 직원들은 택시를 타고 출근하기도 한다.

대구혁신도시 내 대표적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 앞과 건너편 버스정류장에는 동구 4번(배차 간격 17분)과 4-1번(배차 간격 13분) 버스가 운행 중이다. 이 버스 노선만 유일하게 대구신서혁신도시 내 대부분 공공기관을 들린다.

혁신도시 한 준정부기관 관계자는 "버스 배차 시간이 워낙 길다 보니 한번 놓쳐버리면 기다리기 어려워 택시를 타야 하는 상황마저 벌어진다. 지하철이나 트램 같은 노선은 바라지도 않는다. 버스라도 좀 잘 다녔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열악한 주거 여건에 대한 불만 탓에 혁신도시를 등지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혁신도시 내 한 공기업 직원은 "다들 불만을 느끼고 있을 거다. 근무하는 우리가 가장 불편하다. 사는 동안 교통, 교육, 여가활동 환경 등 무엇 하나 제대로 완성된 게 없는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거리가 멀고 불편해도 여건이 나은 곳에서 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중구에서 살고 있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준정부기관 직원은 "교통 문제 때문에 도심과의 접근성도 상당히 떨어져 외딴 섬 같이 느껴진다. 도심과 동떨어져 있다 보니 대구에 녹아들고 싶어도 사실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육 문제도 있다. 자녀를 키워보면 알겠지만, 중학교를 마치면 고교 진학을 위해선 혁신도시를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주위에 이전 공공기관 특별공급으로 받은 주택을 매각하고 떠난 직원들도 주변에 있다"고 했다.

지난 2011년부터 지난 2021년 7월 말까지 대구혁신도시에 공급된 특별 공급 아파트 1천18가구 가운데 373가구가 분양권 상태로 전매하거나 매매하고 떠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대구 동구 혁신도시를 상공에서 바라본 모습. 매일신문 DB.
대구 동구 혁신도시를 상공에서 바라본 모습. 매일신문 DB.

◆혁신도시에 필요한 '혁신의 힘'

혁신도시에 교통 여건 개선을 위한 노력이 그동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혁신도시 내 이전 공공기관들은 코로나 19 발생 이전 수차례에 걸쳐 임직원들의 출퇴근 시간을 보장하고자 통합 통근 버스 운영에 관한 논의를 진행했었다.

심도 높은 논의와 달리 각종 한계점이 드러나면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당시 이전 공공기관들은 ▷사고 발생 때 기관별 보험 과실 비율 ▷노선 운영에 대한 비용 부담 ▷노선 형평성 등의 이유로 끝내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기업 직원은 "물론 서로 불편한 부분이 있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은 공익적 목적을 추구하는 공공기관이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전 공공 기관과 대구시, 지역사회 등 모두가 머리를 맞댈 수 있도록 이전공공기관 실무협의회가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윤대식 영남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통근버스는 시내버스와 특성이 달라 배차간격의 신축성을 요한다"며 "이 같은 곳에는 수용응답형 교통체계(DRT)가 적합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혁신도시 의료 R&D 지구에서 DRT 시범 운영을 하고 있는 만큼 이를 확대한다면 지역을 변화시킬 교통수단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재정적인 부분과 행정적인 부분에 이전 공공기관과 대구시 등의 적절한 협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협의체가 나서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구시는 이전공공기관 실무협의회를 통해 혁신도시 내 대구형 DRT 확충 방안과 대구로 택시 공공기관 연계 활성화 방안에 대한 논의에 나서기로 했다.

박윤희 기획조정실 광역협력담당관은 "대구형 DRT 운영에 대한 기본 계획을 바탕으로 혁신도시 전체로 대상을 확대하는 타당성 용역을 오는 2월 중 공고를 내고 9월까지 추진하겠다"며 "지난해 10월 2억원의 예산을 편성해 DRT 시범 운영을 하고 있으며, 올해는 예산을 7억9천만원으로 확대 편성한 상태"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공기관별 업무협약을 통한 대구로 택시 활성화도 도모하겠다"라며 "앞으로 이전공공기관 실무협의회에서 각 기관과 머리를 맞대고 혁신도시 내 교통 접근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