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교육 카르텔' 사실로…감사원, 56명 수사 요청

수능 영어 23번 논란 관련자 포함…감사원, "교원·사교육 업체 간 문항거래 뿌리 깊어"

서울 종로구 감사원 입구 모습.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감사원 입구 모습. 연합뉴스

사교육 업체와 유착한 현직 교사들이 모의고사 문제를 제공하고 금품을 받는다는 사교육 카르텔 의혹이 감사원 감사에서 사실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시행한 교원 등의 사교육시장 참여 관련 복무 실태 점검 감사 결과를 11일 공개했다.

그 결과 혐의가 확인된 교원과 학원 관계자 등 56명을 수사해 달라고 올해 2월 초부터 3차례에 걸쳐 경찰청에 요청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이들은 청탁금지법 위반, 업무방해, 배임 수·증재 등 혐의를 적용받았다.

수사 요청 대상에는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문제 논란 관련자들이 포함됐다. 논란은 대형 입시학원 유명 강사가 만든 사설 모의고사 교재에 나온 지문이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에 그대로 출제되면서 불거졌다.

감사원에 따르면 2023년 1월 출간 예정인 EBS 수능 연계 교재에 한 고교 교사가 2022년 3월 'Too Much Information'(TMI)라는 지문으로 출제한 문항이 수록돼 있었다.

2022년 8월 해당 EBS 교재 감수에 참여한 대학교수 A씨는 TMI 지문을 알게 됐고 2023학년도 수능 영어 출제위원으로 활동하며 TMI 지문을 무단으로 사용, 수능 23번 문항으로 출제했다.

평소 교원에게 문항을 사서 모의고사를 만들던 유명 강사 B씨는 TMI 지문 원 출제자와 친분이 있는 다른 교원 C씨를 통해 TMI 지문으로 만든 문항을 받아 9월 말 모의고사로 발간했다.

이같은 부정행위들이 모여 '1타 강사 모의고사 판박이' 논란을 낳은 수능 영어 23번 사태가 발생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업무도 부당하게 처리됐다. 평가원 영어팀은 수능 문항 확정 전 사설 모의고사와 중복 검증을 부실하게 해 TMI 지문 문항이 수능에 중복 출제되는 것을 걸러내지 못했다.

중복 출제 이의신청이 215건 들어왔지만 평가원 담당자들이 모의해 이의 심사 대상에서 제외해 논란을 축소하려 했다.

이 외 수능 출제 또는 EBS 수능 연계 교재 집필 참여 다수 교사가 사교육 업체와 문항을 거래한 것도 감사에서 확인됐다.

한 예로 수능과 수능 모의평가 검토위원으로 여러 번 참여한 고교 교사 D씨는 출제 합숙 중에 알게 된 교사 8명을 포섭해 문항 공급 조직을 구성했다. D씨는 포섭한 교사들과 2019년부터 2023년 5월까지 수능 경향을 반영한 모의고사 문항 2천여 개를 만들어 사교육 업체와 유명 학원강사들에게 공급하고 6억6천만원을 받았다.

고교 교사 E씨는 배우자가 설립한 출판업체를 공동 경영하며 현직 교사 35명으로 문항 제작팀을 구성한 뒤 사교육 업체와 유명 학원강사들에게 문항을 넘겨 수억원의 부당 이익을 챙겼다.

교사가 EBS 수능 연계 교재 파일을 교재 출간 전 빼돌려 비슷한 문항을 만들어 학원 강사에게 공급하고 돈을 받거나 사교육 업체에 공급한 문항을 학교 중간·기말시험에 출제한 사례도 있었다.

감사원은 "교원과 사교육 업체 간 문항 거래는 수능 경향에 맞춘 양질의 문항을 공급받으려는 사교육 업체와 금전적 이익을 원하는 일부 교원 간에 금품 제공을 매개로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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