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터뷰] 지하철 안전문에 내릴 역 표시…"청각장애인 감사 인사에 뿌듯"

안전문 도착역명 부착 사업 기획자 대구교통공사 정재화 차장

대구교통공사 전자팀에 근무하는 정재화 차장은 승강장 안전문 도착역명 부착 사업의 기획자다.
대구교통공사 전자팀에 근무하는 정재화 차장은 승강장 안전문 도착역명 부착 사업의 기획자다.

오랜만에 지하철을 탔다. 출퇴근 시간도 아닌데 호차마다 사람들이 꽉 찼다. 양 귀에 이어폰까지 꽂으니 여행이라도 떠나는 기분. 철컹-철컹- 기자를 태우고 지하철은 한참을 달린다.

'여기 무슨 역이지?' 갑자기 드는 쎄~한 느낌. 이어폰 너머 노랫소리에 묻혀 안내 방송을 놓쳤다. 첩첩산중. 상단에 위치한 안내 전광판은 일어선 사람들의 머리에 가려져 있다. 큰일났네! 그 순간 보이는 큰 글자. 안전문에 '수성구청역' 스티커가 큼지막하게 붙었다. 그 글자를 따라 기자는 무사히 정차역에 하차했다.

-안전문에 표시된 큰 글자가 아니었으면 인터뷰에 늦을 뻔 했다. 승강장 안전문 도착역명 부착 사업의 기획자라고 들었다. 소개 부탁한다.

▶대구교통공사 전자팀에 근무하는 정재화 차장이다. 2017년도 대구 지하철 전체 역사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되며 민원이 많이 들어왔다. 기자님처럼 정차역 표시를 못 볼 뻔 했다는 의견이었다. 스크린도어가 기존 승강장에 부착돼 있던 역명을 가려버린 것이다. 이어폰 착용으로 안내 방송을 못 듣거나 잠깐 졸다 급히 내릴 때 여러 불편이 생긴 것이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스크린도어가 없을 때에는 지하철 안에서 창 밖이 훤히 보였던 것 같다. 그래서 승강장에 붙여진 역을 보고 부랴부랴 내렸던 기억이 난다.

▶맞다. 안전을 위해 스크린도어를 설치했는데, 그 스크린도어가 시민의 편의를 가려버리니 난감했다. 그러던 와중 수많은 민원 중에 글 한개가 눈에 띄었다. '승강장 안전문에 역명을 부착하면 어떨까?' 라는 시민 제안이었다. 서울 역사에 시범적으로 부착돼 있던 걸 보신 모양이더라. 그래서 그 시민제안을 채택해서 추진해 보기로 했다.

승강기 안전문 역명 부착 사업은 3호선까지 3개 노선, 90개 역사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졌다. 선로에 내려가서 스티커를 붙여야 하니 열차 운행이 끝난 뒤인 야간 작업이었다. 한 장씩 꼼꼼히 붙이다 보니 3개월이 걸렸다. 전자관리부 직원 48명이 투입됐다고.
'여기 무슨 역이지?' 갑자기 드는 쎄~한 느낌. 이어폰 너머 노랫소리에 묻혀 역 안내 방송을 놓쳤다. 첩첩산중. 상단에 위치한 역 안내 전광판은 일어선 사람들의 머리들로 가려져 보이지가 않는다. 큰일났다!

-시민의 목소리를 귀담아 줘서 고맙다. 서울에 이미 하고 있었던 건가. 그런데 대구 사업이 왜 이렇게 화제가 된 건가. 유튜브 영상 조회수는 200만회를 넘어 섰더라.

▶서울 두 개 역사에서 시범 설치 돼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좀 있었다. 우선 고려대역은 안전문에 붙인 역명 글씨가 너무 작고 위치에 따라 사각지대가 많았다. 보문역은 비상문에 글씨를 부착했는데 문이 열리면 안 보인다는 단점이 있었다. 우리는 이 모든걸 보완하는 사업을 한 것이다.

-실효성 검증을 거쳤다는 건가

▶그렇다. 가시성 문제는 외국어 역명 표기를 과감히 날리고 한글만 사용해 글씨 크기를 키우는 걸로 해결했다. 안전문이 열리면서 보이지 않는 문제는 스티커 부착 위치를 바꾸는 걸로 해결했다. 안전문 양쪽 끝에 역명 스티커를 붙이니 문이 열려도 옆쪽 큰 창으로 보여지더라. 그렇게 반월당·상인역 4개소에서 1·2차 시험을 했고 시뮬레이션을 거친 뒤에야 스티커 제작에 들어갔다. 시민 제안이 들어온게 2019년이고 반영을 한 게 2021년이었으니 꼬박 2년이 걸렸다.

-작은 변화가 큰 편의를 불러온 것 같다. 스티커 붙이기는 손수 하셨나.

▶당연하다. 3호선까지 3개 노선, 90개 역사 모두 수작업이다. 선로에 내려가서 스티커를 붙여야 하니 열차 운행이 끝난 뒤 야간 작업으로 이뤄졌다. 한 장씩 꼼꼼히 붙이다 보니 3개월이 걸렸다. 전자관리부 직원 48명이 투입됐다.

대구 지하철 1호선 월촌역에 설치된 안전문 역명 스티커.
승강기 안전문 역명 부착 사업은 3호선까지 3개 노선, 90개 역사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졌다. 선로에 내려가서 스티커를 붙여야 하니 열차 운행이 끝난 뒤인 야간 작업이었다. 한 장씩 꼼꼼히 붙이다 보니 3개월이 걸렸다. 전자관리부 직원 48명이 투입됐다고.

-강제 야근 아닌가. 직원들 불만이 많았을 것 같다.

▶하하. 정말 힘들었다. 1,2,3호선 90개역 양방향 출입문이 6480개소다. 우리가 붙여야 할 스티커도 6480개란 말이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스티커 붙이기 어렵지 않았는지. 휴대폰 액정 필름 하나 제대로 못 붙이는 사람도 많다.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사전 연습을 많이 했다. 물을 뿌리며 기포가 안 생기도록 깔끔하게 붙이는 법도 연구하고, 역별로 일정하게 붙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웃음)

-직원들의 노고로 민원이 확 줄었을 것 같다.

▶아예 0건이 됐다. 특히 청각장애인 시민분이 교통공사 게시판에 남긴 글이 기억난다. 해당 게시글을 그대로 읽어 드리겠다. "오랜만에 고향에 와서 지하철을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매번 내릴 역을 확인할 때마다 청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시각적 정보가 중요해 역사에 붙어있는 역명을 확인하곤 했었는데 안전문 내부에 해당 역명이 붙어있더군요.

청각장애인 당사자로서 이런 세심함에 정말 놀랐습니다. 안전문 내부에 역명을 부착하는 건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정말 편리하고 좋습니다. 아이디어 제공자분과 모든 역에 반영하신 디트로 측에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너무 뿌듯하셨겠다

▶너무 좋았다. 많은 직원들의 노력으로 얻은 성과물이 시민들의 관심과 이목을 끌게 됐다. 더욱이 대구만의 특별한 배려로 화제가 되니 너무 기뻤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후배로부터 존경한다는 문자도 받았다.

-포상금은 좀 받으셨나

▶따로 포상 받은 건 없다. 대신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2023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에서 전국 도시철도 운영 기관중 유일하게 공공디자인 우수상을 수상했다. 그 상금으로 회식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구 승강기 안전문 역명 부착사업이 다른 지역으로도 확대 시행 된다는 게 뜻깊었다. 서울은 지난해 7월, 광주는 10월에 작업을 했고 부산도 올해 추진한다고 하더라.

-안 그래도 수도권 지역 기사 제목이 인상 깊더라. '안전문에 내릴 역 표시, 대구서 한수 배운 서울'.

▶전국 지하철 이용객들의 불편까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더 뿌듯하다. 세계로 전파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대구시와 협업해 UN 공공행정상도 신청했다. 올해 결과가 나오는데 좋은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대구 지하철 1호선 월촌역에 설치된 안전문 역명 스티커.
대구 지하철 1호선 월촌역에 설치된 안전문 역명 스티커.
대구 지하철 1호선 월촌역에 설치된 안전문 역명 스티커.

-정 차장님이 근무하는 전자팀은 어떤 일을 하는가. 보통 지하철 하면 역무원, 역장 등 밖에 떠올리질 못했다.

▶승강장 안전문 스크린도어 유지보수와 역무 자동화 설비 관리를 맡는다. 쉽게 말하자면 교통카드를 찍으면 열리는 게이트라던지, 발매기 기계 등 접객 설비를 점검하는 일을 한다. 시민 안전과 편의를 위해 안 보이는 곳에서 애쓰는 직원들이 많다.

-찾아보니 대구시장 혁신상도 받으셨더라.

▶혁신상은 <승강장 안전문 365 안전 플랫폼> 개발로 시정혁신 분야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승강장 안전문 365 안전 플랫폼>은 승강장 안전문을 자동으로 감시하고 장애를 예측해 장애 분석을 지원하는 플랫폼이다.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신 하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면 되나

▶그렇다. 점검 시간을 83%로 단축하고 연간 인건비 4200만원과 자체 개발을 통한 1억4천만원의 예산을 절감했다. 특히 기술 혁신을 통해 안전사고와 장애 대응능력을 강화한 점이 높게 평가받았다.

-직원들이 열심히 하니까 대구교통공사가 15년 연속 고객만족도 1위를 달성하는 게 아닌가 싶다

▶자랑을 좀 더 하자면 대구는 여태 승강장 안전문 사고가 한 번도 없었다. 타지역은 끼임사고라던지 스크린도어와 안전문 사이 공간에 갇혔다는 뉴스도 있지 않았던가. 사고 0건이 가능 했던 것은 대구 지하철은 구축 당시부터 문 사이에 사람이 낄 수 없는 최소한의 공간으로 설계됐다. 또 승객 끼임 안전바라고 해서 승객이 감지되면 문이 안 닫힌다. 사고가 날 수 없는 구조란 것이다. 대구는 2003년 2월 18일 아픔을 겪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안전이 최우선이다. 앞으로도 시민 안전과 편의를 위해 열심히 하겠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기자는 다시 지하철에 오른다. 그리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수월하게 열리는 발매기 게이트, 큼지막하게 붙은 역명 스티커… 이 모든 것들에는 누군가의 수고로움이 더해졌을 테다. 철컹-철컹- 대구 지하철은 달린다. 시민들의 안전과 편의를 싣고 힘차게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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