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학부모와 함께 나누고픈 북&톡] 내 인생, 경로 안내를 시작하겠습니다

대구 한 초등교사의 교단일기서 엿본 삶의 방향… '오늘 간식은 감꽃이야'
신분, 성별, 나이의 '담'을 넘은 푸실이의 이야기… '담을 넘은 아이'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어린 시절 자주 듣던 질문입니다. 어른이 된 후엔 아이들에게 자주 묻는 말이기도 합니다. '의사가 되고 싶어요' 등 아이들은 주로 자신이 갖고 싶은 직업을 말합니다. 이제 다음 질문을 던집니다. '어떻게 살아가는 의사가 되고 싶어?" 아이들의 대답이 망설여지는 순간입니다. 진로(進路)라고 하면 으레 갖고 싶은 직업, 그와 관련된 학과를 떠올리지만 삶은 '무엇'으로만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어떤 방향으로, 어떤 것에 가치를 두며 '어떻게' 살아갈지를 성찰하고 다짐하는 것은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삶의 운전자에게 선명한 헤드라이트, 정확한 내비게이션을 얻는 일입니다.

'오늘 간식은 감꽃이야'의 표지
'오늘 간식은 감꽃이야'의 표지

◆학생과 학부모와 함께 걸어가는 '선생님'의 길

취미, 특기, 기쁨, 아픔, 일, 쉼이 모두 선생인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꽃 이름을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있도록 운동장의 나무와 풀꽃을 공부하고, 여행하며 만나는 새로운 풍경 속에 우리 반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떠올리는 선생. 대구의 초등학교 교사이기도 한 최순나 선생님의 책은 그의 말, 생각, 생활의 한결같음을 떠올리게 합니다. '오늘 간식은 감꽃이야'(최순나 지음)은 3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의 온전한 1년간의 교단일기를 담고 있습니다.

2월 말, 자신이 맡은 학급 학생 명단을 보고 얼굴도 모르는 아이의 이름을 품고 운동장을 학생 수만큼 달리는 담임의 마음은 무엇일까요? 나의 최선이 너에게 닫기를, 그래서 너와 내가 모두 행복한 한 해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아닐까요? 작가의 반 학생들은 매일 줄넘기, 시 쓰기, 리코더 연주, 달리기를 합니다. 배운 것을 익히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서로 묻고 답하며 줄넘기 1개, 리코더 1곡, 달리기 1초와 같이 자신의 끈기와 노력으로 얻은 성과에 보람을 느낍니다. 그렇게 학교는 용기 있게 물으면 친절하게 대답하는 또래와 선생님이 있고, 어제 덜한 것을 오늘 '더', 혹은 내일 '또' 할 수 있는 친숙한 공간이 됩니다. 초등학교에선 3월에 만난 담임 교사와 학생들이 1년 내내 등교부터 하교까지의 모든 시간을 함께하기에 학부모와 교사, 그리고 학생이라는 3주체의 선의와 믿음이 중요합니다. 보람이 큰 만큼 책임도 무거운 담임이라는 역할. 하지만 작가는 담임을 맡아 '우리 선생님'으로 불리는 일이 가장 설레고 행복하다고 합니다.

20여 년 전 작가는 "엄마랑 떨어지지 않으려 울고불고하는 내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출근했는데 가치 있게 일해야지요. 내가 남의 아이를 귀하게 여기면 남도 내 아이를 귀하게 여기지 않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33년 선생으로 살아온 그의 삶의 방향이자, 같은 길을 걷는 동료들의 나침반이기도 합니다.

'담을 넘은 아이'의 표지
'담을 넘은 아이'의 표지

◆차별과 관습을 뛰어넘고 나아가는 소녀

누군가를 만나면 우리는 제일 먼저 이름을 묻습니다. 이름을 통해 서로를 구분하고, 소통하며, 연결하기 때문입니다. 물건에도 이름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이름을 짓는 일은 그보다 더 큰 의미를 갖습니다. 아기의 태명을 '튼튼이'라고 지어 열 달 동안 엄마의 뱃속에서 튼튼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것처럼 부모는 자녀가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기를 기원하며 정성을 기울여 이름을 짓습니다.

하지만 '담을 넘은 아이'(김정민 글)의 주인공 푸실이의 이름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풀밭에서 태어났으니 푸실이라 불릴 뿐입니다. 푸실이의 남동생은 귀한 아들 귀손이입니다. 푸실이는 귀손이의 약값을 구하기 위해 대감집 도련님의 유모가 되어 집을 떠난 어머니 대신 갓난아기를 등에 업은 채 집안일을 하고 풀뿌리를 구하러 다닙니다. 하지만 언제나 아버지와 남동생의 죽그릇을 더 채워야 하지요. 배고픔이나 고됨보다 푸실이를 더 힘들게 하는 건 이름조차 갖지 못한 채 어머니의 젖을 빼앗긴 아기 여동생의 울음입니다. 어느 날, 푸실이는 우연히 산 속에서 '여군자전'이라는 책을 발견합니다. 신분이 높고 많이 배운 남자만이 군자가 될 수 있던 시절, 불쌍하고 약한 것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는 사람이 바로 참 군자라는 책의 글귀는 푸실이를 한 발 나아가게 합니다. 푸실이는 아기를 살리기 위해 신분, 성별, 나이라는 담을 뛰어넘고, 그런 푸실이 덕분에 담장 너머의 세상도 조금씩 바뀌어 갑니다.

세상은 넓고 길은 많습니다. 길이 없다면 막힌 담을 뛰어넘을 수도 있지요. 우리는 모두 같은 길에 선착순으로 서고자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앞자리에 서기 위해 속력만 높일 것이 아니라 내가 가는 길의 방향을 생각하며 늘 스스로 어찌 살아갈지를 물어야 합니다. 헤드라이트를 번쩍 켜고 내비게이션도 잘 들여다보며 내 삶의 경로를 이탈하지 않기 위해.

대구시교육청 학부모독서문화지원교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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