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터뷰] 이문희 대주교 선종 3주기…“여기회가 그 뜻 이어 갑니다”

한국여기회 이사장 박영일 신부

2003년 일본 쯔와노 성지에서 고 이문희 대주교(가운데)와 한국여기회 이사장 박영일 신부(오른쪽).
2003년 일본 쯔와노 성지에서 고 이문희 대주교(가운데)와 한국여기회 이사장 박영일 신부(오른쪽).

"30여 년 전 사제생활에 방황하고 있을 때 친히 편지와 당신 일기를 보내주셨다" -정성해 신부, "10년 전 암에 걸리셨지만 어려움에 대해 불평하시는 것을 못 본 것 같다" -조환길 대주교, "남에게는 부드럽게 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말 그대로 대인춘풍 지기추상을 사신 분이다" -박영일 신부

'사람을 사랑했던 목자'. 고 이문희 대주교를 기억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그리고 목자의 그 삶은 사랑이 되어 세상에 온기를 남겼다. 오는 14일은 천주교 대구대교구 제 8대 교구장 이문희 대주교의 선종 3주기. 목자는 떠났지만 이제는 남은 이들이 그의 사랑을 세상에 나누기 위해 힘쓰고 있다. 지난 8일 기자는 이 대주교의 뜻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여기회' 이사장 박영일 신부를 만났다.

-올해가 이문희 대주교님 선종 3주기다. 교구의 공식적 추모는 끝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다만 우리가 했던 추모가 그저 추모 미사를 봉헌하고, 사진첩을 만들고, 음악회 등의 추모행사를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 같아 아쉽다. 서울대교구에서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유지를 받들어 '바보의 나눔'과 '옹기 장학회' 같은 재단을 만들어 추기경님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을 보면 더 그런 마음이 든다. 이문희 대주교님도 김수환 추기경님에 못지 않은 정신적인 가르침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오는 14일은 천주교 대구대교구 제 8대 교구장 이문희 바울로 대주교의 선종 3주기. 목자는 떠났지만 남은 이들은 그의 사랑을 세상에 나누기 위해 힘을 쓰고 있다.
오는 14일은 천주교 대구대교구 제 8대 교구장 이문희 바울로 대주교의 선종 3주기. 목자는 떠났지만 남은 이들은 그의 사랑을 세상에 나누기 위해 힘을 쓰고 있다.

-이문희 대주교님은 재임 동안 사제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어주는 속 깊은 아버지로서의 면모를 보였다고 한다.

▶사제들에게 품 넓은 아버지셨다. 또한 보좌 주교직에 있을 당시엔 한국 교회 처음으로 '평신도사도직협의회'를 운영해 평신도의 교회 참여를 이끌었다. 아울러 '본당 사회복지위원회'와 '여성교육관', 해외 선교사를 돕는 '미바회'를 만드셨고 지역민과 함께하는 재가 복지 활동에 힘쓰셨다. 무료급식소 '요셉의 집'과 '인성의 집'을 열어서는 가난한 이들을 도우셨다.

-이 대주교님은 모두가 함께 하는 교회를 위해 정진하신 것 같다.

▶그렇다. 그 결과로 대구대교구장에 착좌한 1986년부터 퇴임한 2007년까지, 신자 수는 20여만명에서 45만여명으로 본당 수는 79개에서 147개로 늘었다. 교구장 재임 동안 2배 이상의 외적 교세 성장을 이룬 것이다. 어려운 형편에도 많은 본당을 설정하고, 없어진 신학교를 다시 개교하여 많은 사제를 양성하는데 이바지 하셨다. 나아가야 할 교회의 모습을 성찰하고 실천하기 위해 교구 역사상 처음으로 시노드도 개최하셨는데, 이런 시노드를 통해 교구와 본당의 조직을 개편하고 쇄신하는데 주력한 것들이 성장의 배경이 아닐까 싶다.

고 이문희 대주교
고 이문희 대주교

-이 대주교님이 생각하는 '모두'는 꽤 광범위한 것 같다. '한일주교교류모임' 설립을 통해서는 아픔의 역사를 넘어 화해화 용서의 모범을 보여줬다고.

▶이 대주교님이 한국 주교회 의장으로 계실 때 일본 주교회의 의장이셨던 고 하마오 추기경님과 한마음이 되어 서로 화해와 일치를 위해 손을 맞잡으셨다. 이 외에도 한국 교회의 로마 대표부 역할을 하는 '로마 한인 신학원' 설립, 중국과 대만 교회와의 교류에도 힘 쓰셨다. 또한 한국 교회가 도움을 줘 북한에 지은 최초의 병원인 '북한 라선국제가톨릭병원'을 위해 사재를 몽땅 털어 기부하다시피 하셨다.

2004년 여기회 창립 멤버의 모습.
2004년 여기회 창립 멤버의 모습.

-요즘이야 말로 모두를 품는 이 대주교님의 뜻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이념·남녀·세대·지역 등 우리는 갈등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일 갈등과 북핵 문제로 인한 국내외 정세 혼란까지 더해 말이다.

▶여기에는 우리 한국여기회의 '여기애인'(如己愛人-남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정신이 언급돼야 할 것 같다. 이 대주교님이 1999년부터 시작한 한국여기회는 2004년 사단법인 한국여기회로 운영되고 있으며 2023년부터 대구대교구 사도직 단체로도 등록돼 있다.

-한국여기회는 이 대주교님이 생전에 특별히 염원하고 마음을 많이 쏟은 단체로 알고 있다. 여기회의 '여기애인' 정신은 어떤 걸 말하는 건가.

▶여기애인(如己愛人) 즉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마르코 12,33)을 몸소 실천하면서 여기당(如己堂)에서 일생을 마친 나가이 다카시 박사의 정신을 기리며 사랑의 정신과 평화를 추구하는 데 목적이 있다. 갈등과 반목의 시대에 여기애인 정신은 반드시 필요하다. 예수님이 가르친 사랑은 국가나 인종이나 이런 것에 갇힌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실천해야 할 사랑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여기회 회원들이 실천하는 여기애인 정신의 사례들이 있을까.

▶참 많다. 모든 회원들이 맡은 자리에서 여기애인의 정신을 살고 있다. 일부만 소개하자면 현재 여기회 운영위원장(권오광 득인기공 대표이사)은 회사운영에 있어 직원을 내 몸같이 아끼고 이익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나누며 또한 신앙인으로 가톨릭 신문에서 주최하는 가톨릭학술상을 후원하고 있다. 의사회원님들은 치유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경제적 이윤보다는 환우와 가족들에 대한 배려를 우선으로 하여 병원을 운영하고 계신다.

-2004년부터면 여기회도 올해 창립 20주년이지 않나. 이 대주교님의 뜻을 이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여기애인(如己愛人) 회지를 발간하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이 있지만 특별히 매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나가시 다카시 박사의 저작물과 이문희 대주교님의 관련 서적을 읽은 독후감을 공모하고 있다. 수상자들에게는 부상으로 나가사키를 순례하며 평화행사에 참여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로써 한일 교류뿐만 아니라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다. 더불어 여기회 회원 모두가 봉사의 삶, 나눔의 삶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지막은 조금 특별하게 맺어보고 싶다. 이 대주교님은 생전 시를 좋아하시고, 또 많이 쓰셨다고 들었다. 이 기사를 보고 있을 대구경북민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 대주교님의 자작시 한소절 부탁한다.

▶이 대주교님이 80년대 쓰셨던 '복덩이의 고향'의 일부가 생각난다.

복덩이의 고향은 어딜 가든 거기 있고 또 쉽게 가질 수 있는 것/ 이 세상을 떠나가도 거기 있는 것/ 이 세상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고향을 소중하게 찾고 있지만/ 되돌릴 수 없는 시간 같이 떠나간 것이 되고 마는데/ 복덩이 복덩이만은 지나간 고향 지금 있는 고향 장래있을 고향 모두를/ 초연히 받아들일 수 있는 가슴이 있네

이 대주교에게 '복덩이'는 그가 품고 싶은 모두가 아니었을까. '사랑이 있어 사람이 왔다'던 그의 염원은 이제 남은 자들이 지켜가야 할 것이다.

한국여기회 박영일 이사장은 말한다. "이 대주교님의 빈자리가 크지만 이제는 저희가 그 빈자리를 메워야 하겠습니다. 저도 여기회 이사장으로서 이 대주교님의 유지를 더욱 계승 발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대구경북 복덩이 여러분! 2024년 갑진년 더욱 건강하시고 주님의 축복 속에 뜻하시는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남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그런 한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한국여기회 이사장 박영일 신부
한국여기회 이사장 박영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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